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어른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가끔은 처음 듣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다. 엄청 잘 살았는데, 상업을 하던 어른이 먼저 돌아가시니 그 아들이 상업을 이어받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공부를 끝까지 하지도 못했다. 그래서 집안은 풍비박산되고 남은 식솔들은 이리저리 흩어지는 신세가 되었다. 큰돈을 벌던 어른이 급사하게 되면 자손들은 우왕좌왕하게 된다. 그리고 재산 싸움을 시작하고 힘 있는 자(보통은 집안의 장손이 된다)가 지차들을 밖으로 내치는 것이 예사였다. 그나마 공부를 마무리한 사람은 면서기라도 할 수 있었지만, 중도에 포기한 사람은 오도가도 못하고 그냥 세상의 흐름에 따라 휩쓸려 다니게 된다. 술과 마약에 빠지기도 하고 나약한 모습으로 세상을 비관하기도 한다. 이런 사람들을 보고 어른들은 ‘반거충이’라고 불렀다.
반거충이는 ‘배우던 것을 중도에 그만두어 다 이루지 못한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형태를 분석하면 ‘半 + 去蟲이’로 볼 수 있다. 즉 벌레가 되지 못하고-성장하지 못하고- 중간에 탈피를 멈춘 것을 이르는 말이 아닌가 한다. 한자어로 탈거(脫去)라고 하면 ‘껍데기나 껍질을 벗기거나 벗음, 어떤 한계나 구속 따위에서 벗어나다’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거충’이란 탈거를 끝낸 벌레를 이르는 말이고, ‘반거충이’는 탈거를 다하지 못하고 멈춘 칠삭둥이 같은 인물이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학문을 그만두어 다 이루지 못한 상태를 이르게 된 것이다. 반거충이의 예문을 보자.
여기서 반거충이로 늙어 죽기 싫으면 학교로 돌아가서 학업을 마쳐라.
농사꾼도 아니고 한량도 아닌 반거충이 건달로 지내는 태호의 집 안은 고즈넉했다.
와 같이 쓴다.
반거충이는 ‘반거들충이’라고도 한다. 반거충이에 비해 반거들충이가 조금 더 많이 쓰인 단어다. 의미는 동일하다. 예전에는 많이 쓰던 말인데, 요즘은 고학력 시대가 되어 중도에 포기하는 사람이 별로 없고, 있어도 검정고시 등을 통해 졸업장을 대신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있어서 ‘반거들충이’는 거의 볼 수 없다.
‘반거들충이’도 ‘배우던 것을 중도에 그만두어 다 이루지 못한 사람’을 이르는 말로 ‘반거충이’와 같은 말이다. 예문을 보자.
흰 두루마기를 입은 사람이 바로 두 차례나 초시에 낙방하고 나주에 건너다니며 기방 출입에 반거들충이 생활을 한다는 박 초시의 큰아들이 분명한 듯싶었다. (문순태, <타오르는 강>)
태호가 중학교를 중퇴하고 고향에 돌아오자 마을 사람들을 그에게 반거들충이라는 말을 자주 하곤 했다.
와 같이 쓴다. 위에서 보는 바와 같이 반거충이와 반거들충이는 같은 의미로 사용하는 단어다.
이렇게 반거충이들이 하는 일 없이 ‘반둥건둥’하는 것을 본다. ‘반둥건둥’은 ‘하던 일을 다 끝내지 못하고 중도에 성의 없이 그만두는 모양’을 이르는 말이다. 동사로는 ‘반둥건둥하다’이다. ‘하던 일을 끝내지 못하고 중도에서 그만두다’라는 뜻이다. 뒤집어서 ‘건둥반둥’이라고도 한다. 그런가 하면 ‘반둥반둥’도 있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빤빤스럽게 놀기만 하는 모양’을 이르는 말이다. 그러므로 ‘반둥건둥’이나 ‘건둥반둥’이나 ‘반둥반둥’은 일을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하고 놀기만 하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예문으로는
그는 하던 공부를 반둥건둥 끝내고 취직해 버렸다.
그러면 젊은 사람이 괜히 싱숭생숭해져서 그런 대공을 반둥건둥해 버릴 것 아니오? (현진건, <무영탑>)
와 같이 쓴다.
재미있는 우리말이 많은데, 젊은이들은 우리말보다는 외국어를 많이 사용하는 것을 본다. 세계화 시대라고 하지만 아름다운 우리말을 보존하고 계승하는 것이 참으로 보람 있는 일인데, 관심이 없는 것 같아서 슬프다.
오호 애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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