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이 본 마을 만들기, 농민수당, 그리고 두레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마을 만들기?' 차라리 농민 수당을 달라

지난 7월 15일 전북 완주 은천계곡에서 '양력 백중놀이'를 했다. 사람들은 갖은 한약재를 넣은 닭백숙으로 원기를 채우고, 지신밟기를 내세워 한 판 풍물도 치고, 시원한 계곡물에 풍덩 빠졌다. '벼농사 퀴즈'를 맞혀 쌀 선물도 받고, '행복한 시골살이'를 놓고 이야기꽃을 피웠다. 청소년들은 스스로 아이들을 위한 보물 찾기를 준비했다.

실제로 벼농사를 짓는 이는 일곱이지만, 이번 양력백중놀이에 함께 한 이는 예순 명이나 될 만큼 그야말로 '대성황'이었고 다들 즐거운 한 때를 보냈다. 내친 김에 한 걸음 더 들어가 보자. 백중(百中)은 음력 7월 15일이다. 원래 불가의 5대 명절이고 하안거를 마치는 날이기도 해서 용맹정진했던 스님들의 노고를 위로하는 공양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민가에서는 맛있는 음식과 즐거운 놀이로 힘든 일을 끝낸 농부들을 위로하는 날이다. 하여 호남과 충청 일부에서는 술과 음식을 먹인다 해서 '술멕이'라 부르기도 한다. 전통 농경사회는 벼농사가 중심이었으니 그와 연관이 깊기도 하다. 물대기도 어렵고, 효율 높은 제초법도 없을 때니 호미 한 자루 들고 세 번이나 김매기(세벌매기)를 하던 시절이다. 뜨거운 햇볕 아래 등짝이 익어가고 숨이 멎는 고된 노동에서 벗어나 호미를 씻어 걸고(호미씻이) 음주가무를 즐겼던 것이 바로 백중놀이다.

'양력'백중놀이 또한 '벼농사'두레가 마련한 것이니 이런 전통에 잇닿는다. 다만 잔칫날을 달포 남짓 당겼을 뿐이다. 지금은 김매기가 두 달 씩이나 매달려야 할 만큼 고역스런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관개시설이 잘 갖춰 있고, 우렁이농법으로 풀을 잡으니 (음력이 아닌) 양력 7월15일 즈음에 김매기가 마무리되는 것이다.

놀긴 놀아야겠는데…. 전통에 맞추려 한 달을 기다릴 순 없는 노릇 아닌가. 해서 우리 벼농사두레는 '양력'이라는 핑계를 찾아내 전통을 대신하기로 했다. 그렇게 4년, '음주가무'라는 핵심 전통만큼은 지켜왔다.

'벼동사두레'를 소개합니다.

이젠 좀 감이 잡힐 것이다. 지금부터 이 양력 백중놀이 잔치판을 벌인 벼농사두레 얘기를 하려고 한다. 정식 이름은 <고산권 벼농사두레>다. 활동 무대는 완주군 고산면 일원. 현지인들이 '고산 6개면'이라 부르는 완주군 동북부 지역으로 옛 고산현 시절부터 같은 생활문화권을 이뤄왔다. 이름에서 드러나듯 법적 지위를 갖추지 않은 '임의 조직'이다. 유기농 벼농사를 짓는 이들이 중심에 서고, 유기농 벼농사에 뜻을 두고 있거나 그 가치에 공감하는 이들이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고산권 벼농사두레는 지난 2014년 12월 첫발을 내디뎠다. 출발은 소박했다. 고산권에서 '포트모 시스템'으로 유기농 벼농사를 짓던 이들이 관련 정보와 기술을 나누기 위해 모였다. 전업농은 한 둘에 지나지 않았고, 대부분은 '주곡자급'을 목표로 한 배미 남짓 짓는 이들이었다. 그저 '벼농사 모임'으로 통했다. 그런데 유기농 벼농사의 생태적 가치에 공감하는 이들이 합류하면서 모임이 커지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활동 반경은 정보-기술 교류를 넘어 협업을 도모하기에 이르렀다. 일시에 많은 노동력이 필요한 공정, 주로 모농사(볍씨 모판 파종~못자리 조성) 관련한 공동 작업(두레)이었다. 이게 다 행복하자고 하는 짓이니 노동과 놀이가 조화를 이루도록 애를 썼고, 양력 백중에 진짜 백중, 풍년잔치 같은 놀 핑계를 만들어내기 바빴다. 놀기만 한 게 아니고 겨울철에는 '농한기 강좌'라는 이름으로 공부 모임을 이어갔다. 나아가 대보름 놀이를 포함한 잔치판과 대중적 행사는 주민들한테도 문을 활짝 열었다.

▲ 농사일은 흥이 나야 제 맛이다. 누마루에 자리 펴고 먹는 들밥은 꿀맛. 못자리 앉히는 두레하던 날. ⓒ차남호

그러기를 3년, 모임은 자리를 잡고 안정되었다. 문제는 규칙도, 체계도, 재정도, 심지어 대표자나 정식 명칭조차 없는 '무정형'의 조직이라는 점이었다. 내용에 상응하는 형식을 갖추지 못한 조직의 앞날은 쇠망일 수밖에 없다.

이런 고민이 반년 동안 숙성되어 지난 5월, 마침내 <고산권 벼농사두레> 창립 총회를 열고 조직-재정 체계를 갖추기에 이르렀다. 정회원(경작자)-준회원(비경작자) 2원 체계로 회비는 차등을 두지만 권리는 동등하다. 현재 정회원 7명에, 준회원은 40명 남짓. 선출된 임원으로 집행체계를 갖춰 조직이 훨씬 효율적이고 활기가 넘친다.

여기서 드는 의문. 꽤 넓은 지역을 아우르고 있는데 어찌 '두레'인가. 두레란 전통 농경 공동체의 마을 단위 노동조직 또는 공동 노동 그 자체를 뜻하지 않던가. 그렇다. 공동체가 문제고, 마을이 문제다. 전통 사회의 농경 공동체는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심지어 우리가 알고 있는 마을도 더는 존재하지 않는 현실이다. 익명 사회인 도시야 말할 것도 없고, 내내 그 자리에 있던 시골마을 또한 비슷한 처지다. 무엇보다 일과 삶의 공동 기반이 흐트러졌기 때문이다.

전통 농촌마을 백성들의 삶이란 거개가 엇비슷했다. 부쳐 먹는 땅뙈기 넓이가 달랐을 뿐 논농사, 밭농사로 생계를 꾸리기는 매한가지였다. 그러니 모내기와 김매기, 가을걷이처럼 일시에 많은 품이 드는 작업을 두레 같은 공동 노동으로 해치우는 건 너무도 자연스러웠다. 유난히 협동정신이 강한 유전자를 지녀서가 아니라 서로의 이해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산업사회로 접어들면서 이러한 농촌 풍경은 확 바뀌었다. 농사 또한 상품경제의 논리를 따라 세분화-전문화하기에 이르렀다. 여전히 논밭을 일구는 '경종 농업' 종사자가 남아 있긴 하지만 누구는 축산, 누구는 시설(비닐하우스) 채소, 누구는 과수, 누구는 특용 작물 하는 식으로 한 분야에만 매달리는 전업농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나아가 축산에서는 오직 한우만, 돼지만, 닭만, 시설 채소에서는 딸기만, 상추만 하는 작목으로 전문화하고 있다. 내처 덧붙이자면 이건 1차산업이 아니라 2차산업이다. 고기 제조업, 과일 제조업, 야채 제조업 말이다.

게다가 산업과 교통이 발달하면서 시골마을에도 2,3차 산업 종사자가 꽤 생겨났다. 사정이 이러니 한 마을 주민이라고 해도 주거만 이웃이지 노동 과정과 생활 방식은 서로 딴판이 될 수밖에 없다. 당연히 일과 삶에서 공동의 이해, 공동의 기반이 사라졌다.

공모 사업으로 전락한 '마을 만들기'

오늘날 '마을'이 시대의 화두로, 지역활동가와 자치행정의 핵심 의제로 떠오른 것은 이러한 '마을 해체' 현실을 반증하기도 한다. 그래서 '마을 만들기'라고, 마을을 다시 만들자고 한다. 나아가 지자체마다 앞다퉈 마을 공동체 지원 센터를 개설해왔다. 가히 '마을주의'라 할 만하다. 마을을 되살려내려는 그 뜻이야 가상하지만, 나로서는 이미 흘러가버린 마을이 다시 불려나와 참 고생한다는 느낌을 떼칠 수가 없다. 내가 보기에 지금의 농촌 경제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마을 '공동체'는 이룰 수 없는 꿈이다.

여기서 얘기하는 마을이란 흔히 '말단 행정구역'으로 통하는, 이장이 관할하는 지리적 공간 아닌가. 그 마을 주민들은 앞서 살펴본 대로 경제 활동 영역이 분야별, 작목별로 분화된 지 오래고, 이는 생활 패턴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이런 상태에서 같은 행정구역에 거주한다는 이유로 꼭 공동체를 이루어야 하나? 그저 '사이 좋은 이웃'으로 지내면 그만 아닌가? 그 얘기다.

우리 벼농사두레가 마을에 집착하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핵심은 유기농 벼농사라는 공동의 경제 활동, 추구하는 생태 가치다. 공동 노동(두레)이 가능한 권역이고, 지향하는 가치를 공유하고 소통할 수 있는지가 문제다. 교통-통신만 충분히 뒷받침된다면 마을, 리, 면 따위 행정구역은 문제가 아니다.

나는 '마을주의자'도 아닐 뿐더러, 마을을 만들 수 있다고 보지도 않는다. 마을은 그저 자연스레 존재하고 세상의 변화를 따라갈 뿐이다. 마을의 구성이 변했으니 덕목이나 규범도 마땅히 바뀌어야 하지 않겠나. 주민 사이의 갈등요인을 없애고, 화목하게 사는 것이 최선이지 싶다. 무리하게 일을 벌이다가 오히려 문제가 생기는 법이다.

'혐오 시설' 문제나 환경 파괴 같이 모두를 위협하는 문제라면 모를까, 경제 생활에서 공동의 이해나 기반이 사라졌으니 마을 주민 스스로 함께 도모할 그 무엇이란 실상 거의 없다. 이렇듯 '잠자는' 주민의 의지를 일깨우는 것이 다름 아닌 지자체 보조금이다. 지자체로서는 마을주의라는 시대정신에 충실했노라는 '인증샷'을 확보하고, 주민들로서는 '공돈'이 굴러들어오니 마을 만들기 사업은 그야말로 윈윈게임이 된다.

그렇게 만들어진 마을이 정보화 마을, 에너지 자립 마을, 평화 생태 마을, 행복 마을, 희망 마을, 파워 빌리지에 마을 기업까지. 키워드는 다름 아닌 '개발'. 자율 개발이요, 종합 개발이란다. 사업의 형평성, 정당성을 확보하자니 '농촌 개발 공모사업'이 홍수를 이룬다. 적게는 몇 천만 원에서 많게 수십억 원에 이르는 보조금이 투입된다. 그러나 그 수많은 개발 사업 가운데 성공을 거둔 경우를 나는 거의 듣지 못했다. 그 대부분이 사업실 패에 따른 책임 공방, 주민 사이의 갈등, 공적 자금이 투입된 사업의 최종적 사유화 등으로 끝을 맺는다.

돈 버리고, 인심 버리고, 마을 사이에 형평성 시비가 끊이지 않는 이런 마을 만들기를 대체 뭣하러 하는가 이 말이다. 거기에 들이는 예산을 거두어 모든 농가에 골고루 나눠주는 게 백 번 낫지 않은가. 그 점에서 아직 자세한 내용을 들여다보진 못했지만 '농민 수당'을 지급키로 한 해남군의 결정에 나는 박수를 보낸다. 내가 사는 완주군도 하루빨리 뒤를 따랐으면 좋겠다.

함께 어울리는 '농촌 공동체'를 위하여

우리 벼농사두레는 회원들이 내는 회비로 돌아간다. 준회원은 소액의 연회비를 내지만, 정회원은 경작 면적에 정비례해 회비를 책정했다. 그것으로도 넉넉지 않으니 '명분을 만들어서' 특별 회비를 내는 이도 있다. 그런 원칙을 정한 바는 없지만 아직은 외부, 특히 행정기관에 손을 내민 적이 없다. 나는 우리 벼농사두레가 앞으로도 이런 자생력을 갖출 수 있기를 바란다.

돈 좀 더 벌어보자고 두레조직 만든 게 아니니 망해봤자 그만이다. 어려움을 함께 나누고, 함께 일하고, 함께 어울리고, 추구하는 가치에 함께 의기투합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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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드는 복지국가>는 시민들이 복지국가 만들기에 직접 나서는, '아래로부터의 복지 주체 형성'을 목표로 2012년에 발족한 시민단체입니다. 건강보험 하나로, 사회복지세 도입, 기초연금 강화, 부양의무제 폐지, 지역 복지공동체 형성, 복지국가 촛불 등 여러 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칼럼은 열린 시각에서 다양하고 생산적인 복지 논의를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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