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정부의 SOC 정책과 생활 SOC 확충 정책의 차이
그러나 경제가 발전하고 산업구조가 고도화되면서 더 이상 SOC 사업은 경제 성장이나 고용률 증가에 긍정적으로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 참여정부 시절에도 철도나 항만 등 일부 부족한 분야가 있었지만, 도로 건설은 당장 건설을 중지해도 이미 140%나 과잉 설립돼 있었고, 공항도 국가적으로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이 건설된 것으로 나타났다(<사회간접자본(SOC) 축적도에 관한 연구
기존의 SOC 사업 외에 이명박 정부는 4대강 사업을, 박근혜 정부는 부동산을 통한 경기 부양을 강조했다. 하루에 차가 몇 대 다니지도 않는 도로를 4차선으로 확장하거나, 지역 정치인들의 요구로 건설한 지방 공항들이 이용객이 적어 개점 휴업 상태로 유지되고 있다. 그럼에도 가덕도 신공항이나 흑산도 공항 등은 여전히 지역 정치인들의 민원 사항이 되고 있다. 이제 우리나라는 토목이나 건설 사업을 해도 고용이 별로 늘지 않고, 실제로 경제가 활성화되는 효과도 이전 만큼 크지 않다. 오히려 불필요한 SOC 사업에 과잉 투자한 피해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SOC 과잉 투자의 대표적인 사례가 민자 고속도로 건설 사업이다. 추진 당시 정부의 조사 결과에도 도로 건설이 과잉돼 국가 재정으로 투자하기에는 필요성이나 타당성이 낮았다. 그러나 정치인들이 요구하고 건설업체가 로비를 하니 민간 자본으로 도로를 건설하고, 대신에 정부는 관련 투자의 수익률을 보장한 정책이 바로 민자 고속도로 건설 사업이다. 인천국제공항 고속도로와 천안-논산 고속도로, 그리고 광주 제2순환도로 등 멕쿼리 투자회사가 관여한 곳을 포함해 현재 운영 중인 민자 고속도로는 총 18개나 된다. 통행량이 적은 곳에 무리하게 도로를 건설하고 투자 수익률까지 보장하다 보니, 결국 통행료를 높게 받고 추가로 정부가 운영 적자를 보전해 주어야 하는 등의 이중 부담을 지게 되었다.
2018년 6월 기준으로 이들 민자 고속도로들의 평균 통행료는 재정 고속도로 대비 1.43배나 높다. 그러다 보니 국민들의 82.8%가 민자 사업을 통해 건설된 SOC 사용료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다(<민자 사업 인식도 조사>, KDI, 2017).
그래서 지난 8월 27일, 정부는 민자 고속도로 통행료 인하 사업을 발표했다. 인천공항(2.28배), 천안-논산(2.09), 대구-부산(2.33), 인천대교(2.89), 서울-춘천(1.50) 등 통행료가 재정 고속도로 대비 1.5배 이상(5개)인 노선을 대상으로 통행료 인하 효과가 큰 사업 재구조화를 추진한다. 운영 기간 연장 등 노선별로 적합한 재구조화 대안을 적용해서 통행료를 인하하려는 것이다.
또 통행료가 재정 고속도로 대비 1.2~1.5배 수준인 광주-원주(1.24), 상주-영천(1.31), 구리-포천(1.23) 노선은 자금 재조달을 통한 통행료 인하를 추진한다. 교통량, 시장 금리, 자본금 감자 가능 여부 등을 고려해 민간 사업자와 협의해서 통행료 인하를 추진한다. 그리고 통행료가 재정 고속도로와 유사 수준(0.9~1.19배)인 10개 노선은 향후 통행료 인상 요인을 감안한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통해 통행료가 올라가지 않도록 관리하기로 했다.
이런 정책은 지난 정부의 과오를 정상화하는 '적폐 해소' 정책의 일환인 측면도 있지만, 민간 자본에 맡겨 발생한 비효율을 정상화한다는 측면에서도 매우 의미 있다. 향후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 민영화했던 여러 가지 사업을 다시 공공화하는 시범 사업의 의미도 있다.
SOC의 새로운 대안은 생활 SOC 확충 정책이다
새 정부에서는 도로 건설이나 공항, 그리고 댐 건설 등 전통적인 SOC는 그동안 지속적인 투자로 스톡(누적)이 상당 수준 축적되었다고 판단한다. 이에 따라 신규로 사업을 벌이기보다는 완공 소요 위주로 투자를 하고, 기존 시설들에 대해서는 노후를 대처하는 등 안전 투자 등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도로나 댐 건설 등의 SOC는 한시적인 소규모의 고용 외에는 더 이상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고용을 창출하지도 못하고, 사업이 끝나면 고용이 지속되지도 않는다.
하지만 갑자기 이 분야의 사업을 줄일 경우 건설과 토목 등 관련 산업 분야에 피해가 크고, 종사하는 분들이 실업자가 되기 때문에 서서히 줄여나가고, 그 내용을 바꿔나가는 정책을 채택했다. 2019년 전체 SOC 예산은 19조 원에서 18.5조 원으로 2018년 대비 소폭 축소했다. 그런데 지역 경제와 고용에 미치는 영향을 감안해서 도시 재생이나 공공 주택 건설 등 사실상 SOC 성격의 건설 투자는 오히려 확대하는 정책을 채택했다. 도시 재생이나 공공 주택 건설을 포함하면 전체 건설 투자 규모는 2018년 27조 원에서 2019년에는 27.9조 원으로 증가한다.
또 정부는 지난 8월 27일, 경제 관계 장관 회의를 통해 생활 SOC 확충 정책을 확정했다. 생활 SOC 투자를 통해 삶의 질 향상, 지역 일자리 창출, 그리고 지역 경제의 활성화라는 '일석삼조(一石三鳥)'의 효과를 목표로 하는 정책을 담아 국회에 제출된 정부 예산안에도 반영했다. 이 정책의 목적은 다음과 같다.
첫째, 생활 SOC 투자는 국민 생활과 밀접한 생활 인프라를 확충해 삶의 만족도 제고하고, 누구나 쉽고 편리하게 여가 생활을 향유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며, 다양한 일상의 위험으로부터 안심하고 생활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겠다는 것이다.
둘째, 생활 SOC 투자는 전국 단위가 아니라 기초지방자치단체 등 지역 단위의 투자 확대로 지역의 일자리 창출 기반을 확충하고, 생활 인프라 확충을 통해 관련 산업(서비스·건설업 등)의 일자리를 창출하며, 신산업 분야 투자로 지속 가능한 고용 창출 기반을 마련한다.
셋째, 생활 SOC 투자는 지역 특성을 고려한 맞춤형 투자를 통해 지역 경제 활성화 및 취약지역의 산업 기반을 확충·고도화해 경제의 활력을 제고하고, 대도시·중소도시·농어촌 간 삶의 질 격차 완화를 목표로 한다. 이를 위해 관련 분야에 투자하던 5.8조 원에 더해 신규로 약 3조 원을 투자하고, 지방자치단체의 대응 투자를 포함해 내년에만 약 12조 원을 생활 SOC 확충에 투자한다.
생활 SOC 확충이 소득주도 성장 정책이 되려면?
예를 들어 노인들이나 성인들의 체육 활동은 급증하고 있는데, 늘어나는 생활 체육 수요에 비해 체육 시설의 공급은 턱없이 부족하다. 또 이들 생활 체육 시설은 지역 주민들의 생활 권역별이 아니라 주요 거점 위주로 설립돼 있어 접근성이 낮다. 이번에 발표된 정책에는 우선 생활형 30개소, 장애인 체육센터 30개소, 근린생활형 체육센터 100개소 등을 추가로 설치해 생활 SOC 투자를 통해 '걸어서 10분 이내 거리'에 체육시설 접근이 가능하도록 국민체육센터를 추가로 설치하겠다는 전략이 포함됐다.
이번에 발표된 체육시설 확충 생활 SOC 투자가 소득주도 성장 정책이 되려면 단순히 시설을 늘릴 뿐만 아니라 사람도 늘려야 한다. 지역사회 스포츠 클럽 활성화 사업을 결합하거나 국민건강보험공단과 국민체육공단 등 공공기관에서 '생활 체육 지도자'를 이들 시설에 충분히 배치해 지역 주민들은 비용을 별로 들이지 않아도 원하는 종목의 운동을 배우고 시합도 하는 식으로 즐길 수 있도록 하면 국민이 체감하는 삶의 질은 엄청나게 높아질 수 있다.
또 한국은 주요 선진국 대비 도서관 공급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공공 도서관 보급률은 도서관 1관 당 인구수로 비교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도서관 하나 당 인구가 5만 명인데 비해 미국은 3.4만 명이고, 이웃나라 일본도 3.9만 명이다. 심지어 독일은 1.1만 명으로 우리나라 보다 인구 대비 도서관 숫자가 5배나 많다.
한국의 공공 도서관은 대부분이 대형으로 지어져 이용하기에 편리하지 않다. 최근에는 인터넷 검색 사이트나 유튜브 등 e-콘텐츠를 통해 정보를 취득하는 경향이 확산돼 기존의 도서관 활용도는 급속하게 저하되고, 독서실 등으로 전락하고 있다. 그래서 생활 SOC 투자를 통해 작은 도서관을 모든 시·군·구에 1개씩 설치해 기존의 16개에서 243개로 늘리는 정책이 발표됐다. 또 50개의 도서관을 대상으로 기존의 노후 도서관은 북 카페형 공간 등으로 리모델링하는 예산을 지원한다.
도서관 확충 정책이 소득주도 성장 정책이 되려면 작은 도서관 숫자를 늘리는 것과 동시에 도서관 사서를 많이 배치해 실제로 도서관 서비스를 개선해야 한다. 어린이의 독서 능력이나 지적 수준, 그리고 관심 영역에 맞는 동화책을 권해 주거나, 성인의 경우 관심 분야 고전과 신간 도서를 소개하는 등 맞춤형 사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면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고 인문학을 부흥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1만1300여 개의 전국 학교 도서관을 공공 도서관으로 리모델링하고 도서 구입비를 지원하고 사서를 추가로 배치한다면 국민의 삶의 질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일부 지방자치단체의 경우 신도시에 도서관과 복지관, 그리고 문화센터 등을 한 곳에 유치하면 토지 매입비 뿐 아니라, 주차장이나 편의 시설 등 건설비를 절약할 수 있고, 아이를 공공 놀이 시설에 맡기고 부모가 수영하러 갈 수 있게 되는 등 지역 주민들의 이용 편의성도 높이는 성과가 나오고 있다. 그래서 이번에 발표된 생활 SOC 확충 정책을 통해 우선 혁신도시 등을 중심으로 18개소에 문화·체육·복지시설을 한 곳에서 누릴 수 있는 복합 커뮤니티 센터를 건립하겠다는 정책이 포함됐다. 도서관과 체육관, 노인 복지관, 공립 유치원이 한 곳에 자리 잡고 있으면 지역 주민들이 이용하기에도 편리할 것이다.
이런한 다양한 생활 SOC 투자 정책들이 소득주도 성장 정책이 되려면 기초지자체마다 사회서비스인력공단(사회서비스원)을 설립하면 된다. 전국 230여 개의 기초지자체마다 생활체육지도자, 공공 사서, 사회복지사 등 사회서비스 인력을 고용해서 이들 시설에 파견해주는 사업이 같이 진행된다면 지역 주민의 삶의 질 향상과 고용 증가, 그리고 각종 생활 비용의 절감이 가능해진다.
생활 SOC 성공하려면 공공 일자리 확충도 병행해야
지금까지 이들 정책을 지방정부에 자율적으로 맡겨두니 지역 간 격차도 발생하고, 효율성도 낮고, 속도가 느려지는 문제가 있다. 이번에 중앙정부가 생활 SOC 투자 정책을 통해 추진을 독려하고, 표준 모델 제시로 효율화하기로 한 것도 매우 의미 있는 결정이다. 특히 이들 대부분의 사업은 지방 정부가 직접 나서주어야 가능하기 때문에 회계연도 개시 직후 사업이 즉각 추진될 수 있도록 지자체 및 관계기관 등과 사전 절차를 미리 준비하고, 범부처 협의회를 구성하며, 사전 수요조사 등 공모 절차를 통해 사업을 배정하고, 사업설명회 개최 등 다양하게 지방정부와 협력해 진행하는 방안도 포함되었다.
그런데 이는 국민의 삶의 질 개선 및 소득 증대와 연관된 중요 정책임에도 불구하고 언론의 관심을 거의 받지 못했다. 자신의 생활과 직접 관련된 정책임에도 아직 다수의 국민이 잘 모르고 있는 것이 문제다. 언론과 국회, 지방정부도 생활 SOC 투자를 소득주도 성장 정책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노력이나 시도는 별로 하지 않고 있다.
생활 SOC 투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사람'이다. 사회서비스 인력 확충 정책과 병행해야 실질적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경제 관계 장관 회의는 하드웨어를 건설하는 것은 잘 하는데, 이런 시설을 이용하는 소프트웨어를 제공하는 데는 사회 관계 장관 회의에서 뒷받침을 해 주어야 한다. 그런데 이번에 관련 분야의 사회서비스 인력 확충 정책이 동시에 발표되지 않은 것도 관심을 끌지 못한 이유가 될 것이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생활 SOC 확충 정책은 소득주도 성장 정책의 일환임에도 정부 관계자들이 그런 내용을 잘 모른다는 사실이다. 생활 SOC 확충을 통해 지역 주민들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공공시설을 늘리는 것은 1) 민간의 영리 시설 이용에 따른 비용을 절감하도록 하는 것이며, 2) 직접적인 공공 부문 일자리 창출 정책이고, 3) 궁극적으로는 민간 시설에 대한 지원과 기능 보강, 인력 파견 사업 등을 통해 공공성을 강화함으로써 민간의 관련 사업도 동시에 활성화되는 효과가 나타나는 소득주도 성장 정책의 일환이다.
이제는 '길 닦고 댐 건설하는 시기'는 지났다. 정부는 생활 SOC 투자를 통해 국민들이 풍요롭고 여유 있는 삶을 누리는 방향으로 정책을 확대해야 한다. 이것도 복지국가로 가는 길에서 꼭 챙겨야 할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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