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위선양? 이만큼 했으면 됐다

[최동호의 스포츠당] 국위선양? 이만큼 했으면 됐다

젠장, 아직도 국위선양이라니! 뭘 그렇게 대한민국을 떨쳐 알리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88서울올림픽부터만 따져도 스포츠를 통해선 이젠 알릴 거 다 알리지 않았나? 아직도 떨쳐 알릴 게 남았나? 뭐가 남았는지 모르겠다. 그냥 우리끼리 잘하면 된다. 그러면 알아달라고 애쓰지 않아도 알아서들 잘 알아 봐 준다. CNN은 어떻게 보도했고 BBC는 뭐라고 했고 <워싱턴포스트>는 또 뭐라고 칭찬했고. 옛날 양반님네 쌀 팔러간다는 식이니 우리만큼 남 눈치 살피는 나라가 또 있을까?

아니다. 이건 남 눈치 살피는 것이 아니라 칭찬받고 인정받자는 거다. 이게 콤플렉스가 아니면 무엇인가? 한국 스포츠 고생했다. 그동안 그만큼 했으면 경이로운 거다. 하여 위로한다. 대단하다! 이 정도 인구에서 이 정도 성과를 거뒀으면 놀라운 거다. 그러니 됐다. 이제 국위선양은 치워 버리고 하고 싶은 대로 하라! 개인의 꿈과 희망을 얘기하라!

▲ 손흥민 선수. ⓒ연합뉴스

1972년 전국체육대회 치사에서 박정희 대통령은 “국가발전에 적극 기여할 수 있는 의욕적이고 진취적인 국민을 형성하는 체육이 되어야 하겠고 산업개발의 기조가 되는 체육이 되어야 하겠고 국토방위를 위한 체육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고 1976년 전국체육대회에선 “오늘의 국제사회는 국력의 우열을 겨루는 경기장이며 또 이같은 국력경쟁에 있어 스포츠가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고 지적하며 “힘과 슬기를 한데 모아 자주민족의 기상을 선양하는 일이야말로 바로 10월 유신의 기본정신을 실천하는 길이며 막강한 국력의 배양으로 한민족의 웅비를 실현하는 길이다”라고 치사했다.

워낙 엄청난 얘기라 턱하니 숨이 막힌다. 국가발전, 국토방위에 산업개발이라니. 이도 모자라 민족 웅비, 국위선양까지. 실로 놀라운 체육의 무한확장이자 무한개발이다. 체육 또는 스포츠의 본질과는 전혀 관계없는 전체주의적 발상이지만 간단히 정리하자. 그 시절엔 그랬다. 그 중의 으뜸은 국위선양이다. 생각해 보자. 국위선양은 체육인들이 자청한 것이 아니다. 국가가 체육에 부여한 임무다. 그래서 1966년 태릉선수촌을 만들었고 1970년대엔 체육중·고등학교, 체육대학교를 설립했다.

이뿐이랴. 병역의무 특례규제에 관한 관한 법률(병역특례)은 1973년, 경기력향상연구연금(체육연금)은 1975년에 만들어졌다. 이쯤 되면 눈치 챌 수 있지 않을까? 엘리트스포츠시스템은 국가의 필요에 의해서 조직된 것이라는 걸. 국가의 필요는 무엇인가? 이쯤에서 국위선양이 등장한다. 국제무대에서 태극기를 올리는 것, 그래서 그 뿌듯함으로 내부적으론 애국심을 강조하고 외부적으론 KOREA의 이미지를 드높이는 것, 바로 그것이 아닌가? 때때론 국위선양이 아니라 군사독재정권의 정권선양이기도 했지만 얘기하자면 구구절절이다. 다 빼고 얘기하자. 어찌됐든 그 때 그 시절엔 체육이 국위선양을 했다. 그런데 그것이 바로 문제였다.

내가 체육인이라면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지 않은가? 운동만 잘하면 중·고등학교, 대학교까지 보내주고 병역면제에 연금까지 쥐어준다. 그러나 이 좋은 혜택이어서 지금이 불행하다. 자생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체육인들이 하는 얘기는 늘 그렇지 않은가? ‘정부에서 지원만 해주면’, ‘조금 더 관심만 가져주면’ 무척 간단한 셈법이다. 국위선양의 체육적 문법은 ‘우리는 메달 딸 테니 정부는 지원하라, 병역특례를 줘라’가 아닌가?

지금은 메달만 따면 되는 그런 시대가 아니다. 프로스포츠는 스스로 돈을 벌어야 하고 유망주들은 부를 쫓아 해외진출이 우선이다. 스포츠도 돈이 돼야 지원하고 투자하는 시대다. 손흥민이 국위선양을 위해 공을 찼나? 김연아가 조국을 빛내겠다고 부상을 무릅썼나? 아니면 박태환이 대한민국을 위해 물살을 갈랐나? 뻔해서 부질없는 얘기다. 그 때 그 시절엔 국위선양이 목표였다. 국가가 개인보다 우선이었다. 이젠 먹고 살만해졌으니 개인을 인정하자. 내 꿈과 행복을 위해 운동하는 것이 뭐가 잘못이랴. 손흥민이 자신의 꿈을 이뤄가면 갈수록 국위선양도 저절로 얻어지지 않는가? 왜 굳이 국위선양을 앞세워야 하나?

병역특례가 이슈다. 존폐부터 개선까지 다양하게 거론된다. 병역특례의 취지가 국위선양이라면 국위선양은 무엇인가를 먼저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은 스포츠가 인간의 본능적인 지배욕구를 충족시켜준다고 설명하며 "인간이란 생존과 생식의 일차적 욕구가 충족된 후에도 끊임없이 상상력을 발휘해 무엇이든 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라고 말했다.

스포츠적으로 상상한다. 손흥민, 김연아, 박태환 등은 제도권에서 길러진 선수가 아니다. 오히려 제도권과 갈등하며 글로벌 스타의 위치에 올라간 선수들이다. 그들을 이끈 것은 당연히 개인의 욕망과 꿈이었을 것이다. 국위선양을 앞세우지 않아도 꿈을 꾸는 개인은 충분히 도전하고 발전해 나간다. 개인의 경쟁력이 국가의 경쟁력을 앞서는 시대이기도 하다. 손흥민이 입대한다고 한국 축구가 망하는 것도 아니다. 누군가에겐 손흥민의 공백이 기회일 것이고 이 순간에도 꿈을 꾸는 유망주들은 열심히 공을 차고 있을 것이다.

이젠 스포츠 스타들을 국위선양에 가둬두지 말자. 그들은 그들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고 성취했을 뿐이다. 개인의 성취 그대로 인정할 순 없을까? 또한 개인으로서의 의무 이행도 당연히 요구해야 한다. 병역특례가 국위선양을 위한 것이라면 이는 분명 구시대의 산물이다. 매달릴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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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호

YTN 보도국 스포츠부 기자를 시작으로 IB스포츠 신사업개발팀장을 역임했다. 현재 스포츠문화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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