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와 김정은이 만든 '케미'의 운명은?

[정욱식 칼럼] 흔들리는 북미 협상, 신뢰 회복할 수 있을까

판이 깨지지는 않았지만, 흔들리기 시작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지난 6~7일 북한에서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과 만나 오는 12일 미군 유해 송환을 위한 회담을 갖기로 하고, 미사일 엔진 실험장 파괴를 비롯한 여러 현안들을 놓고 실무그룹을 만들기로 한 것은 양측이 협상 동력을 계속 살려 나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폼페이오의 발언과 북한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보면 양측의 이견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우선 폼페이오는 양측이 "선의를 갖고 생산적인 대화를 했다"고 자평했지만, 북한 외무성은 "극히 우려스럽다"는 입장을 내놨다. 미국이 6.12 북미 공동성명의 정신에 맞지 않게 "CVID요, 신고요, 검증이요 하면서 일방적이고 강도적인 비핵화 요구만을 들고 나왔다"는 것이다.

특히 정전협정 체결 65주년을 맞이해 "종전선언을 발표하는 문제에 대한 미국 측의 답을 기대"했지만, "이러저러한 조건과 구실을 대면서 멀리 뒤로 미루어놓으려는 입장을 취하였다"며 강한 불만을 표했다.

이는 미국에 대한 북한의 신뢰가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싱가포르 정상회담에서 "신뢰구축이 한반도의 비핵화를 추동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추구하기로 합의했었다.

하지만 북미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의 '입구'이자 중대한 신뢰구축 조치에 해당하는 종전선언과 관련해 미국은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말았다. 결국 북한은 "우리의 기대와 희망은 어리석다고 말할 정도로 순진한 것"이었다고 자성했다.

북한은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것을 보여주겠다고 작심한 듯, "강도적"이라는 거친 표현까지 동원해 미국을 비난했다. 김정은은 폼페이오와의 면담조차 응하지 않았다.

▲ 지난 6월 12일(현지 시각) 싱가포르 센토사섬에서 열린 북미 정상회담에 앞서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악수하고 있다. ⓒAP=연합뉴스

그렇다면 폼페이오는 왜 평양에서 북한의 기대에 한참 못 미치는 태도를 보인 것일까? 이와 관련해 <뉴욕타임스>의 지난 5일자 보도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매체는 폼페이오가 3차 방북 직전에 "'북한의 핵·미사일 포기를 설득하는 임무는 처음부터 실패할 운명에 처해져 있다'는 얘길 (외부 전문가들에게) 했다"고 전했다. 심지어 측근 참모들에겐 북한과의 협상이 실패할 것이라면 "빨리 그렇게 돼서 우리 정부가 북한에 대한 제재와 외교적 고립이란 '최대의 압력' 작전으로 돌아갈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러한 보도가 사실이라면 폼페이오는 북한의 비핵화 가능성에 대해 방북 전부터 회의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중앙정보국(CIA) 국장 재직 시절에 협상을 통한 비핵화에 강한 의구심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트럼프가 전격적으로 북미정상회담을 수용하고 폼페이오를 국무장관으로 기용하면서 실무 총책이라는 미션이 주어졌다. 그 이후 그는 북미정상회담에 대한 미국 주류의 냉소적인 반응을 일축하면서 협상 의지를 강하게 내비쳤었다. 이랬던 그가 다시 희의론자로 바뀌었다는 것이 <뉴욕타임스>의 보도인 셈이다.

폼페이오는 7일 한미일 외교장관 회담을 마치고 가진 기자회견에서도 신뢰보다는 압박에 무게 중심을 뒀다. 먼저 그는 북한 외무성 대변인이 미국의 요구를 "강도적"으로 비난한 것을 두고 "그렇다면 세계가 강도다. 왜냐하면 달성해야 할 목표에 대해 유엔 안보리에서는 만장일치로 합의한 결의가 있기 때문"이라고 받아쳤다.

그는 유엔 안보리 결의의 철저한 이행도 강조했는데, 이는 신뢰구축을 통한 비핵화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북한은 안보리 결의를 "철저하게 배격한다"는 입장을 고수해왔기 때문이다.

대북 제재 문제에 대해서도 강경 입장을 분명히 했다. 폼페이오는 "북한이 먼저 비핵화 공약을 준수해야 할 것"이라며, "제재는 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되는 비핵화가 이뤄질 때까지 유지될 것"이라고 밝힌 것이다.

또한 그는 북미공동성명에 담긴 북미간의 평화로운 관계 수립, 대북 안전 보장, 비핵화가 "병행해서 동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도 "경제 제재는 완전히 별개의 문제"라고 주장했다. 폼페이오는 비핵화의 단계에 조응해 관계 개선과 대북 안전 보장 조치들도 하나둘씩 취해나갈 의사는 있지만 제재 해제는 예외라고 강조한 셈이다.

이는 미국 주도의 제재를 "적대시 정책"의 상징처럼 간주해온 북한의 입장과 너무나도 거리가 먼 것이다. 더구나 북한은 4월 20일 노동당 결정서를 통해 경제건설에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새로운 전략 노선"까지 천명했는데, 이는 "완전한 비핵화 때까지 제재를 유지하겠다"는 폼페이오의 발언과는 상당한 긴장관계를 수반할 수밖에 없다. 대북 제재의 실질적인 해제 없이는 북한이 천명한 새로운 전략 노선도 겉돌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결국 북미 공동성명에 담긴 '신뢰구축을 통한 비핵화'는 중대한 시험대에 오르게 되었다. 신뢰 형성도 상호작용인 만큼 불신 게임도 상호작용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북미 간의 신뢰구축 조치는 더디기만 하고 이 사이에 불신이 싹트고 있다.

실망한 북한은 지푸라기로도 잡는 심정으로 "우리는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신뢰심을 아직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김정은은 트럼프에게 친서도 전달했다. 이에 대해 김정은과의 정상회담에서 "좋은 케미"가 일어났고 이로 인해 "특별한 유대"도 형성했다는 트럼프가 어떤 반응을 내놓을지 초미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또 한 가지, 이른바 "남북미 평화프로세스" 방식도 재검토해야 할 때가 왔다. 지금까지는 남북, 한미, 북미라는 양자틀이 중심이었다. 하지만 이번 북미 고위급 회담을 통해 양자 협의틀의 한계도 드러났다. 중국의 참여 문제도 끊임없이 논란거리가 되어왔다. 하여 이제는 남북미중 4자회담과 6자회담의 개최도 본격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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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북한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9년 대학 졸업과 함께 '평화군축을 통해 한반도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평화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 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말과 칼>, <MD본색>, <핵의 세계사> 등이 있습니다. 2021년 현재 한겨레 평화연구소 소장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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