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의 대통령직 박탈은 한국 민주주의가 인민주권에 기반하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고 명시적으로 나타내보였다. 국회의 탄핵 의결과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파면 판결로 구체화된 박근혜 퇴출은 인민주권에 기초한 시민들의 자발적인 연대와 압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정치적 사건이었다. 시민들은 한국사회에 구조화되고 관행처럼 굳어진 사회경제적, 정치사회적 부조리의 타파를 요구했고 그 연장에서 문재인 정부가 출범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한반도 안보지형의 변화에서 비롯하는 남북 긴장과 북미의 적대적 관계의 해소라는 세기사적인 변화 이외에 사회적 불평등 구조의 완화나 심화되고 있는 계급과 계층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시민의 열정과 에너지는 고갈되고 있다. 개혁이라는 대세를 추동하는 시민사회의 압박도 소진되고 있다. 지방선거 이후 야당이 개헌을 이슈화시키려 하지만 이 역시 국면 전환과 주도권 확보라는 정략적 발상에 기인한다.
정치는 사회가 지향해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계층과 세대, 이념 균열을 조직화함으로써 갈등을 조정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이를 위해 국회가 존재하고 청와대와 정부, 여야 정당이 존재한다. 정치가 작동되기 위해서는 정당과 국회의 역할이 핵심적이다. 주기적이고 공정한 선거와 정권교체의 가능성 등은 민주주의를 다른 체제와 특징짓는 요소다.
지난 지방선거가 기득권과 하위계층의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한 새로운 정책과 쟁점을 촉발하는 중대선거(critical election)로 기록될 것 같은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여야 정당 모두 평상의 정치문법으로 돌아갔다.
자유한국당이 비상대책위원장을 결정했으나 고착화된 냉전지향적 인식을 과감히 벗어던지고 인적쇄신과 새로운 가치를 정립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여전히 당내 권력과 계파대립에 진력하는 모습이 그러한 유추를 낳는다. 더불어민주당은 전당대회를 앞두고 최저임금 인상이 촉발하고 있는 '못 가진 자들 사이의 갈등'에 정책적 대안을 제시하는 치열한 논쟁을 찾아볼 수 없다.
지난 1년 행정부 차원의 개혁 시도가 있었으나 제도화나 입법으로 구체화되지 못하고 있다. 대통령은 최저임금 1만 원의 대선 공약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대국민 사과를 했다. 고용과 수출, 성장률 등 경제지표의 악화와 경기침체는 소득주도 성장이라는 문재인 정부의 기본 방향조차 흔들고 있다. 집권 1년차가 이럴진대 2년차, 3년차가 나아지리라고 보기 어렵다.
지난 1년은 사실상 입법부 공백이었고 이는 정치의 부재로 연결됐다. 제1야당에게 책임의 반 이상이 있으나 집권당이라고 해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들은 결과적으로 적대적 공존이라는 익숙한 방식으로 서로의 이해에 봉사했다.
20대 하반기 국회가 사회개혁을 추동하기 위해서는 집권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정치를 복원하고 촛불 시민들의 정치적 세력화를 위한 디딤돌을 마련하지 않으면 안 된다. 탄핵이 시민들의 정치적 압박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던 것처럼 사회적 구조를 바꾸고 부조리와 부패를 제거하기 위해선 일상적 의회정치로는 불가능하다. 다시 시민정치가 나설 때가 됐다. 그 역할은 청와대도 아니고, 정부의 몫도 아니다. 주권자의 정치적 에너지를 활성화시키기 위해선 시민을 조직화 할 수 있는 정당의 역할이 필수적이다.
시민들의 참여 없이 개혁은 불가능하다. 인민주권이라는 민주주의의 기본으로 돌아갈 때가 됐다. 여당의 협치와 포용의 부족, 선거 패배 이후에도 여전히 사회적 기득권 보호에 몰두하는 보수야당들의 행태 등으로 미루어 볼 때 미래는 결코 낙관적이지 않다. 낙하산 인사, 관행화된 전관예우, 사학의 부조리, 이루 열거할 수 없는 사회 각 분야의 적폐들, 기득권의 군림 등을 폐기할 수 있는 법적 제도화는 이미 기득권화된 국회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국회는 국민의 명령과 압력에 따라 절차적 민주주의에 따른 제도화를 할 수 있을 뿐이다.
경제 악화의 혐의를 최저임금 인상에 몽땅 뒤집어씌우는 프레임을 타파하기 위해선 시민의 조직화가 필요하다. 지난 촛불 혁명은 이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꺼져가는 시민들의 촛불 에너지의 재점화만이 사회를 바꿀 수 있다. 직접민주주의가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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