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노동자와 화물운수 노동자가 총파업 요구로 산재보험 적용을 요구하게 된 현장 실태는 이렇다. OECD 산재사망 1위인 한국에서 산재사망의 25% 이상을 차지하는 건설업이고, 건설현장 산재의 20% 이상이 건설기계 장비 관련 사고이다. 그러나 건설기계 장비 기사는 산재보험 적용에서 제외된다. 특히, 건설현장에서 사업주의 안전조치 미비로 사고가 발생하는 경우에도 87%가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했다. 심지어는 건설장비가 연관되어 발생한 현장 노동자의 산재보상을 건설장비기사에게 떠넘기는 구상권이 청구된다. 위험업종으로 민간보험 가입조차 거부되는 경우가 많아 현장에서 사고가 나면 건설기계 운전기사 노동자는 그야말로 패가망신 하게 된다.
화물운수 노동자는 어떠한가? 사고성 재해는 말할 것도 없고, 심야노동으로 인한 뇌심혈관 질환 문제가 심각하다. 2009년 조사에서 화물운수 노동자의 한 달 평균 심야 운행 횟수는 14.3일이었다. 특히 귀가하지 않고, 차량에서 쉬거나 쪽잠을 자면서 일하는 5일 이상의 연속근무자가 전체의 63%에 달한다. 심야노동이 2급 발암물질이기에 노동부에서는 대상자에게 특수건강검진 제도 도입을 검토 중이다. 그러나 이는 화물운수 노동자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특수고용노동자로 대상에서 제외되기 때문이다. 산재보상도 적용제외이다. 1997년까지는 산재보험 적용대상으로 대상 노동자의 70%가 가입되어 있었지만, 2004년부터 화물운수 운전자는 사업주로 분류되어 보험료를 본인이 100% 부담하는 임의 가입방식으로 전환되었다. 근로기준법 상 근로자가 아니니 산재보험에서도 적용제외 된 것이다.
건설노동자와 화물운수 노동자가 위험업종에서 일하면서도, 산재보상이라는 최소한의 보장도 받지 못하는 이유는 "특수고용노동자" 이기 때문이다. 종래에 특수고용노동자는 건설기계기사, 화물 운전자, 학습지 교사, 보험모집인, 레미콘 기사, 골프장 캐디, 택배기사, 퀵 서비스 기사, 간병인, 대리운전 기사 등으로 대표되었다. 문제의 심각성은 <특수고용> 이라는 고용형태의 변화가 업종을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확대되고 있다는 것이다. 2010년 경북대학교에서 어학교육원 강사인 외래교수들을 개인사업주로 전환하면서, 4대 보험 역시 해지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특고바람>은 대학가를 넘어서 의료계에도 번졌다. 치과병원, 개인병원 심지어는 보건소까지 치위생사나 간호사들을 개인사업자로 전환시켜 환자 유치를 위한 영업행위를 하게하고 있다. 노동부가 아주대 교수팀에 의뢰한 조사결과 특수고용노동자는 약 250만 명을 넘은 것으로 파악된다. 각종 배달원, 상품 외판원, 출판 편집원, 문화예술인, IT 종사자, 관광가이드, 조사 면접원, 직훈 교사, 학원 강사, 주유원, 검침원, 각종 프랜차이즈사업자, 채권추심, 신용카드모집, 대출모집, A/S기사, 치기공사, 안경렌즈 가공, 요양보호사, 프로야구선수 등 거대한 특수고용 쓰나미가 덮치고 있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언제 특수고용노동자로 전락할지 모르는 불안에 처해 있다.
산재보상에서 제외되는 특수고용노동자의 현실은 암울하다. 지난해 서울대 병원에서 간병 노동자가 에이즈 주사바늘에 찔리는 사고가 발생했다. 그러나 간병 노동자는 특수고용이라는 이유로 응급치료가 거부되었고, 치료비도 전적으로 본인이 부담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사례는 넘쳐난다. 야구장 석면문제가 사회적으로 제기 되면서, 야구선수들에 대한 걱정과 우려가 많았다. 그러나 수 십 년 잠복기를 거쳐 석면 폐암이 발생해도 야구선수들은 산재보상을 받을 수가 없을 것이다. 특수고용노동자이기 때문이다.
특수고용노동자에 대한 산재보험 미적용은 노동자들의 문제일 뿐 아니라 정책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심각한 사회적 문제이다.
첫째, 산재보상 제도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 지난해 시나리오 작가인 최고은씨가 빈곤 속에서 사망하면서 문화예술인 복지법이 국회통과를 하고, 산재보험 적용을 하도록 했다. 그러나 대다수가 특수고용형태로 되어 있어 통상적인 산재보험 적용이 아닌 방안이 모색되고 있다. 노동부는 2008년부터 4개 직종으로 한정해서 산재보험료의 절반을 특수고용노동자가 부담하는 특례제도를 운영하고 있으나, 실직적용은 대상 노동자의 8% 내외로 계속 하향하고 있다. 올해 5월부터 택배기사와 퀵 서비스 기사 노동자에게 확대된다고 대대적인 선전을 했다. 그러나 퀵 서비스 17만 노동자중 90%를 차지하는 특수고용형태는 160명이 가입했을 뿐이다. 근로기준법의 근로자 정의에 기초하고 있는 산재보상제도는 계속 특례를 확대하고 있다. 그야말로 특례제도가 남발되고 있을 뿐 아니라, 노동자나 사업주 모두에게 외면 받는 휴지조각이 되고 있다.
둘째, 민주노총이 소속 특수고용노동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산재발생이 평균 노동자 재해율의 34배에 달한다. 경제적 이득은 재벌로 집중되고, 위험은 하청, 특수고용 등 비정규 노동자에게 전가하고 있는 실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산재은폐로 왜곡된 산재통계가 특수고용노동자의 산재는 아예 통계 대상에서 제외되고 있다. 이는 산재통계에 근거하고 있는 안전보건 정책과 제도가 뿌리 없는 정책이 되고 있다. 이는 산재사망 OECD 1위를 십 수 년 유지하고 있는 현실로 증명되고 있다. 특수고용노동자와 하청 노동자에 대한 산재예방대책을 수립하는 것이 주요한 축이 되어야 한다.
셋째, 민주노총 조사에 따르면 특수고용노동자의 평균 임금은 약 160만원 내외이다. 간병 노동자를 포함한 많은 특수고용노동자들이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을 받고 있다. 현행의 특수고용노동자 일부에게 적용되는 산재보험 특례제도는 보험료 절반을 노동자에게 부담시키고 있다. 저임금에 고위험 업무를 하는 노동자에게 최소한의 사회보장제도인 산재보험도 외면당하는 것이 한국사회 복지논의의 현주소이다. 특수고용노동자의 산재보험 적용은 노동자성을 다투는 문제가 아니라, 사회보장제도인 산재보험의 취지를 더욱더 명확히 하는 것이다.
넷째, 사업주가 보험료를 부담하는 산재보험제도에서 치료받아야 할 노동자들이 건강보험으로 치료 받으면서, 건강보험 재정 악화의 주요 요인으로 되고 있다. 또한, 노동자들은 쥐꼬리만한 월급을 갈라 민간보험에 들고 있다. 결국 위험은 노동자에게 전가하고 사업주와 보험회사들의 배만 불려주고 있는 꼴이다. 이 때문에 특수고용노동자들의 산재보험 적용을 보험회사가 집중적으로 반대하고 있기도 하다. 특수고용노동자의 산재보험 전면적용은 공적인 사회 보장제도로서의 산재보험의 근간을 세우는 것이고, 현재 산재통계의 10배-13배가 넘는 노동자가 건강보험으로 치료받고 있는 문제를 제자리로 돌려놓는 주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지난주에 코엑스에서는 비교 노동법학회와 산업안전공단이 공동주최한 의미 있는 세미나가 열렸다. 특수고용노동자의 산재예방을 위해 산업안전보건법의 근로자 개념을 확장해야 한다는 제기였다. 특수고용노동자에게 산재보험을 적용하는 것만큼 산재예방의 대상에서도 적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건설현장에서 장비사고가 다발해도 장비기사 노동자에게 어떤 안전교육도 실시하지 않는 한, 전 국민을 불안에 떨게 한 신종 플루 예방주사조차 간병인 노동자는 특수고용 노동자라고 제외시키는 현실에서는 산재는 다만 산재노동자의 문제뿐 아니라 전체 사회의 문제로 된다.
현행의 산업안전보건법이나 산재보험법이 근로기준법의 근로자 정의를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고용관계가 다변화 되고 있는 현실을 전혀 반영하지 못한다. 이미 특수고용노동자들에게 산재보험을 전면 적용하고 있는 나라들이 적지 않다. 독일, 오스트리아, 프랑스, 영국, 스웨덴 등이다. 이들 나라들은 산재보상은 사회보장제도이기에, 근로자냐 아니냐를 따지지 않고, 사회보장제도의 취지에 맞게 대상 범위를 확장하고 있다. 또한 산재예방에 있어서도 특수고용노동자를 대상으로 포함하는 나라들도 있다. 독일, 영국 등이 대표적인 나라들이다. 지난 6월 심상정 의원실에서 입법 발의한 산재보험법 개정안은 산재보험법상의 근로자 정의 개념에 특수고용노동자를 포함시켜 산재보험을 전면 적용하게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제 우리사회도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노동자성에 대한 사회적 해답을 내놓아야 한다. 이 문제는 이미 10년의 해묵은 과제이다. 그 10년 동안 수많은 특수고용노동자들이 죽거나 다쳤으며 가정이 해체되는 고통을 안고 살았다. 또, 그 10년 동안 더 많은 노동자들이 특수고용노동자들로 전락했다. 이제는 사회가 이 문제에 책임을 져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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