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온실가스 규제 정책의 근거가 돼 온 '위해성 판단'을 폐기해 기후 정책을 크게 후퇴시켰다.
트럼프 대통령은 12일(이하 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미 환경보호청(EPA)이 방금 완료한 절차에 따라 우린 소위 위해성 판단을 공식적으로 종료한다"고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위해성 판단이 "사기극"이라고 주장하며 이번 결정은 "미국 역사상 가장 큰 단일 규제 완화 조치"로, "자동차 제조업체에 재앙"이었던 배기가스 배출 기준을 폐기해 미국 자동차 업체가 수혜를 입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2009년 버락 오바마 정부 때 채택된 위해성 판단은 이산화탄소, 메탄 등 주요 온실가스 6종이 국민 건강을 위협한다는 과학적 판단 기준이다. 그 자체는 규제가 아니지만, 미 정부의 자동차 배기가스 및 발전소 배출 규제 등 거의 모든 지구온난화 방지 정책의 핵심 근거가 됐다.
리 젤딘 미 환경보호청장은 이날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한 발표에서 위해성 판단을 폐기하며 차량 제조사가 "더 이상 차량과 엔진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측정, 집계, 보고할 필요가 없다"고 밝혔다. 이어 전기차로의 "강제 전환" 또한 사라진다고 말했다.
<AP> 통신을 보면 미 워싱턴대 환경·직업보건학 명예교수이자 의사인 하워드 프럼킨은 "이 행정부의 위해성 판단을 철회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며 "이는 지구가 평평하다고 주장하거나 중력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개탄했다.
차기 정부 기후 정책까지 어렵게 해…가장 광범위한 기후 퇴행 조치
기존 정책 뿐 아니라 향후 기후 대응 정책 마련에도 악영향을 미칠 이번 결정은 트럼프 정부가 단행한 가장 광범위한 기후 퇴행 조치로 평가된다. <AP>는 이번 조치가 일단 승용차와 트럭에 대한 온실가스 배출 기준을 폐지했지만 전문가들은 나아가 발전소 및 석유·가스 시설 등애 대한 기후 규제까지 더 광범위하게 완화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고 전했다.
미 환경단체 천연자원보호위원회(NRDC) 선임변호사 데이비드 도니거는 향후 행정부가 지구온난화 대응을 위한 새 규칙을 만들고자 하더라도 위해성 판단 폐기 탓에 과학적·법적 절차를 다시 시작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지연되고 법적 도전에 휘말릴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미 환경단체 환경보호기금(EDF)은 지난해 9월 위해성 판단 폐기 땐 2055년까지 대기 중으로 기후 변화 유발 오염 물질이 최대 180억톤 추가로 배출될 수 있다고 봤다. 지난해 미국 배출량의 3배에 달하는 규모다.
영국 BBC 방송을 보면 환경보호기금 고문 피터 잘잘은 이로 인한 조기 사망자가 5만8000명, 추가 천식 발작 3700만 건이 발생할 수 있다고 추정했다. 또 자동차 연비 개선 동력이 떨어지며 연료비로 미국인들이 최대 1조4000억달러(약 2025조원)를 추가로 지출하게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단체는 12일 소셜미디어(SNS) 성명을 통해 "트럼프 정부가 미국인들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살기 위해 필요한 것보다 오염 유발 기업을 우선시했다"고 비판했다.
'이미 친환경 투자했는데' vs '노후 발전소 유지 가능'…업계, 엇갈린 반응
업계 반응도 엇갈렸다. <뉴욕타임스>(NYT)를 보면 주요 자동차 제조업체를 대표하는 자동차혁신연합은 이번 트럼프 정부 조치에 대한 지지 여부를 밝히는 걸 피하면서도 현행 배출 기준이 "현재 시장 수요를 고려할 때 자동차 제조업체들이 달성하기 극히 어려운 수준"이었다고 밝혔다.
BBC를 보면 미 컬럼비아대 기후법 전문가 마이클 게라드 교수는 연비 규제 완화가 "미 자동차 업체들을 곤경에 빠뜨릴 것"이라며 "아무도 미국산 차를 사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전망했다.
반면 전기차 업계를 대변하는 배기가스 제로 운송 협회(ZETA)는 이번 정부 조치가 "미국 전역에서 차세대 차량 제조에 투자한 기업들의 발판을 빼앗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로이터> 통신을 보면 석탄업계는 이번 조치가 노후 석탄 화력발전소 폐쇄를 막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며 환영했다. 석탄업계를 대변하는 아메리카스파워의 미셸 블러드워스 회장은 향후 5년간 5만5000메가와트 규모 석탄 화력발전소 폐쇄가 예정돼 있었는데 이를 되돌리면 더 비싼 새 발전소 건설 필요성이 줄어든다고 설명했다.
반면 이미 오염 방지 대책에 수백만 달러를 투자한 석유 및 가스업계는 배출량 규제가 계속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석유 및 가스 업계 대표하는 미국석유협회(API) 회장 마이크 소머스는 발전소 및 유정 및 가스정에서 배출량 규제를 계속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소머즈는 "연방 규제를 지지"하며 "업계가 배출량 감축에 집중하고 있다"고 밝혔다.
소송 빗발칠 듯…'보수 우위 대법원서 승리가 트럼프 노림수' 분석도
이번 조치 관련 소송이 빗발칠 것으로 전망된다.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12일 성명을 내 위해성 판단 폐기에 대해 "캘리포니아주가 소송을 제기할 것"이라며 "이 무모한 결정이 법적 도전에서 살아남는다면 더 치명적인 산불, 극심한 폭염으로 인한 사망자 증가, 기후 변화로 인한 홍수와 가뭄 확대, 전국 각지 지역사회에 대한 더 큰 위협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규탄했다.
<뉴욕타임스>를 보면 천연자원보호위원회 회장 매니시 바프나도 "우린 법정에서 그들을 만나 승소할 것"이라며 "과학과 법률은 명백하다. 환경보호청은 법적 근거가 없는 성급하고 엉성한 비과학적 결정을 내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다만 BBC는 관련 소송이 제기돼 보수 우위 연방대법원이 트럼프 정부의 손을 드는 것이 이 정부의 노림수일 수 있다고 짚었다. 방송에 따르면 환경보호청에서 일했던 변호사 메건 그린필드는 트럼프 정부가 대법원 승소 땐 "차기 행정부가 새 법률 제정 없인 이를 변경할 수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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