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하나의 안을 만들지 못하는 이유는 국민연금을 둘러싼 입장 차이가 첨예하기 때문이다. 국민연금 기금 고갈을 막고 장기적인 재정 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보험료율을 올리고 소득대체율을 예정대로 낮추어야 한다는 주장과, 대선 시기 문재인 후보의 공약대로 소득대체율을 인상해야 한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노동계는 소득대체율 50%를 주장하나…
노동계를 대표하는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그리고 시민사회에서 영향력을 가진 참여연대를 비롯해 많은 시민사회단체가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현행 40%에서 50%로 인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조합원들의 이해관계를 고려해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인상을 주장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국민연금의 개혁을 현 세대를 위한 보장성 중심으로만 사고하는 것은 일면적이다. 세대 간 지속가능성과 세대 내 계층별 형평성을 바탕으로 한 국민연금의 연대의 정신을 거스르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신중해야 한다.
연금 개혁의 시야를 넓혀야 한다. 기초연금이 시행되고 있는 지금 시기에 공적 연금에 대한 논의를 국민연금 중심으로 가져가기에는 한계가 있다. 기초연금을 주목하자. 1988년 국민연금이 도입될 당시만 해도 일반 국민에게 적용되던 법정 연금은 국민연금 하나뿐이었다. 그러나 2008년 기초노령연금이 도입되어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의 5%에 해당하는 급여를 지급하기 시작했고, 2014년부터는 기초연금으로 이름이 바뀌면서 금액이 두 배로 올랐으며, 2018년 9월부터 기초연금액이 25만 원으로 인상되었다.
기초연금법은 소득 하위 70% 노인들에게 기초연금을 지급하도록 하고 있는데 이미 그 수급자가 500만 명을 넘어섰다. 국민연금공단에 따르면 2018년 5월 기준으로 65세 이상 인구 748만1724명 중 기초연금수급자는 500만3410명(66.9%)이다. 국민연금 수급자는 294만3131(39.3%)명이고, 기초연금과 국민연금 동시 수급자는 185만7989명(24.8%)이다.
노동시장 격차를 지닌 한국에선 기초연금에 주목해야
기초연금의 도입은 보편적 복지 실현과 노인 빈곤 해결에 큰 도움이 되는 제도적 진전이다. 따라서 노동시장의 격차 구조로 인하여 노후 보장의 사각지대가 존재하는 한국에서는 기초연금을 더욱 강화할 필요가 있다. 물론 국민연금도 중요한 노후소득보장 수단이지만, 현재 낮은 보험료율로 인해 세대간 형평성 문제를 안고 있어, 더 이상 소득대체율 인상을 논의하기는 어려운 게 현실이다.
이에 앞으로 연금 개혁 논의의 중심축을 국민연금에서 기초연금으로 이동시킬 필요가 있다. 현행 25만 원인 기초연금액이 노인 최저생계비에 근접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지난 2017년 5월에 치러진 19대 대선에서 원내 5당의 대선후보들은 모두 기초연금 강화를 공약으로 제시하였다. 당시 월 20만 원이던 기초연금액에 대해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30만 원으로 일괄 인상을, 국민의 당 안철수 후보는 소득하위 50%를 대상으로 월 30만 원으로 인상을, 바른미래당 유승민 후보는 소득하위 50%를 대상으로 차등적 인상을 공약하였다.
수급 대상과 관련해서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현행 소득하위 70%를 65세 이상 노인 100%로 확대하겠다고 공약하였는데 이는 기초연금의 보편성을 강조하는 방향을 제시한 것이다.
올해 기초연금법 개정에 따라 2018년 9월부터 기초연금액이 월 20만 원에서 25만 원으로 인상되었다. 정부의 계획에 따라 2019년부터 소득 하위 20%인 150만 명의 노인은 5만 원이 더 오른 월 30만 원을 지급받고, 2021년에는 노인 70%가 기초연금 30만 원을 받을 예정이다.
기초연금 강화를 위한 네 가지 제안
기초연금액 월 30만 원에 대해서는 원내 정당들 사이에 큰 이견이 없으므로 조만간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월 30만 원만으로는 기초연금이 온전한 효과를 거두는 데 한계가 존재한다. 기초연금의 내실화 작업도 병행해야 한다.
첫째, 소득 하위 계층에게는 보충 연금을 추가로 제공하고 기초연금 기준액을 노인 최저생계비에 근접하도록 지속적으로 인상해야 한다. 소득의 대부분을 기초연금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빈곤 노인들에게는 월 30만 원은 매우 부족한 돈이기 때문이다.
OECD는 기초연금 급여율을 상시 노동자의 평균 소득을 기준으로 계산하고 있는데, 이 방식에 따르면 우리나라 기초연금은 30만 원에 도달해도 대체율이 10%에 이르지 못한다. 반면 기초연금을 운영하는 OECD 18개국의 평균 급여율은 20.1%이고 뉴질랜드의 기초연금 급여율은 40%에 이른다. 캐나다와 핀란드는 소득 하위 계층에게는 보충 연금을 추가로 지급함으로써 저소득 노인들의 노후 소득을 보장하고 노인 빈곤율을 낮추고 있다.
둘째, 기초연금을 국민연금 가입 기간과 연계해 감액하는 방식을 폐지해야 한다. 현행 제도의 논리는 국민연금 급여 안에 균등 급여가 존재하니 가입 기간만큼 기초연금을 감액하겠다는 것인데, 이는 공적연금에 대한 논란을 생산적으로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국민연금의 개혁 과제는 국민연금 제도 안에서 다루는 것이 타당하며, 그 부담을 기초연금으로 전가하는 것은 공적 연금 개혁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판단한다.
셋째, 기초연금액의 조정 기준을 물가 연동 방식에서 소득 연동 방식으로 되돌려야 한다. 소득 연동 방식으로 계산하면 2021년 기준으로 기초연금은 30만 원이 아니라 국민연금 가입자 평균 소득 250만 원의 15%에 해당하는 37.5만 원이 되어야 한다. 2007년 제정된 기초노령연금법에서는 기준연금액을 국민연금 급여율의 5%로 규정하였는데, 2014년 기초노령연금법 폐지와 함께 새롭게 제정된 기초연금법은 기준연금액을 사실상 물가변동률에 연동시켰다. 기초연금 조정 기준을 소득 연동 방식으로 되돌리기만 해도 기초연금 인상의 효과가 빠르게 나타날 것이다.
넷째, ‘줬다 뺏는 기초연금’ 문제를 시급히 해결해야 한다. 약 40만 명의 기초생활보장 수급 노인들이 매달 기초연금을 받지만 다음 달 생계급여에서 기초연금액만큼 삭감당하고 있다. ‘줬다 빼는 기초연금’으로 인해 기초연금이 가장 절실한 노인들이 그 혜택에서 배제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는 기초생활보장제도에서 생계급여를 계산하는 기준인 소득인정액에 기초연금을 포함했기 때문이다. 이에 빈곤 노인들은 기초연금을 소득인정액에서 제외시켜 생계급여와는 별도로 기초연금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국회입법조사처(2014)와 국회예산정책처(2016)도 보고서를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할 것을 제안한 바 있다. 40만 기초생활보장 수급 노인들에게도 실질적인 기초연금을 보장하는 것이 제도 도입 취지를 살리는 것이므로 ‘줬다 뺏는 기초연금’ 문제는 반드시 시급하게 해결해야 한다.
연금 개혁, 방향이 중요
얼마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노사정대표자회의 산하에 연금개혁특별위원회가 출범했다. 조만간 정부도 연금개혁안을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이제 본격화할 연금 개혁 논의, 그 방향이 중요하다. 공적 연금 개혁에 대한 논의가 국민연금에 머무르지 않고 기초연금 강화로 이어지기를 절실히 기대한다.
(김수정 내가만드는복지국가 회원은 전 정의당 관악구의원 후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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