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철이 되면 각 가정으로 '선거공보'라 불리는 후보 안내 책자가 배송된다. 평소 제도권 정치에 관심이 많은 나는 공보물이 도착하면 모든 정당과 후보의 정보를 꼼꼼히 살피는 편이다. 국고보조금을 받지 못하는 원외 정당은 대개 낱장 형태지만, 보조금이 넉넉한 원내 정당은 두툼한 책자로 제작해 보내오곤 한다.
공보물을 읽을 때 나만의 중요한 습관이 있다. 모든 공보물을 펼쳐놓고 이번에는 여성 후보가 몇 명인지부터 확인하는 것이다. 특히 지방선거는 투표해야 할 자리가 많아 총선보다 공보물 양이 훨씬 방대하다. 바닥에 모든 후보의 공보물을 깔아놓고 보고 있으면 절로 한숨이 새어 나온다. 여야를 막론하고 여성 후보의 숫자가 여전히 절대적으로 적기 때문이다.
지금껏 총 여섯 번의 지방선거를 거치며 확인한 사실은 늘 같았다. 남성 후보는 압도적으로 많았고, 심지어 전국 광역단체장 후보가 전원 남성인 경우도 허다했다. 이러한 불균형은 시·구의원 선거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다.
이쯤 되면 공천 시스템 자체가 특정 성별에 편향되어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정치는 무엇보다 ‘분배’가 핵심인 영역이다. 이토록 불평등한 성비로 정치인이 배출된다면 우리 사회는 점점 더 공정함과 거리가 먼 곳이 될 수밖에 없다. 구조가 결과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여성 정치인 비율 20%가 문제인 이유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여성 정치인이 늘어나면 우리 사회는 더 평등해진다. 여성 대표성이 실현되는 것 자체가 평등의 실현이기 때문이다.
국제개발협력기구(OECD) 38개 회원국 여성 정치대표성 현황(2025년 3월 기준)에 의하면 한국의 여성 정치인 비율은 20.3% 다. OECD 평균은 33.8%인데 이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수치인 것이다. 2025년 기준 정치에서 여성 비율은 국회 20.0%, 광역의회 19.8%, 기초의회 33.4%, 기초단체장 3.1%인데, 광역단체장은 '0%'다.
여성 정치인이 이렇게 부족하다는 것은 여성 대표성이 매우 약하다는 것이다. 한국사회 인구의 절반인 여성의 권리가 낮은 이유를 논할 때 여성 정치인의 부족을 꼽지 않을 수 없다. 여성 정치인은 남성 정치인들이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여성, 장애인, 아동, 노인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법안에 발의에도 더 적극적이다. 21대 국회에서 발의된 법안 중 특히 여성에 대한 법안 발의는 여성의원 1명당 11.5건 이상을 발의한 데 반해 남성 의원들은 1명당 3.4건 발의에 그쳤다. 한국이 OECD 국가 중 성별 임금격차 최하위를 기록하고, 2025년 세계경제포럼(WEF) 성평등 지수에서 148개국 중 101위(0.687)에 머무는 것은 정치 영역의 여성 대표성 부족과 무관하지 않다.
우리 사회에는 정치와 정치인을 향한 냉소적 시선이 깊게 뿌리박혀 있다. 이는 역사적·문화적 맥락에서 기인한 결과이기도 하지만, 최근에는 사회적 갈등을 중재하기보다 진영 논리에 이용하며 갈등을 부추기는 정치권의 행태가 대중의 불신과 혐오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 혐오가 지금처럼 계속되면 대중 안에 혐오의 언어가 쉽게 자리 잡게 된다. '정치, 정당은 그게 누구든 다 똑같다'라는 냉소주의가 팽배하게 되기 때문이다. 냉소는 사회에 대한 진지한 관심을 쉽게 우스운 것으로 만들고 이를 파고들어 각종 혐오의 언어가 방출된다. 혐오의 언어가 널리 퍼질수록 우리 사회의 각종 사회, 정치, 경제, 문화에 포진해 있는 문제 해결이 어려워진다.
그러므로 각 정당은 정치에 대한 혐오를 없애야 하는 의무가 있다. 여성 정치인 발굴과 기용은 그 의무에 대한 첫 번째 이행 사항이다. 남성 정치인 비율이 80%에 달하는 현실에서는 여성을 비롯한 다른 약자, 소수자들의 사회적 이해 대변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성별이 중요한가? 정치를 잘하기만 하면 되지'라고 생각한다면
우리에게 더 많은 여성 정치인이 있어야 한다! 라고 말하면 여성인지 남성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정치를 잘하는 게 중요한거 아니냐고 되묻는 이들이 있다. 정치를 함에 있어 성별이 중요하지 않다면 더욱이 지금의 한국 사회 정치 상황은 확실히 기이하다. 정치인 비율에 있어 한 성별(남성)이 과반을 훌쩍 넘어 80%의 비율을 차지할 정도인 현실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또한 정치인으로서의 태도와 자질, 실력보단 성별이 ‘스펙’이 된 것이냐는 비판을 면할 수 있겠는가. 이것이 차별이 아니라면 무엇이 차별인가.
우리 사회 곳곳에 있는 차별에 제도적 변화를 일으킬 권한을 부여받는 정치인마저 이런 성차별구조를 바탕으로 선출되는 현실, 이제는 바꿔야 한다.
전국의 광역단체장, 기초단체장, 광역의원, 기초의원, 교육감을 선출하는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오는 6월 3일에 치뤄진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광역의회 여성 당선자는 15%였다. 여성을 공천하지 않는데 당선될 리는 만무하다. 각 정당에서는 한창 이번 선거를 두고 경선과 공천을 진행하고 있다. 진영을 넘어 모든 정당에서 여성들에게 더 많은 후보 공천을 하도록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더 많은 여성 후보를 공천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평등을 향한 각 정당의 관심도를 증명하는 가장 객관적인 지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