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141년, 열여섯 살 소년이 중국 한나라의 옥좌에 앉았다. 이름은 유철(劉徹), 훗날 무제(武帝, 기원전 156~기원전 87)라 불리는 사내다. 그는 54년을 다스렸다. 웬만한 왕조 하나가 통째로 들어설 시간이다. 그리고 그 54년 동안 한나라는 변방의 농업국에서 동아시아 최강의 제국으로 탈바꿈했다. 문제는 그 변신에 들어간 청구서를 누가 냈느냐는 것이다.
흉노와의 전쟁, 그리고 장건의 고생길
무제 이전까지 한나라는 북방 유목민족 흉노(匈奴)에게 조공을 바치며 평화를 사는 처지였다. 무제는 이 굴욕적인 관계를 뒤엎기로 했다. 장건(張騫, ?~기원전 114)이라는 사신을 서역으로 보내 흉노를 견제할 동맹을 찾게 했는데, 이 사람이 가는 길에 흉노에게 붙잡혀 십 년 넘게 억류되었다가 탈출해 결국 임무를 완수한다. 요즘 회사로 치면 해외출장 보냈더니 십 년째 연락 두절이었다가 어느 날 갑자기 계약서를 들고 나타난 셈이다. 이 장건의 여정 덕분에 훗날 실크로드라 불리는 교역로가 열렸으니, 결과만 보면 대성공이다. 다만 그 사이 전쟁으로 국고는 바닥나고 백성은 병역과 세금에 시달렸다.
유교의 국교화, 사상의 통일
무제는 동중서(董仲舒, 기원전 179~기원전 104)의 건의를 받아들여 유교를 국가의 유일한 통치이념으로 삼았다. 이른바 '백가를 몰아내고 오직 유교만 받든다(파출백가 독존유술, 罷黜百家 獨尊儒術)'는 정책이다. 태학(太學)을 세워 관료를 양성하는 시스템도 이때 만들어졌다. 겉보기엔 학문진흥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사상검열에 가깝다. 한 가지 생각만 옳다고 못 박아 놓으면 다스리기는 참 편해진다. 문제는 그 편리함이 결국 다른 목소리를 낼 자유를 갈아 넣어 만든 것이라는 점이다.
사마천의 비극, 권력의 그늘
무제시절 최대의 비극 하나를 꼽자면 사마천(司馬遷, 기원전 145~기원전 86)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흉노에게 항복한 장수 이릉을 변호했다는 이유로 무제의 노여움을 사, 사마천은 궁형이라는 치욕적인 형벌을 받는다. 그럼에도 그는 붓을 꺾지 않고 역사서 『사기(史記)』를 완성했다. 권력자는 순간의 화를 못 이겨 신하 하나를 짓밟았을 뿐이지만, 그 신하는 그 권력자의 이름을 포함해 수천 년 중국사를 통째로 기록해 후대에 넘겼다. 누가 진짜로 역사의 최후 승자였는지는 지금 우리가 판단할 몫이다.
무고지화, 밀고가 낳은 광풍
말년의 무제는 병을 얻자 누군가 저주를 걸었다는 의심에 사로잡힌다. 이른바 무고지화(巫蠱之禍)라는 사건인데, 궁중 곳곳에서 저주 인형이 발견되었다는 밀고가 잇따르며 대대적인 숙청이 벌어졌다. 심지어 자신의 친아들인 태자 유거(劉據, 기원전 128~기원전 91)마저 반역자로 몰려 죽음에 이른다. 서로가 서로를 밀고하고, 의심이 의심을 낳고, 결국 아무 죄 없는 사람들까지 줄줄이 엮여 들어가는 광경은 시대와 장소를 초월해 어딘가 낯익다. 권력이 두려움에 사로잡히면 그 공포는 반드시 아래로, 더 아래로 전염된다.
윤대(輪臺)의 반성문, 보기 드문 한 장
그런데 무제에게는 다른 폭군들과 결정적으로 다른 장면이 하나 있다. 죽기 2년 전인 기원전 89년, 그는 '윤대죄기조(輪臺罪己詔)'라는 반성문인 조서를 내려 스스로의 실정을 인정한다. 끝없는 전쟁과 무리한 토목공사로 백성을 지치게 했다고, 이제는 백성을 쉬게 하고 생산에 힘쓰겠다고 공개적으로 반성한 것이다. 절대 권력을 오십 년 넘게 휘두른 자가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는 일은 역사를 통틀어도 흔치 않다. 대개의 권력자는 끝까지 자신이 옳았다고 우기다가 무대에서 끌려 내려온다.
한국에 남기는 질문
지금 한국을 돌아보면 흥미로운 지점이 여럿 겹친다. 밀고와 의심이 서로를 잡아먹는 무고지화의 풍경은, 정적을 없애기 위해 없는 죄를 뒤집어씌우던 어느 시절의 수법과 놀랍도록 닮았다. 사상의 통일을 앞세워 다른 목소리를 억누르는 방식도, 계엄이라는 이름으로 국민을 겁박하려 했던 윤석열의 내란사건과 무관하지 않다. 그리고 무엇보다, 윤대(輪臺)의 반성문이 남기는 질문은 무겁다. 절대 권력을 쥐었던 자조차 죽기 전에는 잘못을 인정했는데, 대한민국에서, 이승만부터 윤석열까지, 권력을 쥐었던 이들 중 몇이나 순순히 잘못을 인정하고 국민에게 사죄했던가. 대개는 법정에 끌려가서도 오히려 목소리를 높인다.
역사의 법정에는 공소시효가 없다. 2100년 전 황제의 반성문 한 장이 지금 우리에게 묻는다. 윤석열을 포함해 권력을 쥐었던 자, 당신은 정녕 반성할 용기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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