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에 대학 도시를 만들자

[민교협의 새로운 시선]

지난 수십년 동안 서울을 핵으로 한 수도권으로의 인구집중, 정치, 경제 권력의 집중 현상을 해소하려는 여러 노력이 있었다. 하지만 상황은 더 나빠졌다. 비수도권 지역은 황량해지고 수도권은 과밀화로 주택 문제, 환경 문제 등 여러 문제가 생겼다. 국토균형발전을 겉으로 부정하는 사람은 없지만, 속으로는 각자의 이해관계와 욕망에 따라 오직 수도권, 특히 서울로만 돈과 권력이 모이는 현상이 더욱 빨라졌다. 그렇게 기형적인 국토발전이 이뤄졌다. 내가 최근 읽은 한국 소설 중에서 돋보이는 성취로 꼽는 김기창 소설 <마산>은 그 점을 이렇게 짚는다.

"적어도 서울은 그럴 기회가 적당히는 있는 것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마산은 아니었다. 친구들, 대학 동기들, 후배들, 선배들 절반이 태어나고 자란 고향을 떠나 서울 같은 대도시로 가려 했다. 무지개다리를 건너는 것만큼의 환상을 품어서가 아니었다. 점점 낡아 가는 이 도시처럼, 자신의 삶 역시 한번 부풀어 보지도 못한 채 수그러들기만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은재는 마산을 떠나고 싶기도 했고, 그러지 않고 싶기도 했다. 문제는 선택 권한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점이었다. 대도시에 위치한 대기업 취직은 호락호락한 일이 아니었다."

나는 이 착잡한 문제의 해결책을 제안할 뾰족한 방안을 갖고 있지 않다. 다만, 대학 선생으로서 한가지 제안을 이 글에서 하고 싶다. 서울에 몰려 있는 대학을 전국 각지에 분산하여 지역 사회와 경제의 구심 역할을 하는 대학도시를 만들자는 것이다. 국가균형발전의 요체는 “대도시에 위치한 대기업” 등 청년들이 취직힐 만한 직장이 전국 곳곳에 위치하는 것이다. 그러나 기업은 그 속성상 권력과 인력이 모여 있는 곳에 자리 잡으려 한다. 그걸 탓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발상을 바꿔 전국에 대학 도시를 만들어 기업을 끌어들이는 방안을 모색할 수 있다. 내가 사정을 조금은 아는 미국 대학 도시의 사례를 들어 그 의미를 살펴보겠다.

나는 재직 중인 대학의 배려로 미국 서부 오리건(Oregon) 주에 위치한 대학 도시 유진(Eugene)과 동부 버지니아(Virginia) 주에 위치한 샬럿츠빌(Charlottesville)에서 생활하는 경험을 했다. 두 도시에는 각기 그 주를 대표하는 주립대학인 오리건대학(Univ. of Oregon)과 버지니아대학(Univ. of Virginia)이 있다. 두 대학에서 생활하면서 나는 미국 대학이 그 대학이 위치한 도시와 인근 지역과 맺는 관계, 특히 경제, 문화적 영향을 숙고하게 됐다. 유진은 오리건대학을 중심으로 성장해 온 전형적인 중형 대학 도시이다. 오리건 전체가 산업 기반이 강하지 않기 때문에, 오리건대학은 유진의 인구 구성, 고용, 도시 정체성 전반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도시 전체 인구는 약 18만 명이다. 군산, 여수, 안동과 비슷한 규모이다. 학생 수는 약 2만 4천 명 내외이고 교수·연구자·행정직원·비정규직 수천명이 일한다. 오리건대학은 유진이 속한 레인 카운티(Lane County) 최대의 고용주다. 교수·직원의 직접 고용뿐 아니라, 학생들의 소비, 주택 임대, 그 밖에 음식, 소매, 교통, 문화 산업 등을 통해 대학은 지역 경제에 광범위한 파급 효과를 낳는다. 대학이 없다면 유진은 지금과 같은 규모나 활력을 유지하기 어렵다. 나는 유진에서 생활하면서 대학이 왜 단순한 교육기관이 아니라 도시의 경제적, 문화적 기반이 되는지를 실감했다. 덧붙여 소규모 대학 도시만이 제공하는 생활의 여유와 느긋함도 느낄 수 있었다. 역시 대도시에서는 체감하기 어려운 점이다.

버지니아대학이 위치한 샬럿츠빌 인구는 약 4만 5천명이다. 인근 지역까지 포함하면 20만명 정도가 된다. 학생 수는 대학원생 포함해서 약 2만 5천명이고, 교수진, 직원, 연구직, 버지니아 대학교 의과대학과 병원(Medical Center)에서 일하는 의료 인력까지 포함하면 대학이 곧 도시라는 느낌을 준다. 버지니아대학은 샬럿츠빌과 인근 지역 경제에서 압도적인 첫 번째 고용주다. 대학과 대학 병원은 도시와 인근 지역의 의료·연구·고급 서비스 산업의 구심 역할을 한다. 샬럿츠빌 경제에서 버지니아대학은 가장 큰 고용주 수준이 아니라 사실상 지역 경제와 문화를 움직이는 동력이다. 내가 생활하면서 직접 체험한 두 대학만 그런 것이 아니다. 버지니아대학과 더불어 미국의 대표적인 주립대학인 버클리를 포함한 거의 모든 수십개의 캘리포니아 대학 시스템(Univ. of Califoria, California State Univ.), 미시건 대학, 노스캐롤라이나 대학 등이 대도시가 아니라 대학이 교육, 문화, 의료의 중심역할을 하며 소도시에 자리한다. 주립대학만 그런 것이 아니다. 아이비리그에 속하는 거의 모든 사립대학이 대학 도시에 위치한다. 프린스턴대학이 자리한 뉴저지(New Jersey) 주의 대학도시 프린스턴, 다트머스대학이 위치한 뉴햄프셔(New Hampshire) 주의 도시 하노버 등이 그런 사례다. 이들 대학 도시들은 규모로만 보면 작은 마을에 불과하지만, 그 대학이 갖는 학문적·상징적 자본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미국의 독특한 대학 체제인 인문사회 중심대학(Liberal Arts College)에 속하는 윌리엄스 대학이 위치한 윌리엄스타운이나 애머스트 대학이 자리한 애머스트 같은 곳에서는 대학이 곧 도시와 같은 의미를 지닌다.

이런 대학 도시에서는 도시의 거의 모든 경제 활동이 대학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된다. 이들 지역은 인구 대비 문화 밀도가 매우 높고, 삶의 질 역시 높게 유지된다. 이들 대학 도시에서 대학은 단지 교육기관이 아니다. 대학이 도시의 최대 고용주이자 문화 생산자이며, 지역 정체성을 보여주는 상징 역할을 한다. 대학 도시의 가장 큰 장점은 대학과 생활이 분리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교수와 학생, 지역 주민은 같은 식당과 서점을 이용하고, 대학의 강연과 공연은 도시 전체의 문화 자산이 된다. 대학 캠퍼스는 대도시 대학처럼 울타리 안에 고립된 공간이 아니라 지역의 공공 공간이 된다. 학문은 도시 한복판에서 이뤄지고, 도시는 지적 분위기를 갖게 된다. 대도시에서 대학이 종종 섬처럼 존재하며 지역과 의미 있는 관계를 맺지 못하는 한국의 상황과는 다르다. 앞서 지적했듯이, 경제적 측면에서도 소규모 대학 도시는 독특한 고용 안정성을 제공한다. 대학은 경기 변동에 비교적 둔감한 기관이기에, 제조업이나 특정 산업에 의존하는 도시와는 다르게 대학 도시는 교육·연구·의료·문화 서비스가 지역 경제의 핵심 축을 이룬다. 오리건대학이 있는 유진은 대규모 산업도시로 성장하지는 않았지만, 대학을 중심으로 안정적인 소비와 고용 구조를 유지한다. 샬롯츠빌은 버지니아대학을 중심으로 의료·법률·공공정책 분야의 고급 인력이 지역에 정착하게 만들면서 소도시로서는 이례적으로 높은 소득과 교육 수준을 자랑한다.

그렇다면 우리도 이제 발상을 바꿔서 대학을 단순한 교육 시설이 아니라, 지역을 견인하는 핵심 제도로 인식해서 장기적으로 육성해야 하지 않을까? 내실 있는 지역 대학을 거점으로 연구·의료·문화 기능을 함께 갖춘 대학 도시를 전국 곳곳에 만들게 되면, 학생과 교수, 전문직 인력이 굳이 서울과 수도권으로 이동하지 않아도 되는 조건이 형성된다. 대학을 중심으로 안정적인 서비스 경제가 형성되고, 대학과 연계된 기업이 생겨서 지역 내 고급 일자리가 늘어나면 청년의 지역 정착 가능성이 커진다. 미국 대학 도시 사례에서 배울 점이다. 수도권 집중 완화를 위해 공공기관을 이전하거나 산업단지를 조성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 사람을 붙잡는 힘은 경제(고용)와 함께 교육, 의료, 문화, 그리고 지속 가능한 일상이다. 그 핵심에 대학이 자리한다면 지역은 더는 사람이 떠나는 곳이 아니라 머무를 수 있는 곳이 된다. 대학은 어디에 있어야 하는가? 이 질문은 이런 질문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어떤 사회 구조를 선택할 것인가? 대학을 대도시의 부속물로 둘 것인가? 아니면 지역과 상생하는 핵심 제도로 삼을 것인가?

사정이 이런데도 한국 고등교육정책은 오히려 반대의 길로 가고 있다. 몇 년 전부터 교육부는 글로컬 사업 등의 명목으로 그나마 지역에서 거점 역할을 하는 대학, 특히 멀쩡히 제 역할을 해온 숫자도 많지 않은 국립대학을 얼마 안 되는 재정지원을 미끼로 통폐합 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그렇게 지역 도시에서 대학이 사라지게 되면 그것은 대학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 대학과 관련을 맺고 있는 지역 경제, 지역 공동체의 쇠락과 소멸을 낳는다. 예컨대 내가 일하는 거점국립대학인 충남대와 통합을 반대하는 공주대가 위치한 공주시민의 반발이 그래서 발생한다. 이것은 지역이기주의가 아니다. 지역과 대학이 맺는 관계를 깊이 숙고해야 하는 과제를 던져주는 사례이다. 과연 전국에서 몇 개의 규모 있는 대학만 남고 거의 모든 대학이 수도권에만 쏠려 있는 게 정상인가? 그런 불균형이 국가균형발전에 도움이 되나? 묻고 싶은 질문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지역 대학을 무조건 없애는 것이 아니라(물론 부실한 대학의 정리는 필요하지만), 그 대학을 중심으로 한 내실 있는 대학 도시의 건설 방안을 찾는 것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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