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나온 조선(북한)에 관한 여론조사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통일에 대해 부정적이거나 회의적인 여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것은 최근 조사에서도 거듭 확인된다. 이런 추세가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특히 주목할 부분은 우리 국민이 조선을 별개의 국가로 인식하는 비중이 매우 크다는 것이다.
9월 29일 공개된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81.1%는 조선을 '별개의 국가'라고 답했다. 다음날 공개된 통일연구원 여론조사에서도 조선도 '하나의 국가'라는 데는 71.6%가 동의했다.
또 통일평화연구원 조사에선 한국의 영토 범위를 헌법 3조 규정대로 '한반도 전체'로 보는 응답률은 28.3%이었던 반면에, '현재의 남한 지역'으로 인식한 응답은 60.8%에 달했다. 통일연구원 조사에선 '남북한이 전쟁없이 평화적으로 공존할 수 있다면 통일은 필요 없다'는 응답이 66.9%에 이르렀다.
조선을 별개의 국가로 간주하면서 통일보다는 평화공존을 선호하는 여론은 젊은 세대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이러한 추세가 더욱 강해질 공산이 크다는 점을 말해준다.
이와 관련해 필자는 졸저 <자주국방의 가성비>를 통해 우리가 조선의 국가성을 인정하고 국방의 범위를 군사분계선(MDL) 이남으로 정의하면, 평화공존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상기한 여론조사는 이를 공론화할 수 있는 국민적 인식의 토대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주목할 점을 또 발견할 수 있다. 통일평화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대한민국만 합법정부'라는 의견은 83.6%, '북한 정권의 합법성'을 인정하는 응답률은 16.4%에 불과했다. 이는 조선을 별개의 국가로 '인식'하는 여론은 매우 높아지고 있지만, 조선을 국가로 '인정'하는 데에는 부정적일 가능성을 강력히 시사한다.
이러한 양면성은 다수의 국민이 조선을 하나의 국가로 간주하면서도 조선에 대한 무관심·혐오감·적대감이 높은 데에 따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종합해보면 우리 국민의 다수가 조선을 '적대적인 국가'로 간주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동시에 다수의 국민은 통일보다는 평화공존을 원한다. 그런데 조선을 적대국으로 인식하면서도 평화공존을 희망하는 것은 결코 모순적인 것은 아니다. 우리는 중국, 러시아, 일본 등과 여러 가지 갈등을 겪고 있지만, 이들 나라와의 관계 목표가 평화공존에 있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상대도 마찬가지이다. 상호간의 관계가 적대적으로 고착된 것은 아니라는 인식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정부가 한반도 평화공존을 목표로 제시하고 다수의 국민이 이를 원하는 데에는 조선과의 관계가 너무나도 적대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평화공존이라는 말 자체에는 현재의 적대성을 극복하자는 미래지향성을 품고 있다.
그렇다면 시대정신으로 자리 잡고 있는 평화공존을 향해 어떻게 나아갈 수 있을까? 한국이 싫다고 등 돌린 조선이 되돌아오면 좋겠지만, 이는 연목구어와 같은 일이다. 절연하겠다는 조선을 상대로 평화공존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안보를 튼튼히 하면서도 우리의 변화를 통해 상대의 변화를 도모하는 것 이외에는 마땅한 방법이 없다.
이와 관련해 이재명 대통령은 8·15 경축사와 9월 유엔 총회 연설을 통해 '포용적 평화공존'을 역설했다. "서로가 인식과 규범, 제도에서부터 적대성을 하나씩 줄여 나가야 한다"는 것이 그 요지이다.
일단 조선은 변했다. 조선이 '적대적 두 국가'를 선언하면서 한국을 "제1의 적대국"으로 간주하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동시에 조선은 2023년 7월부터 '남조선' 대신에 우리의 공식 국호인 대한민국이나 약칭인 한국을 사용하고 있다. 노동당 규약을 바꿔 '남조선 혁명 통일론'도 삭제했다. 헌법에 영토조항을 신설해 자신의 영토를 군사분계선(남부국경선) 이북으로 못 박았다. 이는 조선이 한국을 적대국으로 간주하면서도 우리의 주권을 인정한 것이라는 해석을 가능케 한다.
이제는 우리도 이 대통령이 말한 바를 하나둘씩 실천할 때이다. 대한민국의 일부라는 뉘앙스를 품고 있는 '북한' 대신에 공식 국호 사용의 빈도를 높이고, "북한급변사태" 발생시 흡수통일 계획을 담고 있는 '충무계획'을 폐지하며, '이북5도 등에 관한 특별조치법'을 개정해 이북5도청을 '실향민지원청' 등으로 변경하는 방안이 이에 해당한다.
우리가 추진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그리고 가장 중요한 변화는 한미연합사의 작전계획과 연합훈련이다. 작전계획과 이를 연습하는 연합훈련 2부는 '반격, 점령 및 안정화 작전, 통일 달성'을 골자로 하는데, 여기에서 점령 및 안정화 작전과 무력흡수통일 달성은 제외하자는 것이다. 이는 한반도 평화공존 추진과 남북·조미 관계 개선을 위한 가장 중요한 조치에 해당한다.
우리가 이러한 방향으로 변한다면, 문턱이 높은 국가보안법과 헌법의 영토조항을 개폐를 공론화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우리가 조선의 국가성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하나둘씩 나아갈 때, '북한은 우리 영토를 불법적으로 점유하고 있는 반국가 단체'라는 대결 시대의 인식·법·제도를 고치는 데에 우리 사회의 수용성도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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