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더불어민주당 김민석 대표가 잇달아 '정치개혁'을 언급하고 있다. 교섭단체 구성 요건을 현행 20석에서 15석으로 줄이는 방안을 주로 이야기하면서, 국회의원 선거의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개선, 대통령선거의 결선투표제 도입 등도 함께 제시한다. 한동안 현안에서 밀려나 있던 정치개혁이 다시 논의되기 시작한다니, 일단 반갑다.
정치개혁 논의 재개를 만든 계기는 역설적으로 용혜인 의원의 성평등가족부장관 지명 논란이었다. 이 논란 덕분에 비례위성정당의 불의와 부당함이 새삼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다. 2020년 선거법 개혁으로 도입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해킹'한 거대 양당의 비례위성정당 꼼수가 더는 반복되어선 안 된다는 여론이 일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비례위성정당을 방지할 법률적 방안들이 주목받기도 했다.
그러나 이미 두 차례나 양당의 비례위성정당 공작에 의해 오염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과연 모종의 '비례위성정당 방지법'을 통해 제 모습을 찾을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런 방식으로 이 제도를 살리기는 힘들 것 같다. 다들 이를 어느 정도는 감지하면서도, 비례위성정당을 '반성'하고 방지법 도입을 '약속'하는 '연극'을 벌이는 것은 아닌가? 두 번이나 있었던 일이 세 번은 없을까?
그래서 나는 감히 제안한다. 진심으로 정치개혁을 바란다면, 이제는 현 선거법의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에 연연해서는 안 된다고. 아니, 더 나아가, 준연동형이라는 타협의 발단이 된 정치개혁운동의 오랜 대안, 연동형 비례대표제(이른바 '독일식 비례대표제') 자체도 과감히 재고해야 한다. 한 마디로,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대한 미련을 버려야 한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자체의 약점이 알바니아와 한국에서 드러나다
왜 '비례위성정당 방지법'으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의 '해킹'을 막기 힘들다는 것인가? 9월 11일 '내 표 그대로-선거제도 전면 개혁연대(이하 선거제도개혁연대)'가 개최한 '정치개혁을 위한 선거제도개혁의 과제와 전망' 토론회에서 발표자 중 한 사람인 정치학박사 최광은이 이를 조목조목 짚었다(토론회 자료집은 선거제도개혁연대의 홈페이지[https://erc.or.kr/]에서 볼 수 있다).
지금까지 '비례위성정당 방지법'으로 제출된 법안들로는 우선,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당선 당시의 당적에서 이탈하면 의원직이 상실되게 하는 '당적 쇼핑 금지법'이 있다. 또한 국고보조금 지급 기준을 엄격히 하여 비례위성정당 창당 가능성을 제한하는 법안이 있고, 지역구에 후보를 내는 정당은 반드시 일정 수 이상의 비례대표 후보 명부를 제출하게 하는 법안도 있다. 지난 6년간 비례위성정당을 막기 위해 나름대로 머리를 쥐어짜내 만든 법안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비례위성정당 창당을 '어렵게' 만들지언정 이를 '원천 금지'하지는 못한다. 비례위성정당이 2020년에 개정된 선거법 내용, 즉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해킹'하기 위해 나온 기상천외한 술책이었던 것처럼, 지금껏 제출된 '비례위성정당 방지법'들 역시 양대 정당이 의지만 있다면 충분히 다시 '해킹'할 수 있는 내용이다. 그럴 수 있는 근거가 애초에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원판인) 연동형 비례대표제 자체에 있다. 유권자가 지역구 후보와 정당에 동시에 한 표씩 행사하는 '1인 2표제'가 그것이다.
만약 지역구 의석을 반분하는 양대 정당이 역사적으로 형성되어 있는 조건에서 '1인 2표제'를 실시한다면, 이들 정당이 비례대표 선거에 자당의 하위파트너인 위성정당들을 진출시켜 원내 의석을 극대화하는 책략을 벌일 가능성이 열린다. 이런 위성정당들이 의석을 확보한 뒤에 양대 정당이 이들 정당을 흡수 통합하거나 연립정부 혹은 야당연합을 구성한다면, 양대 정당이 비례대표제의 전면 혹은 부분 도입에도 불구하고 양당 독점 정치를 의연히 유지할 수 있다.
이것은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본래 가진 논리적 맹점이다. 그러나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성공적으로 운영하는 독일이나 뉴질랜드에서는 이것이 단지 '논리적' 맹점일 뿐이었다. '현실'에서는 이 문제가 전혀 드러나지 않았다. 우선 5-6개 정도의 주요 정당들이 저마다 뚜렷한 이념-정책적 색깔을 갖고 있어서, 어느 당이 다른 당의 위성정당이 되는 식의 관계를 상상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설령 정당 간 협력을 추진하더라도 어디까지나 선거 뒤에 연립정부 구성 협상 같은 대등하고 투명한 방식으로 전개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사정이 달랐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뒤늦게 받아들인 한 나라에서 이 제도의 '논리적' 맹점이 '현실적' 병폐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 나라에서는 독일이나 뉴질랜드와는 달리 기득권 정당들이 '감히'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잠복한 약점을 이용하고 나섰다. 그 나라는, 한국의 양대 정당이 2020년 총선을 앞두고 비례위성정당 창당을 모의하면서 교과서로 삼은 알바니아다.
알바니아는 2000년대 초에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했다. 한국 같은 기괴한 '준'연동형이 아니라 제대로 된 연동형 비례대표제였다. 총 140석 중 100석은 지역구에서 단순다수표제로 선출했고, 각 정당이 정당투표 결과에 비례해 의석을 차지하도록 나머지 40석을 배분했다. 그러나 양대 정당인 사회당과 민주당이 새 제도 도입 이후 첫 선거에서부터 위성정당들을 활용하여 의석을 극대화하는 꼼수를 썼다. 독일에서는 잘만 운영되던 제도가 발칸반도에 와서는 만신창이가 됐다.
알바니아에서도 비례위성정당은 여론의 지탄을 받았다. 결국 2000년대 말에 선거제도를 다시 바꿨다. 한데 '비례위성정당 방지법'을 도입해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해킹'을 막는 방식이 아니었다. 아예 전혀 다른 방식의 비례대표제로 전환했다. 140석 전체를 12개 대선거구에서 정당명부 비례대표제에 따라 선출하는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채택했다.
이전 제도와 가장 다른 점 중 하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에서는 '1인 2표'이지만 권역별 비례대표제에서는 '1인 1표'라는 것이었다. 즉, 유권자가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 단 한 곳에만 표를 던지게 됐고, 이로써 비례위성정당의 가능성이 원천 차단됐다.
최광은 박사는 이러한 알바니아 사례를 들며 '비례위성정당 방지법'을 통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살리기의 무망함을 냉정히 짚었다. 준연동형도 아닌, 제대로 된 연동형 비례대표제에서도 제도 '해킹'을 막기 힘들다는 결론에 도달했다면, 한국의 현 선거제도에서는 더더욱 그럴 것이다.
이미 오염돼 버린 (준)연동형의 땜질 처방으로는 정치개혁의 목표를 이룰 수 없다. 선거에서 비례성을 보장한다는, 즉 보통-평등 선거 원칙에 부합하는 표의 등가성을 보장한다는 '타협할 수 없는' 목표를 달성하려면, 이제는 전혀 다른 개혁 방안이 필요하다.
준연동형 살리기에 집착할수록 정치개혁은 양당의 포로가 된다
더 이상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목매지 말아야 이유는 이것만이 아니다. 지난 6년 동안 정치개혁운동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살리기'에 집중됐다. 거대 양당과 비례위성정당을 성토했고, '비례위성정당 방지법'을 쥐어짜냈다. 그러면서 양당, 특히 더불어민주당에 '다음 총선에서는 제발 비례위성정당을 만들지 말 것'과 '비례위성정당 방지법' 입법을 호소했다. 호소하고 또 호소했다.
비례위성정당을 만들고 이에 참가하는 세력들도 문제이지만, 6년이라는 짧지 않은 세월을 이런 하소연으로 보낸 정치개혁운동 세력들도 문제적이기는 마찬가지다. 애초에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자체가 기괴한 타협, 안 하느니만 못했던 타협의 산물이다. 따라서 되살리고 말고 할 게 아니라 청산해야 할 대상이다. 게다가 비례위성정당의 위험이 '준'연동형만이 아니라 연동형 '자체'에 있음이 두 '정치 후진국(알바니아와 대한민국)' 사례로 드러났으니, 연동형 비례대표제조차 재검토해야 할 상황이 됐다.
그런데도 그간 진보정당들, 시민운동 단체들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살리기에만 급급했다. 그러면서 정치개혁의 관심과 상상력을 비례위성정당 성토와 '비례위성정당 방지법' 입법 호소 수준에 가두었다. 정치개혁운동 스스로, 선거에서 비례성을 보장할 길은 그렇게라도 해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살리는 것밖에 없다는 인상을 심어주었다. 그 결과, 정치개혁운동이 2020년의 '실패한' 타협을 딛고 앞으로 나아갈 의지와 동력을 잃고 말았고, 정치개혁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과 지지 또한 수그러들었다.
더 황당한 것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살리기에 집착할수록 정치개혁운동이 양당, 특히 더불어민주당의 볼모 신세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비례위성정당을 두 번째로 경험한 2024년 총선에서 이것이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국회 임기 4년 내내 진보정당들, 시민운동 단체들은 더불어민주당에게 각종 '비례위성정당 방지법'의 입법을 호소한다. 하지만 법안들 중 어느 것도 진지하게 논의되지 않은 채 다음 총선이 코앞으로 다가온다. 그러면 더불어민주당은 다시 '현실'을 들먹이며 '더 참신한 형태로' 비례위성정당을 창당한다. 이렇게 총선을 또 치르고 비례위성정당 덕분에 양당 독점 구도가 굳건히 유지된 새 국회가 열리면, 예전의 그 '비례위성정당 방지법'들이 다시 제출된다.
정치개혁운동이 방향과 목표를 새롭게 잡지 않는다면, 이 모습은 2028년에도 그대로 반복될 것이다. 내용은 복잡하지만 비례위성정당 창당을 정말로 차단할 수 있을지는 불분명한 각종 법안들이 다시금 다음 국회 과제로 넘어갈 테고, 총선 직전에 '이제는 다른 방안이 없다'며 비례위성정당 ver 3.0 기획안이 나돌 것이다. 그렇게 한국 민주주의는 (4년, 8년을 넘어) '12년'을 잃어버리는 운명을 향해 성큼 나아갈 것이다.
대안은 있다, 그러니 이제는 연동형과 이별하자
연동형이 아니어도 대안은 있다. 정치개혁운동의 목표는 '100% 비례대표제' 쟁취이지, 그 한 방식인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관철이 아니다. 한국에서 한 세대 동안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선거제도개혁 방안으로 자리 잡았던 것은 단지 오랫동안 소선거구제를 실시한 역사적 조건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지역구 선거를 구성요소로서 포함하는)가 더 친숙하게 다가올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런 역사적 경로의존성을 따진다면, 권역별 비례대표제 역시 낯설게만 느낄 이유가 없다. 소선거구가 대선거구로 바뀌기는 하지만, 어쨌든 지역마다 대표를 선출한다는 성격은 남기 때문이다.
호남권이나 영남권에서 양대 정당이 지역구 선거를 싹쓸이하는 한국 정치 특유의 병폐를 감안하면, 오히려 권역별 비례대표제야말로 가장 '한국적'인 대안일 수 있다.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그 동안 제도정치에 전혀 진입하지 못했던 호남, 영남 내의, 최소한 1/3 정도는 되는 '다른' 목소리들이 대표될 통로를 열어줄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선거제도개혁연대 토론회의 결론도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 추진으로 모아졌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보다 더 '보편적'인 비례대표제 형태이고 스웨덴, 덴마크 등이 복지국가로 나아가는 데 정치적 기반이 된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선거제도개혁 방안으로 내세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것은 이미 2010년대 초에 정치개혁운동의 선각자 노회찬 의원이 지적한 내용이기도 하다. 노회찬 의원은 이 무렵 출간한 대담집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만 정답이라고 여겨서는 안 된다고 말하며 이렇게 덧붙였다.
마치 이후 정치개혁운동이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려는 과정에서 준연동형이라는 '안 하느니만 못한' 타협과 비례위성정당 협잡에 걸려 넘어질 줄 예상하고 '플랜B'를 미리 준비한 것만 같은 발언이다. 정치개혁운동은 이제 적어도 12년 전의 노회찬 의원만큼은 과감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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