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에 너무 일찍 다녀간 진보주의자, 한국 사회민주주의의 선구자.
'당산(堂山) 김철(1926~1994)'을 설명하는 말들이다.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 노동자의 정치 참여 보장, 복수노조 인정, 고위공직자 재산등록제 등 오늘날 한국 사회의 당연한 상식이 된 이 정책들은 그가 수십년전 외롭게 외쳤던 진보적 비전들이다. 그는 1971년 대통령 선거 때 통일사회당 대통령 후보로서 '남북 중립화 통일 이룩' '남북한 UN 동시가입' 등을 주장하는 성명을 발표해 반공법 위반죄로 구속되는 등 고초를 겪기도 했다.
20대 젊은 시절에 일찌감치 사민주의자로 "평생 개인 재산을 갖지 않겠다, 한 평의 부동산도 소유하지 않겠다"라고 선언하고 평생 이를 실천했다는 사실도 재산 문제로 낙마하는 정치인들이 일상이 된 오늘날 놀라울 따름이다.
그는 현실 정치의 이해타산에 매몰되지 않고, 자신이 믿는 '역사적 진실'을 온몸으로 살아내고자 평생을 바친 보기 드문 정치가이자 사상가였다. 그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출간된 <내가 본 김철> (이만열·홍을표 외 지음, 해냄 펴냄)은 그동안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인간 김철'의 입체적인 면모를 동시대인들의 생생한 증언으로 복원해 낸 평전이자 문집이다.
거친 현대사의 파고 속에서 피어난 철저한 신념
1926년 함경북도 경흥에서 태어난 김철은 식민지와 분단의 비극을 겪으며 확고한 민족주의자로 성장했다. 이후 일본 도쿄대학에서 역사를 수학하고 <민주신문> 편집국장, <요미우리신문> 서울특파원을 거치며 냉전과 내전의 실상을 목도하면서 사회민주주의자가 되었다. 1957년 민주혁신당 대변인으로 정계에 투신한 이래, 서상일·김성숙 등과 함께 통일사회당을 창당하고 1971년 제7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는 등 한국 혁신정당 운동의 상징적인 인물이었다.
그의 삶은 한국 민주화 투쟁의 역사이기도 했다. 박정희 정권의 유신체제에 맞서 3선 개헌 반대 투쟁을 이끌었고, 1974년 '민주회복국민선언'을 주도하다가 긴급조치 9호 및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투옥되는 등 고초를 겪었다. 그는 1980년대 신군부의 탄압 속에서도 사회당과 사회민주당의 위원장을 맡으며 혁신주의자로서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또 우리나라 최초로 통일사회당을 사회주의인터내셔널(SI) 정회원으로 승격시키며 한국 사민주의 운동의 위상을 국제적으로 드높인 선구자였다.
정치가, 동지, 그리고 할아버지로서의 삶
책은 총 3부의 유기적인 구성을 통해 김철이라는 인물을 다각도로 조명한다. 제1부는 김철과 평소 교류한 지도급 인사들의 김철에 대한 평가와 소회를 담았다. 이만열 전 국사편찬위원장, 서영훈 전 적십자 총재, 강원용 전 크리스찬아카데미 이사장, 이종찬 광복회 회장 등 김철이 삶에 있어서 중요한 고비마다 고민을 함께했던 이들의 기억 속에서 김철의 삶과 그의 지향을 그려본다.
제2부는 홍을표 전 가천대 교수, 신필균 전 청와대 시민사회비서관, 박인목 전 통일사회당 중앙상임위원회 의장 등 군사독재 시대, 척박한 정치환경에서도 오로지 사회민주주의의 이념하에 통일사회당, 사회당, 사회민주당 활동을 함께한 동지들의 글을 통해 정치인 김철과 한국 혁신정당이 겪은 고난의 역사를 추체험할 수 있다.
제3부에서는 김한길 전 민주당 대표(차남), 김남규 전 (주)일진 회장(동생), 김날해 SBS Biz 산업부장(장손녀) 등 그와 가장 가까이에서 생활한 가족과 친지의 증언을 통해 김철이 일상에서도 얼마나 투철한 사회주의자로 살았는지를 살펴본다. 특히 가족과 친지의 회고는 다른 기록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엿볼 수 있다.
내가 대학생일 때 쓴 글이 문제가 돼서 기관에 잡혀갔다가 돌아와서 집에 누워 있는데 아버지가 한번 둘러보고 가셨다. 그래도 나는 아버지가 무언가 한마디쯤은 나를 칭찬해 주실 줄 알았다.
"더 많이 고생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게 전부였다. 나는 화가 나서 누워 있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버렸다. 나는 얼마 후에, 이 땅에서는 가망이 없다는 주위 사람들의 말을 좇아 미국으로 도망갔는데, 이번에는 아우(삼남 김누리 중앙대 교수)의 편지가 나를 못살게 굴었다.
'……아버지를 보고 있으면 말이야, 내가 당신의 아들이라는 생각이 들질 않아. 위인전을 읽을 때처럼 거리감이 느껴지는 거야. 너무나 성실하게 자기 갈 길을 가는 한 거인을, 결코 좌절할 줄 모르는 한 영웅을 아버지에게서 보는 거야.'
문민정부가 출범하던 날 아버지는 텔레비전을 보면서 우셨다. 나는 이제 아버지를 미워했던 마음의 한 열 배쯤 내 아버지가 자랑스럽다. 내 아버지가 자랑스러운 마음의 한 열 배쯤 지난날들이 부끄럽다. (김한길, '아버지를 보내고 만난 아버지' 중)
할아버지는 유독 작은 생명에 유별나셨다. 방구석에 거미가 기어 나오면 나는 무서워서 손부터 올라갔는데, 할아버지는 내 손을 막으며 "거미가 무슨 죄가 있느냐" 하셨다. 내가 자라 어른이 되고, 할아버지가 평생을 바쳐 공부하고 꿈꿨던 '사회민주주의'라는 글자를 들여다보니 조금은 알 것도 같다. 할아버지가 지키고 싶었던 것은 단순히 손님 앞의 체면이나 거미의 생명이 아니었을 거다. 아무리 가난해도 잃지 말아야 할 최소한의 존엄,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낮고 약한 것들도 함부로 대하지 않는 마음. 그것이 할아버지가 책 속에서 찾고, 현실에서 실천하려 했던 민주주의의 진짜 얼굴이었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김날해, '거미 한 마리 죽이지 못하던 나의 할아버지' 중)
과거의 실패가 아닌, 오늘날 우리의 삶이 된 유산
김철이 평생을 바쳐 추구했던 민주사회주의 운동은 당대의 현실 정치 속에서는 '거듭된 실패'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홍을표 교수는 "그의 희생과 실패의 기억은 지나가 버린 과거가 아니라 오늘 우리의 삶의 바탕에 녹아있다"고 평했다.
민주주의의 지체와 위협, 극심한 경제적 양극화, 국제 정세의 급격한 변화로 인해 고조되는 한반도의 긴장과 갈등 등 오늘날 한국 사회가 마주한 수많은 난제를 해결할 지혜를 찾고 싶다면, 또 한 인간이 자신의 신념을 어떻게 삶으로 증명해 낼 수 있는지 그 숭고한 궤적을 확인하고 싶다면 일독을 권한다.
"어떤 사람들은 나의 인생관이 너무나 단순하다 할지 모른다. 사회의 발전에 이바지하려는 큰 포부를 펼 수 있기 위하여 무슨 짓을 하여서라도 권세나 재부를 잡는 최단거리를 달려야 한다는 인생관도 있다. 그러나 나는 부정한 수단으로 고매한 목적을 이룩한다는 것은 믿지 않는다. 부정한 수단에는 고매한 목적까지를 부식시키기에 충분한 그 자체의 병리가 숨겨져 있지 않은가." ('김철 어록' 중)
오는 4일(토) 오후 2시 30분 노무현재단에서 출판기념회가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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