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산분리' 규제 완화로 가는 문재인 정부
대자본의 독점구조 혁파는 이제 물 건너가는 모양이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기조는 신자유주의 체제를 도리어 강화하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금융시장에 대한 대자본의 지배는 자본의 본질적 욕망이다. 이를 막아내거나 통제하지 못하면 이 사회는 거대자본의 손아귀에서 좀체 벗어나기 어렵게 된다. 그것은 노동자를 비롯해서 보통의 시민들의 정치적, 경제적 발언권이 앞으로 더더욱 줄어들고 만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자본의 확대 재생산구조는 보장되고 빈곤은 제도화된다.
최저임금 정책은 을과 을 또는 을과 병의 싸움으로 그 부담이 전가되었다. 최저임금 산입 방식도 노동자에게만 희생을 요구하는 내용이다. 수당, 상여금 등 따로 줘야 할 돈마저 최저임금에 계산하면 그게 어디 최저임금인가? 실제로는 임금 삭감 아닌가? 게다가 마치 최저임금이 경제악화의 주범처럼 몰아대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고, 최저임금이 부담되는 자영업자, 영세 중소기업에 대한 조처는 없다.
이러한 상황을 구조적으로 확정하고 있는 대기업에게 부담을 함께 감당하는 정책은 보이지 않는다. 이미 너무나 많은 것을 가진 자들이 가진 것이 없는 이들의 것을 빼앗고 있는데 정부는 방조하고 있는 셈이다. 경제가 잘 움직이지 않으니 지지율이 빠지고, 이런 상황에 초조할 수 있지만 이럴 때 일수록 본질로 돌아가 해법을 찾아야 한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가 혹여 허둥대고 애초의 기조를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심각하게 우려된다.
재벌개혁 물 건너갔나?
삼성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도 이미 그 답이 나온 셈이다. 문재인 정부와 삼성의 밀월 동맹은 시작되었고, 이제는 공개적 수준으로 접어들었다. 김동연 경제부총리의 삼성 방문 이후 삼성은 180조를 풀어 4만 명을 직접 고용하겠다는 내용을 발표했다. 과정이 순수하지 않다. 여기에 바이오시밀러(복제약) 관련 규제 완화라는 대가도 요구한 다음이었다. 국민건강에 중대한 의미를 지닌 바이오 산업분야의 검증체계, 독과점 구조가 아주 간단하게 정리되고 있는 것이다.
경제정책이 동력을 보이지 않으면서 압박을 받고 있는 정부와, 법률적 압박 아래 놓인 삼성의 손잡기라는 것은 누가 봐도 분명하다. 노무현 대통령이 "권력은 시장에 넘어갔다"는 발언을 떠올리게 한다.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인해 노동자들의 삶이 힘들어졌던 시기의 문제와 모순에 대한 성찰이 현실 앞에서 졸지에 사라진 것일까? 촛불시민혁명의 요구에는 재벌개혁이 분명하게 담겨져 있다.
특례법? 특혜법!
산업자본의 금융시장에 대한 지배비율을 현재 4퍼센트 이하로 제한되어 있는 것을 무려 34퍼센트 또는 50퍼센트까지 상향조정한다는 것은 대자본에게 금융시장을 고스란히 넘겨주는 것을 뜻한다. 이른바 "특례법"이다. 그러나 내용은 "특혜법"이다. 말로는 IT 기술을 통한 금융시장의 혁신적 성장을 내세우고 있으나, 실제 지배구조가 바뀌는 것에 대한 답변은 부실하기 짝이 없다.
그 추진방식 또한 대단히 폭력적이다. 이 정도로 중대한 정책전환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건너뛰다 시피하고 있다. 대자본의 이해를 적극 옹호하고 있는 자유한국당이 이러한 정책 전환에 대해 쌍수를 들고 환영하고 있는 것만 봐도 은산분리 규제완화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는 명확하다.
더불어 민주당은 은산분리가 경제민주화의 원칙 안에서 작동하도록 하겠다고 하지만, 그 작동의 장치는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말 만이다. 위태로운 태도다. 이런 식으로 나가면, 초국적 거대 금융자본이 인터넷 뱅킹을 장악할 날도 머지않다. 삼성의 바이오시밀러 규제완화도 초국적 제약 산업과 그 이해관계를 같이 한다. 이는 의료정책의 영리화로 가는 길이 더더욱 열리는 것을 뜻한다.
방치된 노동자들 그리고 전교조
이런 상황이 한편에서 전개되는 동안, 전교조 법외노조 문제는 완전 방치상태다. 박근혜 정권 당시 정권의 요구와 사법부의 거래로 희생된 내용이 드러나고 있는 상황에서 전교조 법외노조 해결은 여전히 문재인 정부의 해결목록 우선순위에 오르지 못하고 있다. 조창익 전교조 위원장은 폭염 단식 20일을 넘기면서 병원에 후송되었다. 정부는 여전히 묵언수행중이다.
교육 노동자들의 제도적 합법성을 보장해줄 방법이 결코 어렵지 않은데, 정치적 부담을 논하면서 거리를 두고 있다. 지지율 타령에 빠져 힘 있게 문제를 풀 수 있는 기회를 계속 상실하고 있다. 이래도 되는가?
교육 개혁이 되지 못하고 있는 까닭은?
2022년도 대입제도 정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문재인 정부의 교육정책은 입시제도 개혁의 주도세력이 서 있을 자리가 없기 때문에 생기고 있다. 전교조는 바로 그 세력의 중심축이다. 이들을 배제한 상태에서 논의되는 교육정책의 변화는 출발부터 기대하기 어렵게 되어 있다. 아무리 공론화 과정을 거친다고 해도 교육혁신의 경험과 논리, 그리고 현장의 요구를 담아낼 수 있는 세력의 입장이 담겨져 있지 않은데 어떻게 제대로 된 개혁안이 나올 수 있겠는가?
한반도 평화체제를 마련하는 문재인 정부의 노력은 그야말로 절대적 지지를 받아야 한다. 우리 모두의 숙원이자, 평화가 곧 우리의 미래를 보장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평화도 정의로운 제도와 정책이 기반이 되어야 한다. 기득권 질서를 타파하지 못한 채 바로 그 기득권 질서에 의존해서 문제를 풀려고 하면, 모순은 더더욱 심화되고 서민들의 고통은 가중될 수 밖에 없다. 의도가 그렇지 않다고 해도 현실은 그렇게 나타난다.
이반 일리치의 일깨움
인간 혁명의 사상가 이반 일리치는 <깨달음의 혁명>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 체제는 기술적으로 가능하기만 하면 무슨 무기든 개발하고 그것을 받아들이라고 우리에게 강요합니다. (…) 새 시대의 특징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특권과 면허장의 종언'이 될 것입니다."
IT 기술을 내세워 금융자본의 지배구조를 더더욱 강화하고, 이에 대해 면허장과 특권을 부여하는 사회는 어떤 사회가 될 것인가?
이를 혁파하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한 사람들의 목소리에 더욱 귀를 기울여야 한다. 침묵당하고 있는 이들의 목소리를 경청해야 한다. 이반 일리치는 "침묵의 문법은 소리의 문법보다 훨씬 배우기 어려운 기술입니다"라고 일깨우고 있다. 정치는 바로 이 기술이 습득될 때 그 진가를 발휘한다. 자본의 유혹 앞에서 인간의 가치를 지켜내는 정치를 보고 싶다. 대자본에게 특권과 면허장을 주는 정부가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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