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장집 "국회의원 늘려야 민주주의에 부합한다"

"과감한 연동형 비례제 말하기 어려워…최소주의 개혁해야"

선거제도 개혁이 자유한국당의 외면과 더불어민주당의 후퇴로 벽에 부딪힌 가운데,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 등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 자문위원들이 입모아 국회의원수 증원을 주문했다.

이날 오후 국회에서 열린 정개특위 자문위원 간담회에서 최 교수는 발제문의 절반 가까이를 의원수 확대 필요성을 설명하는 데 할애했다. 최 교수는 "민주주의를 더 넓은 다수의 복리, 다수의 이익과 의사에 복무하도록 만들기 위해 노력하려 한다면, 현 시점에서 의회기능을 활성화하고, 시민들이 선출하는 대표의 수를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국회의원 1인당 국민 수가 OECD 국가 평균 10만 명이지만 한국의 국회의원 1인당 국민 수는 17만 명"이라며 "국회의원 수가 거의 변하지 않는 동안 청와대의 규모는 민주화 이후 지속적으로 확대된 상황에서 견제를 위한 국회의원 증원은 필요하다"고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제안에 반론을 제기할지 모른다. 많은 사람들은 예산만 잡아먹고 일하지 않는 국회의 규모를 줄여 의원수를 200 명으로 하자고 주장하는가 하면, 국회의원들의 '특권'을 내려놓거나 줄여야 한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만약 스스로를 민주주의자라고 믿는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것은 커다란 오해가 아닐 수 없다. 그러한 발상은 민주주의의 본질이 효율성, 생산성의 가치를 중시하는 정책의 산출(output)측면에 있다고 믿는 결과로, 그는 민주주의보다는 권위주의가 훨씬 더 우월한 체제라고 믿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국민 정서'를 핑계로 국회의원 증원 문제를 외면하는 정치권을 우회 비판한 것이다. 최 교수는 현재 지역구 의석인 253석은 그대로 두고 47석인 비례대표 의석을 80~90명 정도로 늘리는 방식을 제안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와 관련해 정치권은 독일형 선거제도를 모델로 삼고 있지만, 최 교수는 "과감하게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가야한다고 말하기 어렵다"며 '최소주의 개혁', 즉 온건 절충형 개혁을 제안했다.
다원적 요구가 정당을 통해 정치에 반영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하지만,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견인할 다당제 질서가 한국의 정치 풍토와 조응할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과거 유신체제가 내걸었던 말의 하나는 '행정적 민주주의'였다. 권위주의를 행정적 민주주의라고 할 때, 그것은 일면 진실을 갖는다. 한국정치사에서 유신체제보다 산출의 효율성을 잘 실현했던 체제가 어디에 있겠는가. 그것이 지표가 될 때 유신체제는 민주주의보다 분명히 우월하다. 민주주의의 본질은, 사회의 다원적 요구와 열망, 가치와 열정을 정치과정을 통해 지지와 결정의 채널 속으로 연결하는 투입 (input) 측면에 있다.

한국사회에서 이념, 가치, 정책비전이 뚜렷하게 구분되는 정당들을 얼마나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인지 또한 분명치 않다. 극우와 극좌정당도 가능할 수 있다. 군소정당들이 난립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한국은 현재 정당비례대표를 위해 총득표 3% 문턱을 설치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선거제도가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확대될 때 다당제는 예견될 수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말해 비레대표제의 약점은 대표성이 확대되는 것만큼 책임성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나는 그 중간을 선택하고자 한다. 그동안 한국정치에서는 책임도 책임이지만, 대표가 너무 협소했다. 그래서 비례대표제는 필요하다. 그러나 이 대표의 범위를 독일처럼 다당화를 통해 실현한다고 할 때 그 효과에 대해 많은 의문점들이 제기된다. 그러나 어느 정도의 다당화는 필요하고, 긍정적이다."

최 교수는 "분명히 비례대표제가 사표발생이 적고 다양한 사람을 대표하는 장점을 갖고 있다"면서도 "소수정당들이 정책 대안을 갖고 연정구성에 합의해야 하는데 이런 방식의 경쟁이 한국 정치에서 가능한지 의문"이라고 했다.

또한 "한국의 정당은 실제 정책 측면에서 차이를 나타내지 못하고 그들의 정치적 위치 즉 여당이냐 야당이냐에 따라 다를 뿐"이라며 "다당제가 되면 크고 작은 비토 플레이어를 양산하게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3~4당이 경쟁하는 다당화는 필요하지만 대안을 내놓지 못하는 정당의 난립은 오히려 정치적 교착을 강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국회의원 의석수를 늘리는 것을 전제로 시작하고 있다"며 "그러나 국회의원 수를 늘리겠다고 하면 지금같은 분위기에서 국민이 쉽게 용납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김 전 의장은 "이는 국민에 하소연할 문제는 아니고 국회의원 수를 늘려도 된다는 점을 보여줘야 한다"고 국회의 적극적인 태도 전환을 촉구했다.


김진국 중앙일보 기자도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방향으로 나가야 하고 이를 위해 현재보다 의원 수를 증원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현재 제도로는 비례성을 맞추기가 어렵기 때문에 결론부터 말하면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가는 게 맞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50~60명의 의원을 늘려 최소한의 숫자를 맞춰야 하는 게 아닌가"라고 말했다.

성한용 한겨레 기자는 "지금 국회의원 선거제도 개편을 대표성과 비례성 등 디테일에서 방해하기 시작한다면 선거제도 개혁을 좌절시킬 수 있다"며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바꾸지 말자는 기득권 세력이다. 현실적인 대안을 모색하려는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21대 총선을 어느 정당이 이길지 모르기 때문에 지금이 선거제 개편이 가능한 시점"이라고 덧붙였다.

성 기자는 또한 "국민이 욕하기 때문에 의원 정수를 늘릴 수 없다고 생각하지 말고 욕먹고 늘려야 한다"며 "존경까지는 아니더라도 국민에게 인정받고 떳떳하고 자부심 있게 국회의원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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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연

프레시안 박정연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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