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800억 톤 존재하는 이것 없인 맥주·빵·치즈·김치도 없다

[최재천의 책갈피] <인류와 함께 한 진균의 역사> 니컬러스 P. 머니 글, 김은영 번역

술자리에서 간혹 던지는 질문이 있다. 1516년, 독일 바바리아의 빌헬름 4세는 <맥주 순수령>을 제정한다. 법령은 맥주에 들어가는 재료를 '보리 몰트와 홉, 물로 제한했다.'

이것만으로 맥주를 빚을 수 있었을까. 진균이 빠져있다. 효모다. 1500종이 넘는 효모는 진균계의 한 가족이다. 효모의 한 종류로 라틴어 학명이 사카로미세스 세레비지에인 진균은 술을 빚거나 빵을 구울 때 쓰인다.

진균은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작아 미생물로 분류되지만, 대표적인 미생물인 박테리아(세균)와는 여러 면에서 다르다. 오히려 세포 구조나 기능 면에서는 동물이나 식물에 훨씬 가깝다. 그런데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진균의 무게는 약 800억 톤으로, 모든 동물의 무게를 합친 것보다 여섯 배 이상 많다.

진균이야말로 지구의 오랜 주인이며, 인간은 그 생태계의 일부를 잠시 공유하고 있는 셈이다.

세계적인 균류학자 니컬러스 P. 머니 교수의 <인류와 함께한 진균의 역사>는 곰팡이, 버섯, 효모와 함께 살아온, 인간과 진균의 공생관계를 다룬 책이다.

출생은 아기를 미생물의 세계로 밀어 넣는다. 아기의 피부는 진균으로 덮이고, 인체 내부는 박테리아로 가득 차며, 바이러스에 감염되기도 한다. 자궁 속의 태아는 양수에 들어있는 소수의 미생물과 만난다. 자궁 밖으로 나온 신생아는 미생물의 홍수 속에 빠진다. 자연선택 덕분에 지구는 수백억 년동안 사람에게 유익하거나 유해한 균의 정글이 되었고, 사람은 누구나 이 약육강식의 세계에 적응할 수 밖에 없다. 진균은 엄마와의 친밀한 접촉이나 분만에 참여한 다른 사람들과의 접촉을 통해서도 전달되며, 모유를 먹음으로써 아기는 새로운 종의 다양한 진균과 만난다. 이렇게 해서 인간과 진균은 함께 살아간다.

죽음에 이르면 인간은 수억 년 동안 재활용을 업으로 삼아온 진균들에게 성찬의 마지막 메뉴를 제공한다.

인간 사체의 부드러운 조직은 대부분 박테리아의 차지가 되고, 모발과 손톱의 케라틴 단백질은 수많은 곰팡이의 몫이 된다.

뼈에도 분해를 촉진하는 균사가 침투한다. 이러한 과정은 매우 느리게 진행된다. 우리는 이러한 전 지구적 영양 순환에 기대어 살아간다.

맥주, 빵, 치즈, 김치 덕분에 효모에 대한 관심이 있었지만 진균에 대한 책을 읽을 줄은 몰랐다. 의생명과학을 전공하는 큰 아이는 매일 효모를 키우느라 바쁘다. 효모가 실험의 소재란다.

▲<인류와 함께한 진균의 역사> 니컬러스 P. 머니 글, 김은영 번역, 조정남 감수 ⓒ세종서적

최재천

예나 지금이나 독서인을 자처하는 전직 정치인, 현직 변호사(법무법인 헤리티지 대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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