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이 시작된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국 대표 선수를 "패배자"라고 비난하는 이례적 풍경이 펼쳐졌다. 선수들이 트럼프 정부의 이민 단속, 성소수자 차별 등에 대한 목소리를 내는 걸 피하지 않으면서다. JD 밴스 미 부통령 및 이스라엘 대표팀은 개막식에서 야유를 받고 밀라노에선 미 이민세관단속국(ICE) 인력 투입 반대 시위가 계속되는 등 올림픽 현장에서 미국과 이스라엘 정권에 대한 세계인의 반발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9일(이하 현지시간) 미 ABC, CNN 방송 등을 보면 이번 동계올림픽에 출전한 미국 프리스타일 스키 국가대표 선수 헌터 헤스는 6일 기자회견에서 "지금 미국을 대표하는 데 대해 복잡한 심정이 든다"고 털어놨다. 취재진으로부터 현재 미국 내 긴장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미국 대표로서 출전하는 의미를 묻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다.
헤스는 "조금 힘들다. 내가 지지하지 않는, 그리고 내 생각에 많은 이들이 좋아하지 일들이 많이 벌어지고 있는 건 분명하다"며 "내 도덕적 가치와 일치한다면 난 그걸 대표한다고 느낀다. (미국) 국기를 달고 있다고 해서 내가 미국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대표하는 건 아니다"라고 토로했다. 그는 "내겐 고향에 있는 친구와 가족, 내 이전 대표들, 그리고 내가 미국에 대해 좋다고 믿는 모든 것들을 대표하는 게 더 큰 것 같다"고 덧붙였다.
헤스의 발언은 지난달 트럼프 정부가 미네소타주 이민 단속 과정에서 연방요원들이 시민 2명을 사살해 비판에 휩싸인 것을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 회견에서 미 프리스타일 스키 국가대표 선수 크리스 릴리스 또한 유사한 질문을 받고 "아마 ICE와 일부 시위 같은 것들에 대한 질문인 것 같다"며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가슴 아프다"고 밝혔다. 그는 "국가로서 우린 모든 사람의 권리를 존중하고 시민들을 사랑과 존중으로 대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8일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헤스를 "진짜 패배자"라고 비난했다. 그는 "진짜 패배자인 미국의 올림픽 스키 선수 헌터 헤스가 현재 동계올림픽에서 자국을 대표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그는 애초에 대표팀에 도전하지 말아야 했다. 그가 대표팀에 포함된 게 유감스럽다"며 "이런 사람을 응원하는 건 너무 어렵다"고 했다.
<AP> 통신은 트럼프 대통령 외에도 바이런 도널드 공화당 하원의원을 포함해 보수 인사들이 온라인에서 올림픽에 출전한 미국 대표 선수들을 비난하고 있다고 전했다.
"'넌 그냥 운동선수야, 정치엔 입 다물어'란 말 들어도 침묵 않을 것"
지난주 성소수자 연대 발언을 한 미 국가대표 피겨스케이팅 선수 앰버 글렌 또한 온라인에서 표적이 됐다. 8일 미 CBS 방송을 보면 글렌은 전날 소셜미디어를 통해 "미국의 놀라운 장점 중 하나(표현의 자유)를 활용해 많은 미국인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시기에 미 대표팀 선수로서 느끼는 감정을 전달하고자 했는데, 단지 내가 느끼는 바에 대한 질문을 받고 내 목소리를 낸 것만으로 지금 엄청난 혐오와 협박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런 일을 예상은 했지만 실망스럽다. 내 안녕을 위해 당분간 소셜미디어 사용 시간을 줄이겠지만 내가 믿는 바에 대해 내 목소리를 내는 건 절대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성소수자임을 공개한 바 있는 글렌은 지난 4일 미 피겨 대표팀 선수들과 함께 한 기자회견에서 미국의 정치 상황이 성소수자 공동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질문을 받고 "이번 정부 아래 우리 공동체 전체가 힘든 시간을 겪었다"며 "특히 지금은 성소수자 공동체 뿐 아니라 다른 많은 공동체들도 영향을 받고 있다"고 답했다. 이어 "많은 사람들이 '넌 그냥 운동선수야, 네 일이나 잘 하고 정치 얘기엔 입 다물어'라고 말하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정치는 우리 모두에게 영향을 미친다. 나는 침묵하지 않을 것"이라며 "올림픽 기간 동안 내 목소리와 의견을 발표할 기회를 활용해 이 어려운 시기에 사람들이 강인함을 유지할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고 싶다"고 말했다.
글렌은 미국 선수권대회 3회 우승 경력을 보유한 실력자다. 8일 글렌은 다른 미 대표팀 선수들과 함께 피겨스케이팅 단체전에서 우승해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미 올림픽·패럴림픽위원회는 8일 <AP>에 선수들을 향한 모욕적이고 유해한 메시지 증가를 인지하고 있으며 해당 콘텐츠를 삭제하고 위협을 법집행 기관에 신고하는 등 최선을 다해 선수들의 안녕과 안전을 보호하겠다고 밝혔다.
개막식서 밴스·이스라엘 대표팀에 야유…밀라노서 ICE 투입 반대 시위도 계속
트럼프 정부가 관세 부과, 폭력적 이민 단속, 그린란드 합병 위협, 베네수엘라에 대한 군사 행동 등으로 세계적 신뢰를 잃고 있는 가운데 올림픽 개막식에서 밴스 부통령이 야유를 받기도 했다. <AP>는 6일 개막식에서 미국 대표팀이 입장하자 관중들 사이에서 환호가 쏟아졌지만 이후 전광판에 밴스 부통령과 배우자 우샤 밴스가 나타나자 환호가 곧 야유로 바뀌었다고 전했다.
미 ICE 인력의 올림픽 투입에 반대하는 밀라노 시위도 가라앉지 않고 있다. <AP>는 7일 밀라노에서 2주 연속 관련 시위가 열렸다고 보도했다. 경찰 추산 1만 명의 참가자가 코르티나 봅슬레이 경기장 건설을 위한 벌목에 대한 항의와 ICE 인력 투입을 비판했다고 한다. 미 국토부가 투입 인력이 이민 단속 부서와 별개인 초국적 범죄 조사 담당 국토안보수사국(HSI) 인력이라고 설명했음에도 통하지 않는 상황이다.
가자지구 전쟁이 마무리되지 않고 있는 가운데 6일 개막식에서 이스라엘 대표팀을 향한 야유 또한 쏟아졌다. 이스라엘 매체 <타임스오브이스라엘>에 따르면 이스라엘 선수들은 가자지구 전쟁 탓 개막식에서 적대적인 반응에 직면할 가능성을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고 한다. 매체에 따르면 이스라엘 스키 선수 바나바스 졸로스는 "난 준비됐고 그들은 원하는 대로 할 뿐"이라며 "그저 최선을 다해 좋은 경기를 펼칠 것"이라고 했다. 매체는 이번 올림픽에 이스라엘 대표팀이 참가하는 것 반대하는 시위도 예상 중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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