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정당 대 소수정당' 최악의 프레임

[최창렬 칼럼] 정치개혁 없는 사회개혁 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시정연설에서 밝혔던 '공정한 기회와 정의로운 결과가 보장되는 포용국가'의 대전제는 한국사회의 운용 패러다임의 변화와 개혁이다. 정권교체 이후 적폐청산이 거둔 성과는 과소평가할 수 없다. 그러나 구조적으로 축적된 사회적 부정의와 소득 불평등의 심화 등의 해소라는 촛불 혁명의 지향은 동력을 잃어가고 있다.

민주화 이후 보편적 현상으로 자리 잡은 행정부 권력과 의회 권력의 분점 상태는 개혁의 제도화를 원천적으로 가로막고 있다. 21대 총선을 앞둔 내년에 정당체제의 변화는 불가피하다. 자유한국당발(發) '보수통합론'이 아니더라도 지금의 정당구도는 민의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당체제가 민의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면 정당정치가 제대로 작동될 리 없다. 정당정치가 작동되지 못할 때 민주주의는 허울 좋은 이데올로기일 뿐이다. 대의 민주주의는 정당정치를 기본으로 하기 때문이다.

권위주의 정권들이 정통성의 위기에 직면했다면, 민주화 이후 정부들은 신뢰의 위기를 마주해야 했다. 한국 민주화의 양대 거목인 김영삼과 김대중 정권 때의 레임덕도 정권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했다.

특히 1996년 말 노동법 강행처리는 다음 해의 정권의 급전직하를 예고했고, 이는 1997년 초 민심의 소재를 파악 못한 김영삼 전 대통령(YS)의 연두 기자회견이 촉매제로 작용하면서 현실로 나타났다. 노동법을 둘러 싼 사회정치적 갈등에 대한 사과와 소통 보다는 합리화와 자만으로 일관한 대국민 메시지는 국민에게 교만으로 비쳤고, 아들의 구속과 한보비리, 외환위기는 IMF 사태라는 경제주권의 상실로 이어졌다.

결국 식물정권으로 전락한 문민정부의 보수정부는 정권을 진보정권에게 넘겨줘야 했다. 사실상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였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 때도 예외가 아니었다. 민주주의는 대표성과 책임성, 반응성을 생명으로 한다. 이 중 하나라도 문제가 발생하면 정권은 신뢰의 위기를 맞는다.

최근 청와대와 집권여당에서 이러한 징후들이 나타나는 현상을 가볍게 보아 넘겨선 안 된다. 여권 지지율의 하락은 경제와 민생의 악화가 원인이라는 데에 이견이 없다. 그러나 개혁의 실종 또한 시민의 지지를 얻지 못하는 중요한 요인이라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역사에는 수구와 반동이 존재한다. 프랑스 대혁명 이후 테르미도르의 반동과 대혁명 이전 보다 가혹한 왕정을 강조한 메테르니히의 반동도 그 중 하나다. 현재의 시점을 문재인 정권 출범 1년 7개월이라는 시기적 요인과 21대 총선거 1년 4개월 전이라는 두 개의 시계에 맞춰본다면 현재의 상황에서 촛불 개혁의 실종이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사실이 명증해진다.

여소야대의 국회, 수구적 역사인식에 매몰되어 있는 제1야당의 존재는 개혁입법을 통한 변화의 동력을 만드는데 실패한 중요한 요인이다. 둘째는 높은 지지율에 안주하여 국회에서 개혁연대와 협치에 소극적이었던 집권세력의 태도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지역주의 청산을 위해서라면 정권도 내놓을 수 있다는 진정성을 보였다.

거대정당의 기득권이 관철되는 정당구도에서 개혁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입증됐다면 21대 국회부터라도 개혁에 나서야 한다. 사회개혁을 위해 정치가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 정치개혁의 핵심은 선거제도의 개혁이다. 각종 선거에서 현재의 선거제도 개혁에 진영과 이념을 초월해서 공감한 이유이다. 그러나 선거를 앞두고 거대정당들은 말을 뒤집고 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얘기다.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은 지난 대선은 물론 그 전의 총선에서도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주장해 왔다. 지난 3월의 정부 개헌안에도 '국회 의석은 투표자의 의사에 비례해 배분해야 한다'고 되어 있다. 현행의 거대정당에 유리한 소선거구제와 다수대표제의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속셈이 아니고는 비례성과 대표성의 강화를 핵심으로 하는 선거제도 개혁에 소극적인 이유를 설명할 길이 없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소선거구제 개편, 의원 정수 확대 등의 정치개혁이 아니고는 기득권 구조를 바꿀 수 있는 제도화는 원천 봉쇄된다. 촛불로 집권한 정권의 초라한 개혁 성적표가 이를 입증한다.

권위주의 정권 때의 정치구도는 민주 대 반민주였다. 문재인 정권 출범 이후의 프레임은 수구 대 개혁, 보수 대 진보의 구도다. 이제 새로운 구도가 탄생했다. 거대정당 대 소수정당의 구도다. 보수 대 진보의 구도와 거대양당 대 소수정당의 구도가 중층적이고 복합적으로 작용하면 정당체제는 국면에 따른 정치거래와 야합의 일상화를 불러올 것이다.

사회의 구조적 개혁은 소수계층의 이익이 과소대표되는 구도의 타파에서 출발해야 한다. 협치와 연대의 상시화를 위한 정당구도의 대변혁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이다. 거대정당 카르텔 대 소수정당의 대척 프레임은 최악의 대진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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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렬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다양한 방송 활동과 신문 칼럼을 통해 한국 정치를 날카롭게 비판해왔습니다. 한국 정치의 이론과 현실을 두루 섭렵한 검증된 시사평론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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