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의 정체성이 감세인가?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대기업 감세로 복지국가 하겠나?

지난 7월 30일 문재인 정부가 세법 개정안을 발표했다. 우선 근로장려금과 자녀장려금의 대폭 확대가 눈에 띈다. 일해도 가난한 사람이 많은 상황에서 반가운 방안이다. 여러 불안정 노동자, 영세 자영자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발표한 문서는 세법 개정안이다. 근로장려금과 같은 조세 지출 항목뿐만 아니라 ,전체 세금의 개혁을 담은 종합상자이다. 이번 세법 개정안의 최종 결과는 세수 감소이다. 향후 5년간 12.6조 원. 이명박 정부 이래 처음으로 세수가 줄어드는 세법 개정안이다.

근로장려금 확대에 반가웠던 세법 개정안이 금세 당황스러운 문서로 다가온다. 이제 세금은 이 정도로 충분하다는 이야기로 들린다. 지금이 이명박 정부인가, 박근혜 정부인가? 포용적 복지국가를 제안하는 문재인 정부이다. 나라다운 나라를 주창하는 촛불 정부이다. 그런데 세수 감소의 세법 개정안이라니?

감세를 통한 복지?


기획재정부는 말한다. 서민을 위한 조세 지출을 늘린 까닭에 세수가 줄었다고. 맞다. 근로장려금, 자녀장려금 확대는 긍정적이다. 하지만 세법 개정안은 개별 제도인 근로장려세제보다 훨씬 상위 범주이다. 보통 정부는 매년 모든 세법 묶어 정기국회 전에 한 번 개정안을 제출한다. 이번에 발표한 세법 개정안이 그것이다. 수시로, 사안별로 제출하는 국회의원의 세법 개정안과 다르다. 이에 정부 세법 개정안은 정부의 조세 정책의 정체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작년 세법 개정안은 문재인 정부가 당선 직후 내놓아야 했던 한계가 있었다. 올해 세법 개정안이 문재인 정부의 조세 정책 정체성을 보여주는데, '세수 감소'라니! 근로장려금, 자녀장려금으로 세수가 줄어들면 이를 보완하는 다른 증세 방안을 적극 담았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증세 없는 복지'를 넘어 '감세를 통한 복지'가 된다.

▲ 대선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촛불 민심을 받들어 완전히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문재인 캠프

의도된 초과 세수

기획재정부는 또 말한다. 초과 세수가 존재한다고. 아마 올해도 초과 세수가 20조 원 안팎일 듯 하다. 이리 세수가 넘치는 데 굳이 증세를 해야겠냐는 반문이다.

초과 세수가 로또처럼 즐거운 소식일까? 나는 더 이상 초과 세수가 매력적이지 않다. 어떻게 대규모 초과 세수가 3년 연속 발생할 수 있을까? 두 가지 중 하나이다. 기획재정부의 세수 예측 능력이 빵점이든지, 아니면 알고도 세수를 과소하게 잡아 발생한 의도된 초과 세수이든지.

나는 근래 초과 세수는 기획재정부의 '의도된 결과'라고 판단한다. 초과 세수가 놀랍지도 매력적이지도 않은 이유이다.

작년 12월 국회 예산안 심의로 되돌아가보자. 이 때 국회에서 통과한 올해 국세 세입은 268.1조 원이다. 작년 징수액이 265.4조 원인데 여기서 고작 2.7조 원 늘어나는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러니 경제성장에 따른 세수 자연증가분을 감안하면 올해도 세입이 예산보다 20조 원 안팎으로 더 걷히는 건 당연하다.

12월이면 당해 징수액이 거의 예상되는 시점이다. 다음해 세입 예산액이 올해 징수액을 기준으로 보면 과소 추계된 수치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그대로 예산안을 강행했다. 국회에서 예산안이 의결된 이후 변경하는 게 추경 예산이라면, 국회에서 심의가 완료되기 전에 기획재정부가 원안을 수정하는 건 수정 예산이다. 국회에 예산안을 제출하는 9월 시점에 징수액이 불명확했다면, 12월이면 당해 징수액이 예상되는 시점이다. 몇 조원도 아니고 20조 원이나 예산안보다 세입이 증가한다는 걸 알면서도 수정 예산을 제출하지 않은 건 기획재정부의 의도된 행위이다. 이를 알면서도 방치한 국회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내년 예산안은 반드시 기획재정부가 내년 실제 세입 예상액을 담아 국회에 제출해야 한다. 내년에 세입이 많아지면 그만큼 재정 지출을 늘리면 된다. 지금도 복지를 강화하라는 서민의 요구가 곳곳에서 들리지 않은가? 혹 당자 지출을 확대할 곳을 못찾겠으면 적자를 보전하기 위해 책정한 국채 발행액을 줄이면 된다. 그러면 매년 바통을 넘겨 받듯 이어지는 초과 세수 릴레이는 멈출 수 있다. 초과 세수를 유도하고 이를 근거로 증세 논의를 회피하려는 꼼수는 이제 그만하자는 이야기이다.

빈약한 보유세, 배제된 금융종합소득 과세, 대기업 감세 확대

기획재정부의 변명이 이어진다. 근로장려금, 자녀장려금을 빼고 계산하면 증세안이라고. 물론 증세 항목도 있다. 그런데 정말 제대로 증세 방안을 담았는가?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번 세법 개정안이 '공평하고 정의로운 조세 정책'을 목표로 삼았다고 말했는데, 정말 그러한가?

▲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7월 20일 국가재정전략회의를 열고 있다. ⓒ청와대

우선, 이번 세법 개정안의 핵심인 보유세가 빈약하다. 미진하다고 비판받았던 재정특위 권고안보다도 후퇴했으니. 공정시장가액 비율이 90%에서 멈췄다. 공시지가가 시가보다 턱없이 낮은 현실에서, 공시지가에 다시 공정시장가액비율을 적용해 인위적으로 세금이 부과되는 과표 가격을 낮추는 것이 오히려 '불공정'인데도 100%를 거부했다. 재정특위가 권고했던 별도합산토지에 대한 종부세 강화는 아예 빠졌다. 대기업 법인이 주로 가진 종합합산토지의 최고세율도 노무현 정부 수준으로 더 높였어야 했다(현행 2%, 개정안 3%, 노무현 정부 4%).

재정특위가 권고한 '금융소득종합과세 강화'도 배제되었다. 지난달에 재정특위는 금융 소득의 상위 계층 쏠림 현상이 심하고, 금융소득자와 비금융소득자의 조세 형평성 문제를 해소할 필요가 있다면 금융소득 종합과세 기준 금액을 현행 2000만 원에서 1000만 원으로 강화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이는 기획재정부 장관이 말하는 '공평한 조세'를 위해서도 꼭 필요한 조치인데도 손바닥 뒤집듯 무시되었다. 재정특위는 문재인 정부가 조세, 재정 분야의 종합설계도를 마련하겠다는 취지로 지난 4월에 설립한 기구이다. 이렇게 조기에 기획재정부에 의해 무력화될 줄이야.

이번에 대기업에게 법인세 감면 확대도 제공되었다. 이명박 정부 감세 이래 대기업 법인세 감면이 줄어드는 추세였는데, 혁신 성장을 명분으로 감면이 늘었다. 위기 지역 기업을 지원하고 고용친화적으로 세액 감면을 개선하는 건 이해하지만, '혁신 성장 투자 자산에 대한 감세', '신성장동력/원천기술 연구개발(R&D) 비용 세액 공제 및 시설 투자 세액 공제 확대'를 포함한 건 유감이다. 이 분야의 특성상 주로 대기업이 세금 감면 혜택을 볼 것이다. 투자 능력을 지닌 대기업에 언제까지 국가가 세금을 지원하려는가? 대기업에 제공하는 연구개발(R&D) 비용 세액 공제를 대폭 줄여야 하는 시점인데도, 공공연하게 이에 역행하니 당황스럽다.

공평 과세와 복지 증세의 종합 청사진 내놓아야


문재인 정부는 '나라다운 나라'를 주창한다. 미래 비전으로 포용적 복지국가도 제안했다. 정말 그렇다면, 이를 뒷받침하는 조세 정책이 나와야하지 않나? 집권 2년 차인 이번 세법 개정안에서는 말이다.

정부에 요구한다. 공평 과세와 복지 증세!, 조세 정의를 위한 공평 과세와 복지국가를 향한 복지 증세에 적극 나서라. 이는 대한민국이 나라다운 나라로 가기 위한 기본 조건이다.

의지를 가져라, 그러면 증세를 기다리는 항목이 보일 것이다. 주식 양도 차익의 누진 과세, 주택 임대 소득의 강화, 법인세 구간의 강화, 복지 확대와 연동한 소득공제의 축소 등 이야기할 주제가 많다. '복지에만 쓰는 세금, 사회복지세' 도입도 대범하게 꺼내라. 세금은 아니지만, 사회보험료의 인상도 제안할 수 있어야 한다. 나아가 이제 임기 2년째라면, 복지국가를 향한 조세 개혁 종합 청사진도 내놓아야 한다. 개별 세목 하나하나를 넘어 공평 과세와 복지 증세를 담은 숲을 보고 싶다. 그래야 촛불 시민들이 '나라다운 나라'를 진정 꿈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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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는 시민들이 복지국가 만들기에 직접 나서는, '아래로부터의 복지 주체 형성'을 목표로 2012년에 발족한 시민단체입니다. 건강보험 하나로, 사회복지세 도입, 기초연금 강화, 부양의무제 폐지, 지역 복지공동체 형성, 복지국가 촛불 등 여러 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칼럼은 열린 시각에서 다양하고 생산적인 복지 논의를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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