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한 대학교 교수로부터 학생들과의 관계에 대한 고민을 들었다. 요지는 한창 활발해야 할 20대 초반 학생들의 말수가 부쩍 적어졌다는 것이다. 지금껏 겪었던 모습과 어딘가 다른 점이 관찰된다고 했다. 당시 교수가 내린 잠정적 결론은 "코로나19 때문"이었다. 청소년기 교실에서 코로나19를 겪은 학생들과 그렇지 않은 학생들의 특징이 성인이 된 시점에도 표출되고 있었다.
마스크를 쓴 옆자리 친구를 투명한 칸막이 너머로 보는 게 익숙했을 학생들에게 표정을 읽는 법은 점점 낯설어졌다. 모든 불안함과 외로움을 뒤로 하고 주어진 공부는 변함없이 해야 했고, 마스크를 쓴 기간만큼 빼앗긴 '소통의 기회'는 누구도 채워주지 않았다. "스마트폰의 차가운 액정을 만지며 성장한" 청소년은 성인이 되어도 한편의 우울감을 말끔히 해소하기 어려운 모습이다.
청소년의 위기와 교실의 현실을 짚은 책 <조용한 붕괴>의 저자 신선호는 "역사상 가장 새로운 세대이자 고립된 세대"로 오늘날 학생들을 표현한다. 포스트코로나 시대 학생의 마음 건강 위기를 짚고, 곳곳에서 마주한 붕괴의 근원을 파헤친다.
저자는 현직 중학교 교장이다. 학생의 심리적 고통을 이해하고 해결책을 제시하기 위해 전문상담교사 자격증을 취득할 만큼 이 문제를 마주하는 데 있어서 진심이다. 학생과 학교의 위기를 직접 보고 또 다뤄본 목격자의 책에는 교실의 진짜 표정, 우리가 놓친 신호가 꼼꼼히 기록돼 있다.
코로나19 이전에 누적된 구조적 요인이 많았다. 학생들의 스트레스가 이미 한계선에 있었다면, 코로나19는 이를 표면화한 촉진제 같은 역할을 했다. 오래도록 쌓인 취약성이 짧은 시간 동안 압축돼 드러났다.
책에서 가장 먼저 마주한 건 교실의 95%를 차지하는 '정상군'의 표정이다. 저자는 정책의 관심이 5%의 '관심군'에 집중되는 동안, 조용히 무너져 내리는 정상군 학생을 주목했다. 서울시교육청의 정서·행동 특성 검사 결과에 따르면, 자살 학생 중 정상군 학생의 비율은 2019년 39.1%에서 2022년 83.8%로 급등했다. 말 그대로 "정상군의 역설"이다. 95%의 소리 없는 비명을 사회는 놓치고 있었다.
질병관리청이 매년 발표하는 '청소년건강행태조사' 결과를 보면, 최근 1년 사이에 2주 내내 일상생활을 중단할 정도로 슬프거나 절망감을 느낀 적이 있는지를 나타내는 '우울감 경험률'은 꾸준히 20~30%대를 기록했다. 해당 조사에서 2025년 기준, 청소년 자살 생각률은 11.6%로, 청소년 100명 중 약 12명이 최근 1년 동안 심각하게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데이터는 교실의 붕괴를 기록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정상군은 언제부터 지쳐갔을까. 복잡하고, 복합적인 원인이 있다.
흙먼지 나는 놀이터 대신 예측 불가능을 허용하지 않는 '학원' 동선에 갇혀, 실패할 수 있는 권리와 정체성 탐색의 시간을 빼앗긴 아이들은 "성장통을 도둑" 맞았다. 여기에 "스크린을 통해 뇌와 마음을 공격하는 심리적 감염병"과 같은 디지털 팬데믹까지 덮쳐 몸도 마음도 소진돼 갔다.
"학원 숙제에 치여 학교 수업 시간에 쪽잠을 자는 학생의 모습은 단순히 피로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다. 자기 삶에서 주체성을 잃어버린 학생이 보내는 무기력한 구조 신호다. 어른들이 돈으로 아이의 시간을 사는 동안, 아이들은 정작 '자기 자신과 만날 시간'을 잃어버리고 정서적 빈곤 상태에 빠지는 것이다."
저자는 오늘날 학생들의 위기에 '복합 외상 후 성장 장애'라는 진단을 내렸다. 이 시대를 위한 '아동 권리 선언'이 있다면 다음과 같은 요소들이 들어가야 한다고 제시한다. △방황할 권리 △실패할 권리 △몸으로 부딪칠 권리 △지루해할 권리 △질문할 권리. 모두 멈춰버린 아이들의 성장 엔진을 다시 가동할 핵심 요소다.
다만 교육 현장에선 학생 한 명 한 명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기 어렵다. 학생들에게 사춘기는 "편리한 이름표"고, 학교와 교사를 학생 성장의 동반자로 여기지 않는 학부모의 최근 경향성도 영향을 미친다. 사회는 청소년을 '문제가 있는 학생'과 '문제가 없는 학생'으로 구분하기에, 학생이 스스로 문제아임을 증명하길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교실은 총체적 위기에 놓였다.
결국 이 안에서는 침묵하는 정상군을 놓치기 쉽다. 때문에 시스템 개선이 절실하다. 저자는 5%에 집중한 정책 지원의 패러다임을 전환해 보편적 예방에 투자하자고 제안한다. '95%의 가면 쓴 아이들이 튼튼한 마음의 내화벽을 키울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문제를 고치는 데 집중하는 '소방 모델'에서, 모든 학생이 건강하게 성장하도록 보호 요인을 강화하고 위험 요인을 제거하는 '화재 예방 모델'로의 변화 중요성을 강조한다.
문제의 원인을 결함이 있는 학생이 아닌 결함이 있는 학교 환경에서 찾고, 학교에서 스트레스 관리법을 배우고, 학생이 교사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어렵지 않은 환경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한 명의 청소년이 심각한 우울증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성인이 되어서도 만성적인 정신 질환으로 고통받으며 사회생활에 적응하지 못할 경우, 우리 사회가 평생에 걸쳐 지불해야 하는 사회적 비용은 상상을 초월한다."
학생이 살면 교실이, 교실이 살면 교사가, 교사가 살면 학교가, 학교가 살면 사회의 미래가 사는 '선순환'을 저자는 강조한다.
오는 3월 전국 학교에서 '학생맞춤통합지원법'이 본격적으로 시행된다. 학업, 정서적 어려움, 가정환경 등 복합적 위기를 겪는 학생을 조기에 발견해 학교·교육(지원)청·지역사회의 공조로 촘촘히 지원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제도다. 그동안 인력, 예산, 부처 칸막이라는 한계로 놓친 '정상군'의 구조 신호를 잡을 기회다. 저자는 더 나은 시스템을 위해 사회가 꾸준히 고민해야 한다고 요청한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