복지 예산 삭감, SOC 증액…국회에 무슨 일이?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복지 예산 감소의 진짜 문제는 '민주주의'

지난 12월 8일 새벽 4시가 넘은 시각, 2019년 예산안이 통과되었다. 이에 따라 총지출은 정부가 제출한 470조5000억 원에서 9000억 원 감소한 469조6000억 원으로, 총수입은 정부안 481조3000억 원 대비 5조3000억 원 감소한 476조1000억 원으로 확정되었다.

국회에서는 부처별 예산안을 심사하는데, 사업별 예산만으로는 국가 재정이 어느 분야에 어떻게 배분되는지 정확히 알기가 어려워 만든 기준이 '분야별 재원 배분 현황'이다. 보건·복지·고용, 공공질서·안전, 환경, 연구개발(R&D), 사회간접자본(SOC) 등 12개 분야로 되어 있다. 이를 기준으로 보면, 보건복지고용 분야 예산(아래 복지 예산)은 정부가 제출한 예산 대비 1조2000억 원이 감액되고, SOC 분야는 같은 액수가 증액되었다.

국회는 왜 복지 예산을 줄이고, SOC 예산을 늘렸을까?

물론 보건복지부 예산으로만 보면 감액은 아니다. 2019년 보건복지부 예산은 올해 본예산 대비 14.7% 증가했다. 총지출 규모는 72조5148억 원이다. 정부가 제출한 원안 72조3758억 원보다 1390억 원 증가한 것이다. 아동수당 증가분이 2356억 원으로 가장 큰 몫을 차지하고, 장애인 활동지원 관련 예산 증액 분 350억 원, 장애아동 특수보육교사 수당 109억 원 등도 포함된다. 그렇다면 뭐가 문제인가?

그동안 국회는 복지 예산 증액에 적극적이었다. 어느 정당이 집권하느냐에 상관없이 기획재정부는 복지분야 지출 확대에 소극적이었기 때문에 국회에서 대폭 증액하여 필요 예산을 보충하는 게 일종의 관행이었다. 국회는 이를 통해 '약자의 수호자' 라는 명분을 획득할 수 있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이러한 경향이 변하고 있는 듯하다. 2018년 보건복지부 예산의 경우, 정부 원안보다 무려 1조 원 가량이 감액된 바 있다. 그에 비하면 정부 원안 대비 1000억 원 규모로 증액된 올해는 좀 나은 상황이다. 하지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3조1547억 원을 증액하고, 267억 원을 감액하여 총 3조1280억 원을 순증하는 것으로 의결하였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1400억 원 가량의 증액은 실망스러운 것이다. 그것도 아동수당 2356억 원 증액이 포함된 것이니, 사실상 여타 분야 증액은 매우 미흡하였다.

국회, 예산 편성부터 개입할 수 있어야

먼저, 국회가 심사할 수 있는 예산의 범위가 넓지 않다는 데 일차적 원인이 있다. 예산 심사권을 가진 국회보다 편성권을 가진 행정부에 더 많은 권한이 있다. 행정부는 중기 재정운용계획을 수립하고, 분야별 배분 계획도 수립한다. 국회는 이에 따라 편성된 당해 연도 예산만 심사하기에 조정 가능한 예산은 전체 예산중 일부에 불과하다. 총지출에서 감액 5조2000억 원, 증액 4조3000억 원이니 전체 470조 원 규모에서 2% 남짓한 재정을 수정할 뿐이다.

전략적 재정 운용계획을 입안하는 데 원천적으로 개입할 수 없고, 당해 연도에 한하여 '계수조정' 수준에 머무는 예산안 심사의 한계는 의원들로 하여금 생색나는 지역구 SOC 예산 확보에 치중하도록 한다. 국회의 예산 심사권이 실질적으로 발휘되려면 편성부터 개입할 수 있어야 한다.

근본적으로 '정치의 개인화'라는 문제가 있다

국회에서 예산을 둘러싸고 입장 차가 발생하는 것은 각 정당이 자기 정체성에 입각하여 예산을 대하기 때문이다. 이런 논쟁은 불가피하며 대체로 복지 분야에서 첨예하게 부딪힌다. 이번에 확대된 아동수당 뿐만 아니라 기초연금, 거슬러 올라가면 무상급식까지 지급 범위를 둘러싼 논쟁은 '보편적 복지'와 '선별적 복지' 사이에서 오랫동안 지속되어 왔다.

SOC는 정체성의 문제라기보다 '땅따먹기'에 가깝다. 누가, 얼마나 가져갈 것인가를 두고 다툰다. 이념과 무관하니 안전하고, 성과가 확실하고, 구체적이다. 논쟁의 성격이 다르다.

SOC 예산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필요한 건설 교통 예산이 분명히 있다. 특히 광역단위 예산은 국가 차원에서 충족해야 한다. 다만, SOC 예산은 그 특성상 대체로 정치인 개인의 성과가 더 강조된다. 예컨대, 특정 지역에 건설 예산이 편성되면 지역 경제가 건설을 중심으로 반짝 활성화될 수 있으며 공은 모두 예산을 유치한 정치인의 것이 된다. '얼굴'이 있는 예산이다.

반면, 복지 예산은 아동, 노인, 장애인 등 대상 집단은 정해져 있으나 대상자 다수가 수혜자라는 특성상 개인 대 개인의 관계가 형성되지 않는다. 복지 분야는 통상 의제와 예산을 둘러싸고, 수혜자 집단과 정당의 관계가 형성된다. 따라서 정치인 개인에 대한 지지와 큰 상관이 없다. 예컨대, 올해 아동수당 지급 범위가 전체 아동으로 확대되어 예산이 증액되었다고 하여 정치인 개인에 대한 지지에 변동이 발생하지 않는다. 아동수당 지급 범위를 놓고 벌어지는 논쟁은 모두 정당 차원의 것이다.

국회에서 복지 예산을 줄이고 SOC 예산을 증액하였다는 것은, 정당이 아니라 정치인 개인의 목소리가 더 비중 있게 반영되었다는 것이다. 우리의 정치가 점점 더 개인화, 분자화되고 있는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

정당을 지지하는 시민이 많다면 정치는 정당을 중심으로 움직이지만, 무당층이 많다면 정당보다 정치인 개인이 더 중요해진다. 정당 지지자들은 해당 정당의 정책을 '패키지'로 받아들이기에 좋아하는 정책과 함께 다소 마음에 안 드는 정책도 관대하게 수용한다. 하지만 정치인 개인을 지지하는 시민들은 사안에 따라 자유롭게 이동한다. (반대로,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을 '절대 선'으로 여겨 무조건적 지지를 보내기도 한다.) 정치인은 시민의 지지를 잃지 않으려 여론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실시간 정보가 오가는 대중매체의 발달로 상호간 즉각적 반응도 강화된다. 포퓰리스트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정치적 책임의 소재도 정당에서 정치인 개인으로 이동한다. 정당 간 정책적 차별성이 크지 않다면, 정치인은 보다 강경한 발언으로 정국을 주도하고자 할 것이다. 온건한 정치인보다 극단적 이념을 강조하고, 여론 영합적인 정치인이 인기를 얻게 되고, 당내 리더십을 장악할 위험도 커진다. 정당과 시민의 관계가 정치인의 이미지를 기반으로 맺어진다면, 정당은 정책을 중요시할 이유가 없어진다.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는 점점 더 뒷전으로 밀릴 것이다.

복지 예산은 결국 '민주주의' 문제

막스 베버는 신념 윤리와 책임 윤리의 조화를 강조했다. 신념은 개인의 영역일 수 있지만, 책임은 정당을 통해 발현된다. 정당이 무너지면, 사회적 약자의 권리도 함께 사라진다. 복지 예산 감소를 민주주의의 문제로 바라봐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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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드는 복지국가>는 시민들이 복지국가 만들기에 직접 나서는, '아래로부터의 복지 주체 형성'을 목표로 2012년에 발족한 시민단체입니다. 건강보험 하나로, 사회복지세 도입, 기초연금 강화, 부양의무제 폐지, 지역 복지공동체 형성, 복지국가 촛불 등 여러 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칼럼은 열린 시각에서 다양하고 생산적인 복지 논의를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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