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 조미 대결의 위대한 승리를 가져온 국가 핵무력의 역사적 소임은 이것으로 끝났다. 이제 국가 핵무력의 완전한 폐기를 엄숙히 선언한다."
과연 이런 날이 올 수 있을까? 아마도 김 위원장 본인도 모를 것이다. 그래서 그는 국제사회, 특히 미국을 향해 "완전한 비핵화"를 실현할 수 있는 조건과 환경을 만들어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그리고 9월 29일 유엔 총회 무대에 올라선 리용호 북한 외무상은 단호하면서도 간절한 어조로 그 조건과 환경을 열거했다. "비핵화를 실현하는 우리 공화국 의지는 확고부동하지만, 이것은 미국이 우리로 하여금 충분한 신뢰감을 가지게 할 때만 실현 가능하다"며 말이다.
그가 강조한 조건과 환경의 핵심은 6.12 북미공동성명의 철저한 이행을 통한 신뢰 구축이다. 북미공동성명의 "가장 중요한 정신 중의 하나는 쌍방이 구태에서 벗어나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나가기로 합의한 것"이라고 했는데, 그가 말한 "완전히 새로운 방식"이란 상호간의 우려와 요구 사항을 동시행동 차원에서 단계적으로 이행하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북한은 북미공동성명 이후에 미국이 또다시 '선 비핵화'라는 "구태"로 회귀했다고 본다. 실제로 미국은 한미군사훈련 중단 이외에 북미공동성명의 정신에 부합하는 조치를 취한 것이 없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구두로 약속한 종전선언도, 평화협정 협상 개시 선언도, 연락사무소 설치와 같은 북미관계 개선의 초보적인 조치도, 신뢰구축의 중대한 조치인 대북 제재 완화도 없는 상황이다.
주목할 점은 북한이 미국의 공동성명 이행이 지지부진한 이유를 미국의 국내 정치에서 찾고 있다는 데에 있다. 이와 관련해 리용호 외무상은 "미국의 정치적 반대파들"이 "우리 공화국을 믿을 수 없다는 험담을 일삼고, 받아들일 수 없는 무례한 일방적 요구를 들고 나갈 것을 행정부에 강박하여, 대화와 협상이 순조롭게 진척되지 못하게 훼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미국의) 정적(政敵) 공격"으로 자칫 6·12 북미공동선언 이행이 무산되는 상황이 초래될 수 있다며, 북미공동성명이 "미국 국내 정치의 희생물"이 될 경우 "예측 불가능한 후과의 가장 큰 희생물은 바로 미국 그 자체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내전을 방불케 하는 미국 내부 정치 문제와 이와 연동된 트럼프의 대북정책에 대한 견제와 저항을 해결해야 할 몫은 미국 자체에 있다. 하지만 이를 위한 조건과 환경 조성 역시 북한과 무관할 수는 없다. 북한이 미국 내에서 팽배한 회의론에 쐐기를 박을 수 있는 담대한 제안과 조치가 필요한 까닭이다.
북한이 올해 들어 비핵화와 관련해 확고한 의지 표명과 여러 가지 긍정적인 조치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가장 본질적인 문제인 현존하는 핵무기 및 핵물질의 폐기 방안 및 신고와 검증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입장 표명을 유보해온 것도 사실이다. 이는 '북한이 노리는 것은 미래 핵은 포기하면서 현재 핵은 계속 갖겠다'는 분석으로 이어지면서 미국 내 회의론자들에게 반격과 저항의 빌미가 되고 있다.
북한은 바로 이 지점을 직시해야 한다. 미국의 회의론자들의 눈과 귀를 의심하게 만들 정도로 담대한 행보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미국의 회의론자들도 생각을 달리 하거나 생각을 바꿀 의사가 없는 사람들이 거꾸로 고립될 수 있다.
담대한 행보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핵탄두와 핵물질의 폐기 시한과 방식을 밝히는 것이 대표적이다. 시한은 이미 트럼프 행정부의 1기 임기, 즉 2021년 1월로 거론되고 있는 만큼, 방식과 절차가 관건이다. 이와 관련해 북한이 러시아 등으로 국외 반출에 나설 용의가 있고, 그 일부를 조기에 반출할 의사도 있다는 점을 표명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핵확산금지조약(NPT) 및 국제원자력기구(IAEA) 안전조치협정에 복귀하고, 국제적 수준의 강도 높은 검증을 받겠다는 의사 표현으로 IAEA 추가 의정서 가입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북한 스스로 "세계 비핵화에 기여할 것"이라고 밝혀왔던 만큼 포괄핵실험금지조약(CTBT) 및 핵물질생산금지협약(FMCT) 가입도 능동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물론 이러한 조치들을 위해서는 미국 등 타국들의 상응조치들도 반드시 필요하다. 이에 따라 이제는 '큰 조치들의 교환(more for more)'이 필요하다. 본 게임을 앞둔 북미 양측과 역사적 순간에 운명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문재인 정부에 꼭 당부하고 싶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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