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레일 정창영 사장은 4일 <뉴스Y> 인터뷰를 통해 "오늘 모 신문에서 일부 (코레일이) 정부에 반발을 한다고 하는데, 코레일은 정부의 정책을 집행하는 기관이다"라며 "정부가 정책을 결정하면 따를 수밖에 없는 기관이기 때문에 정부 정책에 반발한다는 그런 것은 할 수가 없다"고 밝혔다. 코레일 관계자는 "이 발언 그대로 해석하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정부는 "민간 차원에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에 개입 여지가 없다"고 말해왔지만, 최근 코레일의 용산 사업 관련 회계와 철도 운송 사업 관련 회계 분리를 요구하면서 '개입'으로 돌아섰다. 즉 코레일의 다른 사업 관련 자산이 용산 사업에 투입되는 것을 원천적으로 막겠다는 의미로, 코레일에 '사업 포기'를 종용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관측이 나왔다. 여기에 대해 코레일이 용산 사업 정상화에 대한 의지를 거듭 보이자, 일각에서 코레일이 "정부 방침에 반발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던 것이다.
이에 대해 정창영 사장이 "정부가 결정하면 따를 수밖에 없다"고 한 것은 코레일이 향후 용산 사업을 축소해 진행하거나, 아예 손을 떼는 방안까지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정 사장은 이어 "용산 사업이 워낙 크기 때문에 여기에 대한 리스크가 워낙 크다. 이 때문에 국민 여러분들이나 정부도 걱정을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앞으로 이 사업의 경제적인 효과라든지, 또 부도가 났을 때, 디폴트가 났을 때 경제적인 파장 등에 대해서 정부와 충분하게 대비해서 원만한 해결책을 만들어 내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 사업 ⓒ코레일 |
코레일의 고민, 축소냐 폐기냐
정부의 방침과 정 사장의 발언을 근거로, 코레일이 할 수 있는 방안으로 두 가지를 유추할 수 있다. 물론 여기에는 강력한 변수가 존재한다. 바로 오세훈 전 서울시장 시절 서울시의 개입으로 개발 부지에 편입된 서부이촌동 주민 보상 문제다.
첫 번째는 코레일이 국토부 요구를 수용한 뒤 용산 개발을 그대로 진행하는 방안이다. 이 경우 코레일의 담보 대출 능력이 약해질 것이 불을 보듯 뻔하고, 또 재정 투입이 제한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코레일은 사업 축소를 검토할 수밖에 없다. 이 경우 민간 투자자들의 반발이 변수가 될 수 있다. 현재 민간 출자사 중 일부는 코레일이 주도하고 있는 '사업 정상화 방안'에 불만을 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향후 사업성이 없다고 판단되면 사업을 포기할 수 있다"는 조항까지 포함돼 있어 코레일이 '최종 부도'를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을 떨칠 수 없다는 것이다. 일부 민간 출자사는 코레일이 주도해 마련한 '정상화 합의서'의 몇몇 조항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버티고 있다.
시행사인 드림허브 측은 4일 오후 6시까지 29개 출자사로부터 '정상화 합의서'를 받을 방침이다. 이와 관련해 용산 사업 관계자는 "오늘 마감되는 상황을 봐야겠지만, 만약 한두 곳의 출자사가 합의서를 제출하지 않거나 합의할 수 없다고 나오면 내일(5일) 있을 주주총회는 의미가 없게 될 수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 경우 코레일은 민간 출자사들과 추가 합의문 조정에 나서거나, '발을 빼겠다'고 할 수 있는 민간 출자사들과 협의를 진행해야 한다.
두 번째는 정상화 방안을 폐기하거나, 정상화 방안을 무산시킨 후 코레일이 자사 소유 부지만 개발하는 방안이다. 이 경우 용산 사업은 사실상 부도가 나게 된다. 정 사장이 "부도가 났을 때 경제적 파장"을 언급하면서, 코레일이 아예 사업에서 손을 떼는 상황도 상정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정 사장은 인터뷰를 통해 "철도 운송인 코레일이 여기에 과연 참여하는 것이 맞았나, 국민들이 염려하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며 근본적인 의문까지 제기했다. 이 경우 코레일은 미리 받은 땅값 2조6000억 원을 돌려준 후 땅을 환수해 일부 부지를 민간에 매각하는 방식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용산 사업이 최종 부도 처리되면 서부이촌동 주민 2200여 가구는 그야말로 막대한 피해를 보게 된다. 이 경우 주민들의 집단 소송이나 민간 출자사의 대규모 소송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그간 인허가권을 가진 자치단체인 서울시와 민간 출자사, 코레일, 그리고 정부까지 낭비한 사회적 비용을 돌려받을 길도 없어진다. 이들 사이에서는 책임 공방이 치열해질 수 있다.
▲ 용산국제업무지구에 편입된 서부이촌동 ⓒ프레시안(최형락) |
입법조사처 "사업 재개 전에 서부이촌동 주민 보상 이뤄져야"
좌초 위기에 처한 용산 사업과 관련해 국회입법조사처가 이날 <이슈와 논점>을 통해 사업 정상화 방안을 제시해 주목된다. "초기 부담금이 적은 단계적인 개발로 사업 계획을 변경할 필요가 있어 보이고, 상대적으로 취약한 자기 자본(3.77%에 불과)을 10% 이상으로 확대해 관계자 및 출자자 간 사업 성공을 위한 고통 분담이 있어야 한다"는 취지로 해결책을 제시한 것이다. 최종 부도로 가는 것보다 출자자들의 고통 분담을 포함한 사업 축소 쪽으로 방향을 잡는 것이 맞다는 말이다.
입법조사처는 이어 "6년간 지지부진한 사업 추진으로 피해를 보고 있는 서부이촌동 주민 보상을 위한 대책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하며 "사업 재개 전에 서울시, SH공사 등과 코레일이 협의해 현재 생계 곤란을 겪고 있는 영세 상인이나 원주민에 대한 생계 자금 지원 방안이 조속히 모색되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입법조사처는 "이를 통해 2009년 발생한 용산참사와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입법조사처는 이어 "이번 사태를 계기로 향후 코레일이나 SH공사 등과 같은 공공 기관의 경우, 투자 위험 관리에 만전을 기할 수 있는 입법적 방안이 모색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무분별한 사업이 남발돼 결국 수많은 피해자가 생기는 사태에 대해 그간 '뒷짐'을 지고 있던 국회에 대한 우회적 비판인 셈이다.
도시 계획 전문가인 서울대 환경대학원 김경민 교수는 "코레일과 정부의 의도를 현재 파악하기는 어렵다"면서도 "입법조사처가 내놓은 정상화 방안은 의미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하나 덧붙인다면, 용산 사업의 이번 디폴트 사태의 원인을 분석해 드림허브와 그 출자사들에게 책임을 묻는 절차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다"며 "이를테면, 주식을 감자하도록 하거나 하는 식의 조치가 있은 후 사업이 정상화되는 것이 맞다"고 주장했다.
▲ 서부이촌동 한 아파트에서 바라본 한강 풍경 ⓒ프레시안(최형락) |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