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의 60년 뿌리'를 뽑으려면...

[정욱식 칼럼] 한국전쟁을 끝낸다는 것의 의미

문제 해결에 접근할수록 지금까지 잘 드러나지 않았거나 다뤄지지 않았거나 피하고자 했던 근본 문제가 수면 위로 부상하기 마련이다. 한국전쟁을 끝내려고 하는 종전선언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한국전쟁이 남긴 세 가지 근본 문제, 즉 한반도 정전체제와 한미동맹, 그리고 핵 문제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1953년 7월 27일 한국전쟁을 휴전하기로 한 정전협정은 한미간에 상호방위조약과 주고받은 성격이 짙었다. 북진통일을 국시로 내세운 이승만 정권은 한사코 정전협정에 반대했었다. 그리고 그의 목표는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이었다.

정전협정 체결이 초읽기에 들어갔던 1953년 6월 6일 이승만 대통령은 긴급 성명을 발표했다. "공산군과 유엔군이 한반도에서 동시에 철수할 것"을 제안하면서 "이에 앞서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상호방위조약에는 세 가지 내용이 포함되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첫째는 한국이 타국의 공격을 받을 경우 "미국은 자동적이고 신속하게 개입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둘째는 "한국이 독자적인 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무기와 탄약, 그리고 병참 물자가 제공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셋째는 "한국이 적절한 능력을 구비할 때까지 미국은 한국에 공군과 해군을 담겨두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승만은 "이러한 제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우리는 계속 전쟁을 하겠다"며 미국을 압박했다. 이러한 요구가 즉각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자, 반공포로를 몰래 석방해 정전협상에 찬물을 끼얹기도 했다. 이승만식 '벼랑 끝 전술'이었던 셈이다.

당황한 미국은 이승만의 제거까지 검토했지만, 결국 유인책을 제시하면서 이승만의 요구를 상당 부분 수용키로 했다. "(정전협정에 반대하는) 이승만을 설득하기 위해서 미국 정부는 로버트슨(Walter Robertson) 국무부 차관보를 서울로 보내 이승만과 협상하도록 한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이승만은 정전협정에 동의키로 미국은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키로 했다.

한국전쟁이 낳은 '역사의 쌍생아'라고 할 수 있는 정전협정과 한미동맹은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다. 다만 상호방위조약에는 이승만이 강력히 요구한 '한반도 유사시 미국의 자동개입' 조항은 빠졌다.

하지만 당시 미국은 근본적인 고민을 안고 있었다. 아이젠하워 행정부는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폭등한 군사비가 미국 경제를 어렵게 만들 것이라며 '안보의 경제성'을 강조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정책은 대규모의 주한미군 유지와 어울리는 짝이 아니었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이 한국 내 핵무기 배치였다. 공산군에 비해 열세에 있는 재래식 군사력을 핵무기의 대거 배치를 통해 만회키로 한 것이다.

이러한 결정에 따라 주한미군의 병력 수는 줄어들었고 그 대신 한국에 배치한 핵무기의 종류와 수량은 늘어났다. 분단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아른거렸던 핵과 한반도의 관계는 이렇게 밀착되고 말았다.

이렇듯 1950년대에 정전협정,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미국의 핵무기 배치 등이 맞물리면서 일시적인 협정이었던 정전협정은 '체제'가 되어갔다. 북한도 중국 및 소련과 공식적인 동맹조약을 체결하고 '4대 군사 노선'으로 상징되는 군사화에 박차를 가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정전체제는 어지간한 힘으로는 뽑아내기 힘들 정도로 한반도 땅속 깊이 뿌리를 뻗쳐갔다.

종전선언과 역사구조적 관성의 충돌

2018년 남북 정상은 판문점 선언을 통해 그 뿌리를 캐내기로 했다. 종전선언은 그 첫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동의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미국이 변심했다. 왜일까?

▲ 지난 6월 12일(현지 시각) 싱가포르 센토사섬에 위치한 카펠라 호텔에서 북미 정상회담이 열렸다. 사진은 본격적인 회담 전 악수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AP=연합뉴스

다양한 관점에서 설명할 수 있지만, 역사구조적 요인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종전선언은 60년 넘게 뿌리를 내려온 정전체제와 한미동맹, 그리고 미국과 북한의 핵 문제를 건드리는 작업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종전선언에 다가설수록 이들 세 가지의 저항도 커진다.

특히 그 중심에는 한미동맹이 있다.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이 종전선언 및 평화협정과 아무리 무관하다고 주장해도 그 존재 이유는 약화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결국 이러한 역사의 관성의 무게를 이겨내려면 지속적으로 추진력을 만들어내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추진력의 핵심에는 비핵화 진전이 있다. 이 추진력이 떨어지거나 멈춰버리면 기존 체제의 반격이 시작되거나 다른 문제들이 끼어들기 마련이다. 이 와중에 같은 사람도 딴생각을 할 수 있고, 본래 딴생각을 품고 있던 사람의 개입력도 커진다. 전자가 트럼프라면 후자의 대표주자는 존 볼턴 백악관 안보보좌관이다.

6.12 북미정상회담 이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미국 국민과 언론을 향해 3개월 가까이 같은 소리를 반복하고 있다.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도 없고 억류된 미국인과 미군 유해도 돌려받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성과 자랑의 효력은 이미 떨어졌다. 상당수 미국인들에겐 지겹도록 반복되는 '고장난 라디오'로 들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끝장 협상' 제안을

그래서 남북한은 다시 트럼프의 흥을 북돋아야 한다. 북한은 미국의 변심을 개탄만 할 것이 아니라, 그 변심이 굳어지기 전에 비핵화의 의지를 다시 과시할 필요가 있다. 남북 특사 회담과 남북정상회담은 이를 위한 더 없이 좋은 자리이다.

장고에 들어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그 고심에 걸맞은 역사적 제안을 내놓길 바란다. 교착 상태를 타개할 수 있는 유력한 방법은 북미공동성명을 구체화하고 신속하게 이행할 수 있는 '끝장 협상'이 아닐까 한다. 북미, 혹은 남북미, 혹은 남북미중 정상들이 합의에 도달할 때까지 협상을 벌여보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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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북한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9년 대학 졸업과 함께 '평화군축을 통해 한반도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평화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 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말과 칼>, <MD본색>, <핵의 세계사> 등이 있습니다. 2021년 현재 한겨레 평화연구소 소장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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