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재량'으로 쓰레기 치우는 10년차 마케팅 전문가

[직장 내 괴롭힘 OUT ①] 근로기준법의 빈틈을 노리는 직장 내 괴롭힘

지난 9월 12일 '직장 내 괴롭힘' 규정을 신설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를 통과했다. 하지만 현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벽을 넘지 못하고 법안의 '무덤'이라 불리는 제2 소위원회로 넘겨진 상태다. 필자가 상담을 통해 만나본 많은 노동자는 개정이 되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기에 조그마한 보탬이 되고자 3회에 걸쳐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의 필요성에 대해 글을 싣는다.

직장에서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는 상담 전화를 자주 받는다. 노래방에서 제대로 놀지 못했다고 다른 직원과 비교당하고 폭언을 들은 노동자, 육아휴직을 사용하였다고 부당한 업무지시를 받은 노동자, 책상을 구석으로 옮겨버려 스스로 회사를 나가도록 압박을 받은 노동자, 대표이사의 비합리적인 회사 운영을 지적하였다고 대기발령 상태로 몇 달째 지내고 있는 노동자들의 이야기가 이제는 낯설지 않다. 괴롭힘을 당하는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익숙해지는 슬픈 현실을 느낄 때쯤 듣는 질문이 있다.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은 언제 통과가 될까요?"

행정기관과 사법기관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는 괴롭힘의 피해자들은 자신을 보호해줄 수 있다는 법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475일 동안 징계만 4차례

근로기준법 제23조 제1항은 정당한 이유 없는 해고, 정직, 감봉 등을 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정당하지 않은 해고처분을 한 사용자에 대한 벌칙 규정은 존재할까? 사실 근로기준법엔 사용자가 부당징계를 한 경우 일정한 처벌을 받는다는 규정은 없다. 부당징계라 하더라도 사용자가 사후적으로 징계만 취소하면 어떠한 처벌도 받지 않는다.

노동자가 징계로 인해 겪는 괴로움은 누구도 보상해주지 않는다. 이런 빈틈을 노려 해고와 복직을 반복하며 노동자가 지쳐서 스스로 퇴사하게끔 괴롭히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퇴사를 종용하기 위한 ‘직장 내 괴롭힘’의 한 유형이다.

필자가 만난 노동자 A는 작년부터 지금까지 정직 2회, 징계해고 2회를 당했다. 그리고 노동위원회는 4차례에 걸쳐 모든 징계가 부당하며 원직에 복직시키라는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사용자는 복직명령에 따라 A를 복직시킨 뒤 다른 사유를 들어 징계다. 그렇게 '징계 - 부당징계로 인정 - 징계취소 및 복직명령 – 복직 이후 징계'로 이어지는 과정만 벌써 3차례다. 이렇게 이어진 징계가 470일을 넘었고 이 기간에 A가 정상적으로 출근한 날은 15일에 불과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징계취소 이후 A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창고에 홀로 비치된 책상이었다. 사용자는 A를 전담할 직원을 고용하여 일거수일투족을 확인했고, 생산관리자 업무를 담당한 A에게 잔가지 제거 및 화장실 청소업무를 맡겼다. 전형적인 '직장 내 괴롭힘' 행위였다. 물론 사용자는 겨울철 화재 예방을 위한 정상'적인 업무라고 주장했다.

사용자는 징계 외에도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월급통장을 압류하였고, 절도미수 및 건조물침입으로 고소장도 제출했다. 손해배상을 제외한 모든 사건에서 A의 주장이 타당하다고 결론이 났지만, A에게 남은 것은 우울장애와 적응장애 뿐이다. 법적으로 A가 이겼지만, 해고를 다투는 기간 동안 일용직으로 공사현장에서 생활비를 벌어야 했고, 사용자는 어떠한 처벌도 받지 않았다.

경력 10년차 마케팅 전문가에게 쓰레기 분리수거를...

근로기준법은 징계에 대해서 사용자에게 정당한 이유를 요구하지만, 인사명령이라면 사용자에게 상당한 재량을 인정해주고 있다. 여기서 인사명령이란 부서이동, 업무변경, 대기발령과 같은 처분을 의미한다. 회사 내부사정에 따라 담당업무가 일부 변경될 수는 있지만, 괴롭힘을 목적으로 노골적인 형태로 인사명령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스포츠센터 센터장에게 직급에 맞지 않는 수영강습을 시킨다거나, 경영부서의 직원을 지방에 있는 현장 관리자로 보내는 것처럼 인사명령이지만 사실상 근로의욕을 떨어뜨리고 성취감을 느끼기 어렵게 만들어 스스로 퇴직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인사명령 형태의 괴롭힘이 발생하는 이유는 업무상 필요성이 인정된다면 노동자에게 감수할 수 없을 정도의 불이익이 없는 한 인사명령은 재량권을 남용하지 않아 정당하다는 것이 법원의 논리이기 때문이다. 인사명령 형식을 띠고 있다면 퇴사를 목적으로 했다는 것이 명백하지 않은 한 노동자가 처분의 부당성을 다퉈서 이기기 어렵다. 부당함을 다투는 것을 포기한 노동자는 중이 절을 떠나듯, 사직서를 제출할 수밖에 없다.

노동자 B는 마케팅 관련 업무만 10년, 전체경력은 15년의 전문가다. B는 경력을 인정받아 고객관계마케팅 총괄업무를 맡기로 하여 C업체에 채용되었다. 당시 C업체는 고객관계마케팅을 위해 오랫동안 거래해왔던 위주업체를 선정해둔 상황이었지만, 외주업체는 고객관계마케팅 전문업체가 아니었다. 외주업체가 고객관계마케팅 전문업체가 아니다 보니 전문적 영역에서 의사소통에 문제가 발생했고 B는 메일을 통해 업무진행방식, 의사소통방식 등에 대해 개선하고자 노력했다.

B는 자신이 맡은 업무에 최선을 다하고자 정당한 요구를 했지만, 이에 외주업체가 불만을 제기하자 C업체는 외주업체와 갈등을 유발했다는 이유로 B에게 자진퇴사를 요구했다. 만약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대기발령을 할 것이고 더 괴로울 것이라는 친절한(?) 예고도 아끼지 않았다. B가 자진퇴사를 거부하자 예정된 괴롭힘이 시작되었다.

C업체는 총무파트라는 직무를 신설하면서 이 업무를 B에게 맡겼다. B를 괴롭히기 위한 인사명령이었다. B가 수행한 업무는 1년 치 계약서에 직인 날인하기, 쓰레기 분리수거, 탕비실 정리, 물품정리, 사내 대청소 기획 및 실행 등이다. C업체는 동료들에게 B를 도와주지 말 것을 지시했고, B에게는 "본인 일인데 혼자 못 하냐", "과장급이면 생각을 좀 하고 해라", "초등학생같이 일일이 다 가르쳐줘야 하냐?"며 괴롭힘 수위를 높였다.

심지어 전국 매장에서 근무하고 있는 C업체 소속 모든 아르바이트생 근로계약서를 정리할 것을 지시하면서 여섯 박스의 서류를 벽면 가득 채워주었다. 다행히도 최근 노동위원회는 C업체의 행위가 부당하다는 결정을 내려, 인사명령이 사실상 퇴사를 목적으로 한 것이라는 B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노동위원회 결정에 따라 C업체가 B를 원래 업무에 복귀시킨다면 사건은 종결될 것이다. 3개월의 기간 동안 노동자B는 모욕감을 견디며 업무를 수행했지만, 근로기준법은 괴롭힘의 가해자에 대해선 어떠한 책임을 묻지 않는다.

근로기준법 개정을 통해 빈틈을 조금씩 메워야 할 때

근로기준법의 빈틈에서 발생한 괴롭힘을 제한할 형벌적 방법은 사실상 없다. 국가인권위원회 역시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연구는 이뤄지고 있으나 구제할 방안을 내놓지 못했고, 고용노동부 소속의 노동위원회를 통한 구제도 불가능하다. 결국 보상을 받기 위해 만사소송을 제기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 현실이다.

최근 웹하드 업체에서 사용자가 상식이하의 행동을 벌였지만, 그에게 적용된 혐의 중 근로기준법 규정은 거의 없다는 것은 근로기준법의 빈틈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발의 된 것은 결국 보호받지 못한 '빈틈'을 메우기 위함이다.

개정법이 주요 내용은 근로기준법에 규정을 신설하여 '직장 내 괴롭힘'의 정의, 예방교육, 발생 시 사용자의 의무, 피해자에 대한 추가적인 불이익 금지를 담는 것이다.

개정될 근로기준법은 '사용자 및 근로자는 직장 내외에서 직장 내의 지위나 인간관계 등의 직장 내 우월성을 이용하여 업무의 적정 범위를 벗어난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가하거나 업무 환경을 악화시키는 일체의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라는 규정을 통하여 '직장 내 괴롭힘'의 개념을 정의하고, '직장 내 괴롭힘' 예방교육을 의무화하고 있다.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모든 '직장 내 괴롭힘'을 근절시킬 수는 없겠지만, 법적 정의를 마련한다는 것은 상당한 진전이다.

노동사건에서 유의미한 판결을 여러 차례 내렸던 김지형 전 대법관은 수습 공인노무사들을 위한 강연에서 "노동법은 노동인권법이다"이라고 말하였다. 필자 역시 '노동인권법'이라는 속성이 근로기준법이 개정되어야 할 방향타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헌법에 따라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근로기준을 정한 법률이 근로기준법이므로 보호의 영역은 임금, 노동시간, 일자리에만 국한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노동법이 '노동인권법'의 본질적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서라도 ‘직장 내 괴롭힘’을 방지할 수 있도록 반드시 개정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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