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이 사과했다면…" 아들 묘비 부여잡은 오월 어머니의 눈물

46주년 5·18 하루 앞둔 민주묘지…희생자 유족·시민들 추모 발길 이어져

5·18민주화운동 46주년을 하루 앞둔 17일 30도를 웃도는 무더위와 따가운 햇살이 내리쬐는 광주 국립5·18민주묘지는 살아남은 자들의 슬픔과 그리움으로 가득 찼다.

희생자들의 묘비 앞에는 하얀 국화와 편지 등이 놓였고 46년의 세월에도 아물지 않은 상처를 보듬는 유가족과 추모객들의 발길이 하루 종일 이어졌다.

이날 묘역에서는 1980년 5월 스무 살 꽃다운 나이에 계엄군 총탄에 스러져간 이정연 열사의 묘에서 울려퍼진 울음소리가 주위를 숙연하게 했다.

▲17일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이정연 열사의 어머니 구선악 여사(86)가 아들의 묘비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다.2026.05.17ⓒ프레시안(김보현)

전날 경기도 남양주에서 내려온 열사의 어머니 구선악 여사(86)는 아들의 묘비 앞에서 사진을 매만지며 오열했다. 구 여사는 "전두환이 우리 아들 묘에 와서 사과를 했으면 좀 덜 아플란지도 몰라. 손자가 사과 했지만 그게 무슨 소용이 있어"라고 토로했다.

구 여사에게 1980년 5월은 아직 끝나지 않은 악몽이다. 전남대 사범대 상업교육학과 2학년이던 아들은 학사장교를 마치고 1980년 5월 복학했다.

이정연 열사는 그해 5월 25일 "엄마 아버지는 지금까지 그 잡초를 무서워서 방치했지. 그 잡초를 누가 뽑을까? 잡초를 뽑아야 우리나라가 살아"라며 "우리가 하나라도 죽음으로써 그 잡초를 뽑을 것이오"라는 말만 남기고 집을 나섰다. 그 후 옛 전남도청을 사수하다 이마에 총을 맞고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다.

구 여사는 시신이 세 구씩 포개져 있던 널을 경찰이 열어 보이며 "아들이 맞냐"고 확인하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아들을 잃은 슬픔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구 여사는 "오월 항쟁이 한참 지난 어느 새벽 경찰들이 들이닥쳐 구 여사를 장성경찰서로 끌고 갔다"며 "내가 뭘 잘못했는지 영문도 모른 채 15일을 살다가 나왔다. 유족들이 모여서 데모한다고, 행사 못 하게 하려고 그런 거지. 전두환, 노태우 때 유족들이 얼마나 힘들고 고생하고 살았는지 역사에 길이 남아야 하는데 아무도 모른다"고 하소연 했다.

▲ 17일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서 박관현 열사의 누나 박행순씨(77)가 동생의 묘역을 찾아 이야기하고 있다.2026.05.17ⓒ연합뉴스

1980년 당시 전남대 총학생회장이었던 박관현 열사의 누나 박행순씨(77)도 말없이 동생의 묘비 앞에 마른 건어물을 올렸다. 진상규명을 외치다 옥중에서 숨진 동생의 환한 웃음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박 씨는 "동생은 늘 웃고 다니던 사람이었다. 시위를 막는 경찰에게조차 웃으며 이야기할 정도로 따뜻했다"며 "5·18기록관 사진에도 그 웃는 모습이 남아있는데, 아직도 그 모습이 가장 먼저 생각난다"고 추억했다.

이날 묘역에는 전국 각지에서 찾아온 추모객들의 발길도 끊임없이 이어졌다. 이들은 오월풍물단의 풍물놀이를 즐기기도 하고 5·18희생자 추모제례의 음식을 나누며 오월영령을 기렸다.

정치권에서는 우원식 국회의장, 권노갑 고문(96)을 비롯한 김대중 재단 회원들, 유승민 전 국회의원이 찾아 참배했다.

각종 대학생단체, 교원단체, 한국 기독교장로회 광주노회 등 종교계의 발걸음도 이어졌다. 고려대, 서울대 등에서 공부하고 있는 독일 튀빙겐 대학 교환학생 15명은 3년 연속 묘지를 찾아 5월 영령들을 기렸고, 전북교대 학생 등 젊은 세대들도 역사의 현장을 찾아 희생의 의미를 되새겼다.

▲제46주년 5·18을 하루 앞둔 17일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를 찾은 참배객들.2026.05.17ⓒ프레시안(김보현)

김보현

광주전남취재본부 김보현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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