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중국' 40년, 어떻게 하이얼을 낳았나

[최재천의 책갈피] <격탕 30년>

"개혁개방의 배포는 더욱 대담해야 하고, 과감하게 시험해야 하며, 전족을 한 여자와 같아서는 안 된다." (1992년 1월, 덩샤오핑(88세), '남순강화')

1978년 말 미국의 <타임>지는 48페이지의 본문을 할애하며 덩샤오핑을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다. 표지 제목은 '신중국의 몽상가(Vision of a New China).' 덩의 비전은 꿈일까, 현실일까.

"우리는 2018년 개혁개방 40주년 경축을 계기로 산을 만나면 길을 내고 물을 만나면 다리를 만드는 정신으로 개혁을 끝까지 밀고 나갈 것입니다." (시진핑 주석, 신년사)

공산사회에서 시장경제로의 전환은 그야말로 '격탕(激蕩)'이었다. 심하게 뒤틀리고, 흔들릴 수밖에 없었던 것. 그 과정에서 나타난, 한국사회에 '늘 소개하고 싶었던' 두 가지 이야기가 있다.

1982년, 지린성 창춘에 '군자란(君子蘭) 투기'가 있었다. 우리도 아는 관상식물이 어떻게 해서 투기의 대상이 되었을까. 당시 일반 노동자들의 임금은 겨우 30~40위안. 그런데 하룻밤 사이에 가격이 100배나 폭등하고 1만 위안을 넘어 15만 위안에 팔리는 군자란까지 나타났다. 미쳐가고 있었다. 과격한 거품이었다.

1983년 창춘시 정부는 <군자란 교역에 관한 약간의 규정>을 발표했다. 가격을 제한하고, 세금을 올리는 정책이었다. 타는 불에 기름을 부었다. 투기는 극에 달했다. 특별한 접근법이 필요했다. 1984년 10월, 창춘시 인민대표대회는 아예 군자란을 '시화(市花)'로 정하고 집집마다 3~5개의 재배를 강제하는 규정을 통과시켰다. 비로소 광풍은 정점에서 시들기 시작했다.

1984년, 35세의 장루이민은 산둥의 칭다오에서 파산이 임박한 전자공장의 공장장으로 파견되었다. 다음 해 어느 날, 한 친구가 냉장고를 사러왔다가 이런저런 문제를 지적했다. 친구가 돌아간 후 장루이민은 공장 안에 있던 400여 대의 냉장고 전수조사에 들어갔다. 76대의 냉장고에서 여러 가지 문제가 있음이 발견됐다. 직원들은 염가판매를 제안했다.

장루이민은 76대의 냉장고를 부수어 고철로 만들 것을 지시했다. 당시 냉장고 한 대 가격은 800여 위안. 종업원 한 명의 2년 치 급여였다. 많은 직원들이 냉장고가 부서질 때 눈물을 흘렸다. 장루이민의 냉장고 사건은 훗날 중국 최대 가전업체 '하이얼'의 성공 스토리가 되었다.

2014년 번역된 <격탕 30년>은 중국 개혁개방의 역사에 관한 최고의 교과서다. 강력히 추천한다.

▲ <격탕 30년>(우샤오보 지음, 박찬철·조갑제 옮김.) ⓒ새물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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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

예나 지금이나 독서인을 자처하는 전직 정치인, 현직 변호사(법무법인 헤리티지 대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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