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성의 지역은 정치다] 공공기관대표 선임 논란, 이제 무엇을 보아야 하나

최근 지역의 한 공공문화기관 대표 선임을 둘러싸고 문화예술계 안팎에서 여러 문제 제기가 이어지고 있다. 임원추천위원회 구성과 선임 절차의 적정성, 정보공개의 범위, 대표 선임의 정당성 등이 주요 쟁점이다.

공공기관의 대표를 선임하는 과정에서 절차적 공정성과 투명성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공공문화기관은 특정 개인이나 단체의 것이 아니라 시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기관이기 때문이다. 의혹이 있다면 자료를 공개하고, 절차상 문제가 확인된다면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

그러나 이번 논란을 바라보면서 한 가지 더 생각해야 할 지점이 있다. 절차 문제에 대한 사실관계가 어느 정도 확인된 이후에도 논쟁이 계속된다면, 문제는 단순한 공정성 논란을 넘어 지역 문화예술계 내부의 영향력 경쟁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점이다.

지역 문화예술계는 장르와 세대, 조직과 활동 방식이 매우 다양하다. 그만큼 공공문화기관의 대표에게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역량은 특정 분야의 전문성을 넘어 전체 문화생태계를 조망하는 통합적 리더십이다.

어느 한 장르에서 오랜 경력을 쌓았다는 것은 장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공공문화기관의 대표가 된 이후에는 자신의 출신 분야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 문학, 시각예술, 공연예술, 전통예술, 다원예술, 생활문화 등 서로 다른 영역을 균형 있게 바라보고, 특정 분야에 예산과 기회가 집중된다는 의심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

따라서 대표의 자질은 주요 이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취임 이후 어떤 인사를 하는지, 각종 위원회를 어떻게 구성하는지, 공모사업의 심사체계를 얼마나 공정하게 운영하는지, 신규사업과 예산을 어떤 원칙으로 배분하는 지에 있다.

결국 대표의 그동안 이력으로 판단할 것이 아니라 실제 정책과 예산으로 검증해야 한다.

더 우려되는 것은 문화계 내부의 갈등이다. 대표 선임을 둘러싼 논쟁이 어느 순간 ‘누가 우리 편인가’의 문제로 바뀐다면 문화재단은 문화정책의 플랫폼이 아니라 지역 문화권력을 둘러싼 경쟁의 장이 될 수 있다.

공정성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존중되어야 한다. 그러나 공정성이라는 가치 역시 모든 상황에서 일관되게 적용되어야 한다. 자신에게 유리한 결과가 나왔을 때는 절차에 침묵하고, 불리한 결과가 나왔을 때만 공정성을 문제 삼는다면 그 주장 역시 설득력을 얻기 어렵다.

반대로 선임 절차가 완료되었다는 이유로 이후의 모든 비판을 정치적 공격이나 이해관계의 문제로 치부해서도 안 된다. 공공기관의 대표는 임명되는 순간부터 더 높은 수준의 설명 책임을 갖기 때문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사람에 대한 찬반이 아니라 원칙이다.

정치권 역시 공공문화기관을 보은인사의 대상으로만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 문화예술계도 공공기관을 특정 단체나 장르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수단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공공문화기관의 독립성과 전문성이 흔들리면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결국 현장의 예술인과 시민이다.

대표 선임 논란의 첫 번째 단계가 ‘절차의 공정성’이라면, 이제부터는 ‘운영의 공정성’을 살펴봐야 한다.

누가 대표가 되었는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앞으로 어떤 원칙으로 기관을 운영할 것인가이다. 특정 이해관계에 치우치지 않는가, 비판적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이는가, 내부 직원의 전문성을 존중하는가, 지원사업의 공정성과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가를 살펴봐야 한다.

특히 취임 초기에는 자신과 가까운 사람보다 자신과 다른 목소리를 내는 사람을 더 많이 만날 필요가 있다. 그래야 대표 선임 과정에서 생긴 불신을 조직과 정책에 대한 신뢰로 전환할 수 있다.

공공문화기관의 대표는 특정 분야의 대표가 아니다. 지역 문화예술생태계 전체를 연결하고 조정하는 사람이다. 지역 문화예술계에도 자성이 필요하다. 문화정책의 중심에는 조직도, 단체도, 개인도 아닌 시민과 예술생태계가 있어야 한다. 공공문화기관의 주인은 어느 한 사람이 아니다. 어느 한 장르도 아니며, 어느 특정 세력도 아니다.

대표 선임을 둘러싼 갈등을 또 하나의 헤게모니 싸움으로 만들 것인가? 아니면 지역 문화정책의 성숙을 위한 계기로 만들 것인가? 이제 필요한 것은 편 가르기가 아니라 원칙이고, 영향력 경쟁이 아니라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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