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와 먹거리 사이: 대전은 어떻게 방산도시가 되었나

[우주평화지킴이 연속기고]

국방혁신의 중심도시 대전

"국군사관학교 대전시 창설 확정을 환영합니다." 지난 7월 16일 육·해·공 통합 국군사관학교 자운대 창설이 확정되자 대전시는 즉각 환영 입장을 밝혔다. 대전시는 17일 보도자료에서 "대전이 대한민국 국방교육과 첨단과학기술이 융합되는 국방혁신의 중심도시로 도약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국방과학연구소, 한국과학기술원(KAIST), 방위사업청, 안산 국방국가산업단지와 연계한 국방혁신 거점을 조성하고, 정부의 국방혁신 정책과 연계한 신규 국가사업도 적극 발굴 하겠다"는 전망을 제시했다.

2022년 방위사업청이 대전에 이전한다고 했을 때만큼은 아니지만, 대전 도심 곳곳에는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들이 게시한 환영 현수막이 눈에 띄었다. 직접 만나본 시민들은 얼떨떨해하면서도 어쨌거나 사관학교가 대전에 온다면 지역경제에 도움이 될거라 기대하는 반응이었다. 어느덧 대전은 '과학의 도시', '빵의 도시', '노잼 도시'에서 '방산(방위산업)의 도시', '국방혁신의 도시'로 전환되었다. 오랫동안 과학의 도시라 불리던 대전은 어떻게 방위산업의 중심도시가 되어갔을까? 방위산업 의존적인 도시는 정말 안녕한가?

과학의 도시 대전의 두 얼굴

방위산업과 대전의 첫 연결고리는 국방과학연구소이다. 국방과학연구소는 1970년에 "자주국방의 초석"이라는 기치 아래 창설되었다. 대전에는 유도탄, 즉 미사일 개발을 위한 대전기계창이 설치되었다. 당시에는 실제 업무를 숨기기 위해 '국방과학연구소'라는 이름 대신 '기계창'이라는 명칭을 썼다.

1980년대 <똘이 장군>을 보던 어린이들 눈에도 자주국방은 국가에 필수불가결한 요소였다. 국가 안보를 위해 국방기술을 발전시키는 것은 애국의 길이었다. 인근의 논산과 계룡이 군이 주둔하는 '군사도시'라는 이미지가 있는 반면, 대전은 국방'과학'의 도시라는 정체성이 더욱 강했다. 1983년 완전 이전 후 국방과학연구소는 국산 무기 개발을 위한 연구, 특히 우리나라 미사일 기술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전력을 다했다. 대부분의 연구소가 그렇듯 시민들은 내부에서 어떤 연구를 하는지 알 수 없었기에 그저 국가발전에 이바지하기에 직원과 가족 복지가 좋은 직장이라고 생각했다.

우주기술 및 발사체 기술개발은 1989년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의 설립으로 한단계 도약한다. <2020 우주의 원더키디>가 우리의 마음을 웅장하게 만들었지만, 사실 '우주' 기술은 일반인들에게는 머나먼 기술이었다. 2008년 이소연 박사가 우리나라 최초로 우주선을 타고 우주에서 임무를 수행하고 돌아왔고 2009년 나로호를 발사하지만, 2022년 누리호 발사가 성공할 때까지 우주기술은 여전히 실체가 불분명하고 돈만 먹는, 실용성과는 거리가 먼 기술이었다. 누리호의 성공 이후 잇따른 발사체의 성공은 과학자들에게는 큰 성취를, 많은 국민들에게는 우리가 해냈다는 자부심을 안겼다. 그렇다면 우주강국의 발판이 된 이 우주발사체 기술은 어디로 연결되고 있는가?

우주기술은 어떻게 군사기술과 연결되었나

우주발사체 기술은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는 기술에만 머물지 않는다. 역사적으로 볼 때 우주발사체 기술, 즉 로켓기술은 초기부터 군사적 목적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발전해왔으며 우주개발의 기반이 되었다.

1944년 독일이 세계 최초로 탄도미사일 V2 로켓 발사에 성공한 이후, 로켓 기술이 군사기술과 우주개발의 기반이 되면서 냉전 시기 우주는 정찰위성과 통신망을 둘러싼 경쟁의 공간이 되었다. 우주 공간의 평화적 이용을 명시한 우주조약이 1967년 발효되었지만 우주조약은 대량살상무기의 우주배치를 금지할 뿐 정찰·통신·항법과 같은 군사적 활용까지 제한한 것은 아니었기에 우주 기반 군사기술은 날로 발전을 거듭했다. 특히 걸프전은 위성 기반 정보·통신 기술이 전쟁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보여준 계기가 되었다. 이후 위성 기술은 일상에서는 길찾기 서비스와 통신망으로 자리잡는 동시에 정밀유도무기와 드론, 군 통신 및 정찰 체계의 기반이 되었다. 이는 우리에게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하는 위성망 또한 전쟁에서는 군 통신망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스타링크가 비행기의 기내 와이파이로도 활용되는 한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군과 민간의 통신망을 유지하는 인프라로 활약한 것이 그 사례이다. 따라서 위성기술과 그 위성을 쏘아 올리는 발사체기술을 포괄하는 우주기술이 우리에게 어떠한 편리를 가져다주더라도 군사적 활용 가능성을 동시에 갖는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국방과학에서 방산경제로

다시 대전으로 돌아와 보자. 2022년 방위사업청의 대전 이전 결정은 새로운 전환점이 되었다. 과천에 있던 방위사업청이 대전으로 이전한다고 했을 때 대전시의원들은 일제히 환영하며 기자회견을 개최했고, 도시 곳곳에 방위사업청 이전 환영 현수막이 걸렸다.

방위사업청은 대전 정부청사 옆 유휴부지에 건립하기로 하고, 건물이 완성될 때까지 임시로 옛 마사회 건물에 입주했다. 그런데 그 정부청사 '유휴부지'는 그냥 비어있는 부지가 아니었다. 15년 동안 도심 녹지 역할을 하던 축구장 6개 부지 크기의 공원은 순식간에 빈 부지가 되어 파헤쳐졌다. 무성하던 녹지가 소거되었고 1만 3,000여 주의 나무들 중 갑천생태공원에 이식할 나무 2,000주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벌목되었다.

방위사업청 이전과 맞물려 대전은 방산혁신클러스터에 도전했다. 방산혁신클러스터는 방위사업청이 지자체와 함께 지역의 산·학·연·군 역량을 결합하여 지역 중심의 방위산업을 육성하는 사업이다. 과거 국방과학연구소를 '기계창'으로 숨겨야 했던 군사기술은 더 이상 숨기거나 감출 필요가 없는 영역이 되었다. 이제 군사기술은 은폐의 대상에서 지역발전의 자원으로, 방위산업은 '먹거리 산업'으로 호명되기 시작했다. 빵도 과학도 아닌 무기산업이 미래를 책임지는 산업으로 공식적인 자리를 얻게 된 것이다.

방산클러스터를 시작한 주체는 민선 7기 허태정 시장이었고, 이를 민선 8기 이장우 시장이 이어받았다. 정권이 바뀌어도 방위산업에 대한 의존도는 줄어들지 않았다. 방산혁신클러스터 사업, 안산첨단국방과학도시, 방위사업청을 주축으로 대전은 국방'과학'의 도시에서 방산'경제'도시로 탈바꿈하였다.

무기가 먹거리가 된 도시

대전방산혁신클러스터에 대해 좀 더 살펴보겠다. 대전방산혁신클러스터 홈페이지에 따르면 산업발전 생태계 조성, 국내 방위산업 국산화의 질적 성장, 지역산업과의 연계 성장을 내세우고 있다(자주국방은 아예 드러나지 않는다). 총사업비 490억 원에 136개의 기업이 함께하고 있다. 이들 기업을 하나씩 살펴보면 무기 개발과 직접 관련이 있다기보다는 드론 산업과 군수 기반 산업 육성이 대부분이다. 즉, 민간 분야의 산업이라도 방위산업과 연결을 하면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구조인 것이다.

그러다 보니 애초에 대전시에서 표방한 대로 방위산업은 정말로 '돈이 된다'는 인식이 자리 잡기 시작하면서, 방위산업을 '무기'와 '살상'과 연결짓는 감각은 점점 멀어지게 되었다. 이제 대전에서 '방위산업-무기-살상'의 도식보다는 '방위산업-일자리-경제-먹거리'가 더 설득력을 가진다. 일반 시민이 도시가 얼마나 방산에 의존하고 있는지 체감하지 못하는 가운데, 도시의 경제는 서서히 방위산업에 의존하게 된다.

대전은 한화의 도시인가

대전의 방위산업을 이야기하자면 한화그룹(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없다. 얼마 전 필자의 막내가 문득 물었다. "대전은 한화의 도시인가요?"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대전에는 한화 이글스가 있고 한화가 대전에 좋은 일을 많이 하는 것 같다고 답했다. 어린아이의 눈에도 한화가 대전이라는 도시의 중요한 일부로 보일 만큼, 이 기업은 지역 곳곳에 깊이 자리 잡고 있다.

1952년 설립된 한화는 1978년 방위산업체로 지정되었고 1987년 대전에 본격적으로 터를 잡았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사업 분야를 보면 시큐리티 솔루션, 항공기 엔진 및 에너지 장비 산업, 반도체 부품 및 IT 모듈 사업, 반도체 장비 사업, 방산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계열사로는 한화생명보험, ㈜한화갤러리아, ㈜한화이글스, 에코이앤오 등 여러 기업을 거느리고 있다. 대부분은 방위산업과 직접적 관련이 없는 기업체들로, 이들은 한화의 무기공장 이미지를 부드럽게 뭉뚱그려 준다.

한화 이글스는 지역의 굳건하고 사랑받는 야구팀이다. 갤러리아 백화점은 신세계백화점이 들어서기 전까지 대전의 대표적인 백화점이었다. 대전의 하수처리장 기술은 한화의 기술을 활용한다. 한화는 대전 시민을 위한 불꽃놀이를 선보이기도 했다. 수천, 수만의 시민들이 갑천으로 몰려들었다. 한화가 대전의 자랑인지는 모르겠지만 여러모로 고마운 기업, 친숙한 기업으로 자리 잡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실제로 자신들을 이러한 기업으로 표방하고,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목적은 사람, 지구, 미래에 있습니다"라고 소개한다. "지난 30년간 대한민국의 우주기술 성장에 함께했다"며 차세대 발사체 기술 개발을 위해 전력을 다할 것을 약속하며 "가장 시급한 문제인 기후변화를 감지"하는 데 이미 쓰이고 있고,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 목표 달성"과 "세계 메탄 누출 현황 지도" 제작에도 활용될 것이라고 자신한다. 여기에는 기후위기 해결을 위한 위성을 발사하기 위해 배출되는 이산화탄소와 각종 오염물질, 발사체를 쏘아 올릴 때 성층권에 뿌려지는 각종 산화물은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

우주산업의 핵심으로 소개된 대전의 R&D공장에서는 지난 6월 1일 폭발사고가 발생해 5명이 사망하고 2명이 부상당했다. 해당 공장은 2018년과 2019년에도 폭발사고가 있었던 곳으로 2019년 사고 이후 특별감독에서는 안전조치 위반사항 114건이 적발되었다. 이 사고는 어쩌다 우연히 발생한 일회성 사고가 아니다. 폭발의 원인이 되었던 고체연료 추진체는 공기가 없는 우주 공간에서도 로켓을 추진하기 위해 사용되는 기술로 강력한 추력을 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일단 점화되면 연소를 멈추기 어렵다는 구조적 한계가 있다. 우주를 향하는 첨단기술이라는 이름 뒤에 환경오염물질 배출과 막대한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노동 현장이 있다.

돈이 되는 우주, 군사화되는 우주

이런 위험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우주기술은 새로운 먹거리 산업으로 주목받고 있다. 국가 중심으로 추진되던 우주 개발은 이제 '뉴스페이스(New Space)' 시대를 맞아 민간 기업 중심으로 확대되고 있다. 민간 기업은 국가의 지원을 바탕으로 기술을 개발하고, 위성 통신망과 우주 인프라를 확장하고, 이 기술은 다시 국가 안보와 군사 체계의 기반으로 연결된다.

한화 역시 우주산업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내세우며 한국형 우주기업을 꿈꾸고 있다. 꿈과 희망의 불꽃축제를 주최하는 친근한 이미지 뒤에는 강력한 화약과 추진체 개발이 자리한다. 기업의 욕망에 국가와 지자체가 결합하여 경제발전의 동력이라는 당위성을 공고히 한다. 불꽃축제를 즐기는 시민을 비난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불꽃을 쏘아 올리는 기술과 산업을 마냥 꿈과 희망의 상징으로만 바라볼 수 있을까? 지자체가 나서서 무기산업을 당당하게 우리 도시의 먹거리 산업이라고 자랑해도 되는걸까? 우리는 우주를 돈벌이가 되는 공간이자 군사화되는 공간으로 내버려둬도 되는걸까?

방산도시에서 숨 쉬며 살아가기

어느새 우리는 무기를 자연스럽게 '먹거리'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군사기술과 방위산업은 과거에는 '자주국방'이라는 이유로, 이제는 '경제발전'을 이유로 감히 의심하기 어려운 성역이 되었다. 그렇기에 도시가 의존하는 기술과 산업이 궁극적으로 누구를 위한 것이고 무엇을 만들어내고 어디를 향하는지 묻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이미 도심의 녹지는 파헤쳐졌고 노동자의 희생은 되풀이되고있다. 파괴와 희생을 담보로 한 산업을 과연 지속 가능한 먹거리라 할 수 있을까. 한 도시의 미래가 특정 산업을 무비판적으로 밀어주는 데 있을 리 없다. 우리가 사는 터전의 미래는 우리가 어떤 가치를 지향하는지에 달려 있다. 단순한 찬반, 선악의 구분을 넘어 우리는 어떤 공동체로 살고 싶고, 다음 세대에 어떤 터전을 물려줄 것인지 함께 상상해야 한다. 무기가 아닌 생명을, 파괴가 아닌 평화를 위한 질문을 끊임없이 던질 때 비로소 우리는 거대한 군사 자본주의를 넘어 대전의 다른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다.

오현화 : 가톨릭기후행동 활동가로 대전의 한 작은도서관의 관장으로 일하고 있다. 우주군사화와로켓발사를반대하는사람들에서 함께 활동하고 있으며, 이 글은 우주군사화와로켓발사를반대하는사람들에서 기획한 연속 집담회 중 세 번째 발제 (6월 16일)와 2026년 대전기후정의학교 첫 번째 발제 (7월 2일)을 바탕으로 작성되었다.

이 글은 시민언론민들레, 생태적지혜연구소에도 공동게재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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