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의 국민연금 개혁안, 어떻게 볼 것인가

[복지국가SOCIETY] 연금 개혁안, 노후 소득 보장 강화여야

지난 12월 14일 정부가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을 발표했다. 정부는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을 연계한 소득대체율과 연금보험료 수준에 따라 총 4개의 주요 대안을 제시했다. 국민연금법에 의하면, 정부는 올해 10월 말까지 재정 계산에 따른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을 국회에 제출해야 하지만, 벌써 한 달여의 시간이 지연되었다. 국민연금심의위원회와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쳐 대통령 결재로 정부안이 확정되면 국회에 이송되어 또 한 번의 사회적 논의를 거쳐 법 개정 절차에 들어갈 것이다.

연금 개혁 목표, '노후 소득 보장'이어야


국민연금 개혁 논의의 출발점은 수단적 정책 목표인 '재정 안정화'가 아니라, 기본적 정책 목표인 '노후 빈곤 예방'과 '노후 소득 보장'에 두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국민연금 제도만 논의해서는 안 되고, 기초연금, 퇴직연금, 개인연금까지 포괄하는 다층적 논의를 해야 한다. 공무원연금 등 특수 직역 연금과의 형평성 논란을 불식시키고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다면적 개혁을 논의해야 한다. 이는 제공적연금 제도들의 틀을 바꾸는 구조 개혁과 보험료나 소득대체율 등의 변수를 조정하는 모수 개혁(某數改革)을 함께 수행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제대로 된 개혁을 완수하려면 충분한 시간을 갖고 논의해야 한다. 성급한 성과주의의 유혹과 주변에서 제기하는 '폭탄 돌리기'라는 비난에 맞서서 이겨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숨겨진 사회 문제를 발견하고, 올바른 정책 목표를 설정하고, 타당한 대안을 분석하고, 사회 각 그룹들과의 충분한 소통을 통해 진정으로 국민을 위하는 연금 체계를 만들 수 있다.

마지막으로 재정적 보수주의를 극복하고 고용주, 근로자 외에 국가도 공적 연금 재원 부담의 중요한 축이라는 '공적 연금 3자 재원 부담의 원칙'을 정부가 천명하고, 이에 대한 구체적 이행 의지를 밝혀야 한다. 이를 통해서만 '노후 빈곤 예방'과 '노후 소득 보장'뿐만 아니라 '장기적 재정 안정화'와 함께 '세대 간 형평성'까지 강화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지난 8월 27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국민연금 개혁 방향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는 매우 고무적이었다. 그리고 이번에 나온 국민연금 종합개선안에는 '포용적 혁신 성장'이라는 문재인 정부의 가치와 정책 이념이 잘 반영되어 있다. 정부의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의 도출 과정, 개혁의 정책 목표 설정, 국회에 제출할 대안의 구성, 실질적 내용의 순으로 특징을 하나씩 살펴보자.

ⓒ연합뉴스

국민연금, 소득 대체율 40~45%, 보험료 9~13%…기초연금 인상안도 검토

먼저 개혁안의 도출 과정에서 정부는 다양한 의견들을 수렴했다. 제4차 재정계산 발표와 국민연금제도개선위원회의 건의 내용을 바탕으로 전문가, 시민단체, 청장년, 노인들을 포함한 다양한 계층의 의견들을 여러 방법으로 수렴했다. 앞으로도 숙의 민주주의가 공적연금 부문에서도 결실을 맺을 수 있겠다는 희망을 갖게 한다.

둘째, 국민연금 개혁의 정책 목표를 '노후 소득 보장 강화'로 설정했다는 점도 바람직하다. 보험료를 점진적으로 조금 더 내더라도 연금을 더 받는 방향으로 다각적이고 실질적인 제도 개선 방안을 제시했다. 과거 1998년과 2007년, 두 번에 걸친 국민연금 개혁안에서는 급격한 급여 삭감과 연금 수급 연령 인상을 통한 재정 안정화가 최우선 정책 목표였다. OECD 최고의 노인 빈곤율과 노인 자살률을 완화하기 위해 국민연금이 어떻게 기능해야 하고, 국가는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는 뒤로 밀렸다. 하지만 '재정 안정화'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 지, 재정 안정화의 책임 주체는 누구인지에 대한 설득력 있는 설명은 찾을 수 없었다. '기금 고갈'에 대한 공포를 확산시켜 급여를 삭감하려는 시도만 무한 반복되었다. 기금의 궁극적 목적이 무엇인지, 기금이 없으면 왜 안 되는지에 대한 설득력 있는 설명은 찾기 어려웠다. 국민연금 기금이 세계 3대 기금으로 쌓여가는 사이에 우리나라 노인들의 절반은 빈곤에 찌들고, 폐지를 주워 살아야 하고, 그러다가 하루에 10여 명씩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참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도 국가는 책임을 못 느끼고 사회 구성원들은 후세대의 부담만을 걱정한다. 부모 세대의 빈곤과 죽음보다 후세대의 보험료 부담이 더 걱정된다는 논리이다. 그래서 기금을 천문학적으로 쌓아 놓더라도 노후 빈곤 완화를 위해 기금을 써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국민연금 개혁은 공적 연금의 기본 기능인 '빈곤 예방'과 '노후 소득 보장 강화'를 개혁 목표로 설정했다. 그 위에서 재정 안정화의 길도 함께 모색하는 새로운 접근 방법을 시도했다.

셋째, 국회에 제출한 정부의 개혁 대안 구성 방법이다. 이번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상의 4가지 제도 개선 대안은 '공적 연금이 지향하는 목표'를 밝히고 '사회적 논의'를 유인하기 위한 것이다. 일부 정치권과 언론은 이를 4지 선다형 책임 회피 개선안이라 비판한다. 하지만 이는 정부가 독단적으로 개혁안을 만들어 국회에 통보하던 과거의 태도를 벗어난 새로운 시도로 보아야 한다. 국민연금을 포함한 공적연금 개혁은 제도가 포괄하는 국민의 범위나 재정의 규모, 70년 이상의 제도 가입과 수혜 기간, 세대 내 그리고 세대 간의 소득 재분배, 정치에 미치는 영향, 경제적 파급 효과 등 막대하고 복잡한 이슈들을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어떤 정권의 일방적 관점이나 정당의 이해에 따른 밀어붙이기 식의 개혁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럴 경우 오히려 극심한 사회갈등만 야기할 뿐이다.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사회구성원들이 진정성 있게 논의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 오랜 전통을 가진 서구 복지국가들의 연금개혁 경험이 주는 교훈이다. 따라서 정부의 분명한 관점이 담긴 제도 개선안과 주요 개혁 대안을 중심으로 광범위한 사회적 논의를 구하는 것은 바람직한 접근방법의 하나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이미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 '연금개혁특위'가 구성되어 사회적 대타협의 가능성이 열려 있다.

마지막으로, 이번에 제시한 4개의 주요 개혁 대안들을 살펴보자. 제1안은 현행 제도 유지안이다. 소득대체율 40%, 보험료율 9%를 유지하는 안이다. 제2안은 기초연금 강화 안이다. 국민연금의 소득 대체율과 보험료율은 현행대로 유지하되 기초연금을 현행 25만 원에서 2021년 30만 원, 2022년부터 40만 원으로 인상하는 방안이다. 이는 현 노인세대의 노후 빈곤을 완화하는 데 초점을 둔 안이다. 제3안은 국민연금 가입자들의 노후 소득 보장을 확충하는 안이다. 소득대체율을 현 수준인 45%로 동결하여 40%까지 저하되지 않도록 하고, 보험료는 2021년부터 5년마다 1%씩 높여 2031년에 12%가 되도록 인상하는 방안이다. 이는 현 노인세대나 장년 세대의 노후 빈곤이나 소득 보장보다는 향후 연금을 받을 청년 세대나 후세대의 소득 보장에 초점을 맞추고 여기에 상응하는 보험료 인상으로 재정 안정화도 고려한 안이다. 제4안은 국민연금의 노후 소득 보장을 좀 더 강화하는 안이다.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50%로 상향 조정하고 보험료율을 현행 9%에서 2021년부터 매 5년마다 1%씩 인상하여 2036년에 13%까지 인상하는 방안이다.

위 네 가지의 대안과 함께 정부는 국민연금 가입 동기 유발과 가입기간 확대를 위한 국가의 재정 지원 방안을 제시했다. 정부는 지역가입자 중 사업 중단이나 실직 등으로 연금보험료 납부가 어려운 지역가입자(납부 예외자)에게 국민연금 보험료의 50%를 지원해주기로 했다. 정부는 약 350만 명의 납부 예외자들이 보험료 지원을 받아 국민연금 가입 기간을 확대함으로써 소득 대체율을 실질적으로 증가시킬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출산 크레딧을 확대하여 첫째 아이 출산의 경우도 6개월간의 재직 기간을 추가로 인정해주도록 했다. 아울러 기초연금 30만 원을 소득 구간별로 단계적으로 확대 적용하도록 했다. 2019년에는 소득 하위 20%까지, 2020년에는 소득하위 40%까지, 2021년에는 소득하위 70%까지 30만 원을 지급한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을 조기에 이행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국민연금 가입 동기 유발과 가입기간의 확대를 위해 국가의 재정 지원(보험료 지원)을 늘리는 점은 매우 고무적이다.

여기에 사적 연금인 퇴직연금과 주택연금, 농지연금 제도의 노후 소득 보장 기능을 실효성 있게 확보하기 위한 방안도 제시했다. 대표적으로 연금과 일시금을 선택하도록 한 근로자 퇴직급여보장법을 개정하여 퇴직금을 연금으로만 지급하도록 하겠다고 한다. 퇴직연금의 일시금 선택 제도를 없앤 것은 바람직하다. 퇴직 시에 지급하는 일시금은 노후 소득 보장에 무익하고 때로는 위험하기까지 하다. 공무원연금 등에서 존재하는 일시금 선택 제도도 빨리 시정해야 한다.

정부가 제시한 네 가지 대안은 각각 강조점이 다르기 때문에 어떤 대안이 좋고 나쁨을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정책의 우선순위는 사각지대의 해소이고, 그 다음은 소득보장의 강화이다. 그리고 재정 안정화를 위한 보험료 인상은 위 두 가지 정책 목표 달성의 전망 하에서 점진적이고 단계적으로 시행해야 한다. 저임금 노동자들과 자영업자들에 대한 국가의 재정 지원이 선행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보험료 인상은 매우 위험하다. 그런 점에서 보험료 지원을 전제로 보험료를 점진적으로 인상하는 정부 안은 충분히 수용할 만하다.

공정한 연금 체계 만들어야

하지만, 위와 같은 긍정적인 평가에도 불구하고 한두 가지 우려되는 점들이 있다.

첫째, 아직도 국민연금 기금의 존치 이유와 역할에 대한 분명한 규명이 부족하다. 정부의 소득보장 강화 대안들에 대해 '기금 고갈을 5~6년 늦출 뿐 그 이후에 대한 대책이 없다'는 비판이 다시 대두되고 있다. 완전 적립식으로 설계하지 않은 공적 연금에서 기금 고갈을 영원히 막는 것이 바람직한가? 필자는 기금의 존치 이유를 '제도 도입 초기, 연금이 없는 노인들과 그들을 부양하면서 자신의 연금을 축적해야 하는 초기 가입자들의 소득 보장과 과도한 출산율 격차가 해소될 때까지의 완충 역할을 하는 데 있다'고 본다. 그 이후에는 기금을 반드시 존치해야 할 이유는 없다.

둘째, 정부의 개혁안은 다층 제도 개혁을 제시하고 있다. 우리도 외형상 다층 연금 제도를 갖추고 있지만 유명무실하거나 기능과 역할이 불분명하다. 이를 시급히 바로잡아야 한다. 하지만, 다층 개혁만으로는 연금 격차에 대한 논란과 사회적 갈등을 피할 수 없다. 이제 내년이 되면 공무원연금 등 특수직역연금의 재정재계산이 시작될 것이다. 국민연금 개혁 논의와 겹쳐 또 다시 무분별한 비난과 사회 갈등이 반복될 것이다. 이제 전 국민이 함께 소득 재분배에 참여하는 사회적 연대를 이루면서 공직의 직업적 특성을 반영하는 공정한 연금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가까운 일본과 미국에서는 민관 공적연금을 통합하여 운영하는 추세다.

국민연금 제도가 도입된 지 30년이 되었다. 제도 도입 11년 만에 '전 국민 연금 시대'를 여는 큰 성과를 얻었다. 하지만 재정 보수주의에 기반을 둔 국가의 재정 책임 회피와 기금 고갈론에 입각해 반복되는 재정 안정화 개혁은 과도한 연금 사각지대를 만들었다. OECD 최고의 노인 빈곤율과 세계 최대의 노인 자살률은 대부분 잘못 설계되고 운영돼 온 연금제도, 특히 공적 연금 제도의 부실에서 온 것이다. 지금, 국민연금 제도 도입 이래 처음으로 '노후 빈곤 완화와 소득 보장 강화'를 개혁 목표로 하는 새로운 관점의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이 제시되었다. 부족한 점들을 철저히 보완하고 개혁에 매진하여 국민을 살리는 연금 체계를 구축하길 바란다.

(이재섭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사회복지위원장은 전 공무원연금연구소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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