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짓는 퇴직 교수는 오늘도 몹시 바쁘다. 농사짓기가 힘들어서 밭에는 유실수로 심었다. 그리고 곧 고추, 상추, 청경채, 방울토마토 등을 심을 자리도 만들어야 한다. 흔히 로타리치고, 멀칭한다고 하는데 그런 말도 어렵고, 더욱 어려운 것은 언제 심어야 제대로 잘 자랄 수 있을까 하는 시기를 잘 모른다는 것이다. 주변 농부들 눈치 보면서 농사를 배우고 있다. 비가 한두 번 더 와 주었으면 하는 소망이 있는데, 일기예보를 보니 한동안은 비가 온다는 소식이 없다. 앞으로는 농사짓지 않으면 토지를 몰수한다(?)는 소문도 있는데, 사실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금산에 살 때 농사짓던 작은 밭이 있는데, 양쪽을 다 보살피기가 힘들다. 그렇다고 금산에 있는 밭을 살 사람도 없다. 조만간 금산에 가서 제초제 뿌리고, 몇 년 전에 심은 나무들 가지치기하고 와야겠다. 밭일을 하는데 전화가 왔다. 못 받을 때가 많지만 오늘따라 정겨운 친구(외국인 제자)의 전화라 한참 수다를 떨었다. 그리고 전화를 끊는데, 이 친구가
“교수님, 들어가세요.”
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그 순간 참 많은 생각이 스쳐갔다. 이 친구가 언제 이렇게 한국인처럼 인사를 했던가, 지금 열심히 일하는 것을 멈추고 집안에 들어가서 쉬라는 말인가, 전화를 끊는다는 말은 또 무엇인가 하고 생각에 젖었다.
원래 ‘끊다’는 ‘따로 떨어지도록 잘라 가르다’라는 말이다. 거기서 확장되어 ‘(사람이 계속해 온 일일이나 관계를) 더 이상 하지 않거나 지속하지 않다’, ‘(사람이 대화나 통화를) 잠깐 쉬거나 마치다’라는 의미를 담게 되었다. 그러므로 ‘전화를 끊다’라고 할 때는 ‘마치다’라는 의미로 확장된 것으로 본다. 한국어학과 교수지만 이런 것을 외국인에게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 여기서 외국인 제자가 “들어가세요.”라고 하니,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밀려왔다. 보통 외국인 제자들은 “안녕히 계세요.”라고 하는데, 이 친구(?)는 완전히 한국인처럼 말을 하고 있으니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들어가다’는 ‘1. 향하여 가거나 자리를 옮기다, 2. 구성원이 되다, 3. 상대로 하여 그 구성원이 되다’라고 나타나 있다. 사전 어디에도 전화를 끊을 때 하는 인사라는 말은 없다. 하기야 얼마 전에 친구가 미국에 갈 때도 “언제 미국 들어갈 거야?”라고 묻는 친구도 있었고, 며칠 전에는 뉴스에 출연한 국립외0원 교수는 트럼프가 중국에 가는 것을 보고 “트럼프가 중국에 오면~~”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들었다. 도대체 이들의 국적이 어느 나라인지 묻고 싶다. 우리말이 국적이 없어지는 것인지, 들어가다와 나가다의 구별이 없어지는 것인지 황당하다. 그런가 하면 친구집에 놀러갔는데, 친구네 이웃집에서 이사를 왔다고 떡을 가지고 왔다. 옆에 있던 사람이 받아 들고는 “잘 먹겠습니다. 들어가세요.”라고 하는 것을 듣기도 했다. 떡을 주고 나가는 사람한테, “들어가세요.”라고 하는 것은 또 무슨 경우인가 모르겠다. ‘잘 전하고 당신 집에 조심해서 들어가라는 말’인지? 또 병원에 가면 흔히 겪는 일 중 하나가 “00호실에 들어가실게요.”라는 말이다. 입실하라는 말인 것은 확실하지만 ‘들어가실게요’는 요즘 사람들이 다 쓰는 말이지만 틀렸다는 사실도 모두가 알고 있다. 그러면서도 흔히 ‘가실게요’, ‘계산하실게요’ 등의 말을 하는 것이 현실이다.
과거에도 한 번 올린 적이 있듯이 우리말은 완곡어법이 매우 발달했다. 그래서 직선적으로 표현하기보다는 돌려서 말을 하는 경우가 많다. 거절할 때 하는 말을 몇 가지 들어 보자.
생각해 볼게요 => 생각해 보고 결정할 것이지만 싫어.
기도해 보겠습니다 =>(기독교인들의 거절법) 아니오.
알슈 =>(충청도 사람들의 거절법) 안다고 했지, 그렇다고 한 것은 아니야.
우리는 같은 의미를 다른 언어로 표현하는 것에 아주 능통한 민족이다. 변소도 ‘측간, 화장실, 해우소, 뒷간’ 등 다양하게 표현하고 있다. 아무리 완곡어법에 능한 민족이라도 지나치게 외국어화하든가, 알아듣기 힘든 표현은 직설법으로 표현하는 것도 권장할 만하다.
아이고! 정말로 우리말 어렵다. 투덜투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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