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호의 우리말 바로 알기] ‘찌질이’ 유감

필자는 어려서 콧물을 참 많이 흘렸다. 초등학교(당시에는 국민학교라 했다)에 입학하던 날 어머니께서 콧물 닦으라고 왼쪽 가슴에 달아 주시던 손수건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콧물이 줄줄 흐르던 약간 부족해 보이는 모습이 필자의 어린 시절의 이미지다. 가슴에 단 손수건이 검게 변하도록 달고 다니면서 코를 닦았다. 아버지께서 학교에 근무하시던 관계로 입학식날 어머니는 어린 필자를 그냥 혼자 학교에 보내셨다. 아무 것도 모르고 학교에 가서 아무 줄에나 서 있었는데, 저쪽 편에서 이름을 부르는 것이었다. 그냥 남자 선생님 줄에 서 있었는데, 여자 선생님이 담임이었던 것이다. 대답하고 얼른 달려가기는 했지만, 그때의 황당함은 지금도 또렷하게 남아 있다. 이런저런 이유로 해서 그때 필자에게는 ‘코찔찔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아마 당시에 달려갈 때 코가 흘렀던 모양이다. 재수하던 시절에는 570번 버스를 타고 집에 오는데, 코감기에 걸렸는지, 또 코가 줄줄 새고 있었다. 그때는 닦을 수건도 없이 대충 남들이 안 볼 때 손으로 훔쳐내곤 했는데, 미처 닦기도 전에 친구가 보고 말았다. 코가 줄줄 흐르는 코찔찔이는 그렇게 어른이 되었다. 지금도 어디에 가든지 항상 손수건은 챙긴다. 트라우마가 됐기 때문이다.

이렇게 조금 모자라는 사람이나 소속된 집단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겉도는 사람을 속되게 ‘찌질이’라고 한다. 코찔찔이와는 조금 다를 수도 있지만 코를 질질 흘리고 다니는 다 지질하게 보이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찌질이’는 어디서 시작되었을까? 우리말에서 ‘보잘것없고 변변하지 못하다’는 뜻을 한 마디로 ‘지질하다’라고 한다. 이 ‘지질하다’의 어근(지질)에 명사형 어미 ‘-이’를 붙이면 ‘지질이’기 된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러한 말의 발음을 강하게 하는 습관이 있다. 의미를 강조하기 위한 것도 있지만,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도 항상 강한 발음을 사용해 왔던 관계로 ‘찌질이’로 발음이 굳어 버린 것이다. 지질하다의 옛말은 ‘즈즐하다’였다.

우선 ‘지질하다’의 예문을 보자.

지질한 서방 믿어 보며 사는 계집처럼 가련한 자도 없을 거라.

드라마 내용은 이제 뻔한데 지질하게 계속 끌고 나간다.

굿판이 너무 지질해서 중간에 집으로 돌아왔다.

와 같이 쓴다. 위 예문을 통해서 보면 ‘보잘것없고 변변하지 못하다’는 의미 외에 ‘싫증이 날 정도로 지루하다’는 의미로 확장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언어는 늘 성장하고 발전한다. 그래서 요즘은 ‘찌질이’라는 말도 ‘교언영색(巧言令色)하는 인간’, ‘강한 자에게는 한없이 약하고 약한 자에게는 무지막지하게 무서운 인간’, ‘일을 잘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 ‘군대에서 말하는 고문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모자라는 인간’ 등의 의미를 담고 확장 중이다. 요즘은 ‘소속된 집단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겉도는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로 많이 쓰이고 있다. 여기서 의미 확장은 계속되어 오히려 ‘재능을 감춘 영재’라는 의미도 담고 있다. 예문을 보자.

영화뿐 아니라 티브이에서도 찌질이들의 반란은 쉽게 감지된다.

사이버 공간에서는 명문대생이 찌질이로 둔갑해도 이상한 시선을 받지 않는다.

우리나라 직장인 중에는 아부형 찌질이가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와 같이 다양한 의미로 쓰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과거에는 찌질이가 ‘조금 모자라는 사람’으로 쓰였지만, 지금은 오히려 ‘재능을 감춘 영재’로까지 확장된 것이다. 하기야 코찔질이가 문학박사가 되어 한국어교육의 일선에서 44년 동안 활약하고 있는 것도 후자의 경우가 아닌가 한다. 허허허

그래도 코찔찔이 시절이 그립기만 하다.

아, 옛날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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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철

대전세종충청취재본부 김규철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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