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경제 지표 악화로 정권 지지율의 하락추세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 당황한 여권의 조급증은 정책 혼선과 정책적 무능을 드러내고 이는 다시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지방선거 이후 민주당 정부는 사면초가에 몰려있는 형국이다.
새삼 거론할 것도 없이 소득주도성장과 최저임금 인상의 예기치 못한 부작용에 지지율은 하락하고 향후 전망도 비관적이다. 게다가 부동산은 무대책이 오히려 나을 정도로 비정상적인 폭등을 이어가고 있다. 정부는 엇박자요, 정책을 책임지는 자의 말은 민망하다.
경제 지표의 악화는 단기적인 정책의 실패와 미시적 정책 수단의 문제가 원인일 수 있으나 본질적으로는 한국경제의 구조적인 경제운용 방식이 더 문제다. 그럼에도 경제 악화가 사회경제적 개혁을 실종시키는 요인으로 작동된다면 한국경제의 체질은 바뀌지 않는다. 재정이나 금융정책으로 경기를 잠깐 부양할 수 있을지는 모르나 재벌개혁과 소득의 양극화가 심화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방치한 채 가시적 지표에만 몰두하는 정치는 경제적 민주주의를 견인할 수 없다.
경제와 개혁은 별개의 아젠다가 아니다. 고용과 소득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대기업 위주의 경제구조와 이에 기인하는 경제력 집중, 자영업이 많은 비중을 차지할 수밖에 없는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내야 한다. 이후 이를 개선하기 위한 사회적 공론화를 통하여 문제 해결의 단초를 마련해 나가야 하지만 이러한 논의 구조 자체가 실종되고 있다.
강남의 부동산 가격이 천정부지로 뛰는 데 이의 원인보다는 이미 나왔던 대증 요법으로 대처하는 것은 사태를 더욱 악화시킨다. 급기야 서울 근교 수도권 요지의 개발제한구역을 풀어서 공급을 늘리겠다는 대책도 논의되는 모양이다. 이는 결국 투기수요를 더 자극하는 역효과를 초래할 개연성이 높다.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정권 때의 부동산 공급을 통한 경기 부양, 즉 개발과 토목 위주의 처방과 무엇이 다른가. 경제와 개혁을 대척에 두고 사회경제적 현상을 들여다보면 안 된다.
작년 정권 교체 이후 적폐수사와 한반도 안보지형 변화에 숨죽이고 있던 수구세력의 반격에 친화적인 토양이 형성되고 있다. 보수언론의 가세는 익히 예상됐던 바다. 분명 실제보다 과장되어 있는 면이 많다. 그러나 정부는 구조적 해법을 고민하는 한편 정책 시행으로 부각될 수 있는 부작용을 면밀히 관찰하지 못하는 우를 범했음도 인정해야 한다.
소득주도성장의 포기는 대기업 위주의 경제 운용 방식과 성장 지상주의로 돌아가자는 선언에 다름 아니다.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 없이 지속가능한 경제를 운용할 수 없다. 그러나 정치는 대중의 인식과 해석이 지배적으로 관철되는 영역임도 부인할 수 없다. 정권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면 개혁은 언감생심이다. 한국사회의 갈등은 전방위적으로 확산되는 양상이고 국민들은 각자의 이해의 관점에서 요구의 수준을 높여가고 있다.
민주주의란 갈등의 제도화를 통해서 문제 해결에 다가가는 시스템이다. 각 계층의 충돌하는 이해를 조정하지 못하고 갈등을 제도화하지 못한다면 사회적 갈등의 수위는 점점 높아질 것이다. 한국정치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신뢰의 위기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 극복하고 사회개혁을 위한 법적 제도화를 이루지 못하면 수구적 소용돌이의 정치로 회귀할 수 있다.
정권의 위기와 사회경제적 개혁의 실종은 동전의 양면이다. 집권 2기 여권은 많은 미숙함을 드러내고 있다. 경제지표 악화로 허둥대는 사이 지지율은 더 떨어지고 재벌개혁과 전관예우의 근절, 소득 불평등 완화와 사회적 격차의 해소 등의 개혁 의제들은 공론화의 영역에서 자취를 감춰가고 있다. 촛불혁명으로 상징되던 혁신과 개조의 사회적 분위기는 시민적 에너지를 추동하고 조직화할 리더십이 실종되면서 동력을 얻지 못하고 있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지금의 상황을 정치학자 애덤 쉐보르스키가 언급한 '전환의 계곡(valley of transition)'이라고 진단했으나 계곡을 지나 정상으로 오르기 위한 진통인지, 총체적 퇴행인지의 판단은 아직 이른 것 같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