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구미의 한 주공아파트 지하, '은빛둥지'라는 작은 사랑방. 여기서 1급 중증 장애와 심한 우울증을 앓던 40대 여성이 매주 두세 번, 앞을 보지 못하는 70대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할머니, 안녕하세요. 오늘 점심은 드셨어요?"
여러 차례 자살을 시도했던 할머니는 이 전화를 기다리게 되었다. 그리고 장애를 가진 여성도 변했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는 사실이 그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지난 2002년 경북 구미에서 시작된 '사랑고리' 타임뱅크의 실제 모습이다. 두 사람 중 누가 시혜를 베푸는 사람이고, 누가 도움을 받는 사람일까. 둘 다 주는 사람이자, 동시에 받는 사람이다. 돌봄은 이렇게 일방향이 아니라 상호의존적이다.
우리는 돌봄을 오랫동안 누구의 책임이라고 말해왔는가. 가족인가, 국가인가, 아니면 개인의 운명인가.
한국 사회는 지금 '돌봄의 위기'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다. 2024~2072년 기간 중 세계인구 의 고령인구 구성비는 10.1%p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나, 한국은 같은 기간 28.5%p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통계청, 세계와 한국의 인구현황 및 전망, 2024) 이 변화는 단순한 인구 통계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골목길 반지하 방에 홀로 사는 노인의 끼니가 걱정이고, 병원 입원 후 집으로 돌아갈 길이 막막한 이웃이 우리 곁에 있다.
특히 1인 노인가구의 증가는 돌봄 문제를 더욱 첨예하게 만든다.
통계청(장래가구추계, 2024)에 따르면, 전체 가구 중 1인가구 비중은 2022년 34.1%에서 2052년 41.3%로 증가할 전망이다. 가까운 친척이나 이웃과의 왕래는 줄어들고, 장기요양 지출과 노인의료비는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이런 현실은 '돌봄은 개인과 가족의 책임'이라는 오래된 통념이 더 이상 유지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돌봄은 이제 개인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함께 책임져야 할 과제가 되었다.
돌봄 사각지대가 드러낸 제도의 한계
우리 사회의 돌봄 체계가 이미 위기를 드러낸 사건은 많다. 지난 2014년 '송파 세 모녀 사건'은 국가가 구축한 어떤 사회보장망에도 포함되지 못한 이들이 얼마나 쉽게 소외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더 충격적인 것은 최근 서울 강서구 다세대주택 일가족 사망 사건이다. 이 가족은 수급자로 제도 안에 있었음에도 '낮은 위기'로 분류돼 적절한 지원을 받지 못했다.
이 사건들은 분명히 말한다. 사회보장망은 더 촘촘해져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아무리 제도를 확장하더라도 모든 위험과 욕구를 관리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결국 제도의 바깥, 사각지대를 메우는 또 다른 장치가 필요하다. 바로 지역사회와 주민이 스스로 만들어가는 '서로돌봄' 체계다.
지역사회 통합돌봄의 취지와 현실
정부는 2019년부터 '지역사회 통합돌봄(커뮤니티케어)' 선도사업을 추진했다. 노인과 장애인 등 돌봄이 필요한 이들이 병원이나 시설에만 의존하지 않고, 자신이 살아온 지역에서 계속 살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정책이다. 주거·보건의료·요양·돌봄 서비스를 통합해 제공하겠다는 구상이다.
이 정책은 '탈시설', '통합돌봄', '지방정부 권한 강화'라는 세 축을 지향한다. 그러나 현장은 여전히 난관에 부딪혀 있다. 제도가 설계되어 있어도 실제 현장에서 돌봄을 이어줄 주민 네트워크가 작동하지 않으면 결국 틈이 생긴다. 특히 장보기, 집수리, 말벗 같은 생활 밀착형 돌봄은 제도권 서비스가 채워주기 어렵다. 이 간극을 메울 수 있는 실험이 바로 '타임뱅크(Time Bank)'다.
타임뱅크,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을 지우다
타임뱅크는 봉사한 시간을 '화폐'처럼 적립해 두었다가 필요할 때 동일한 시간만큼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교환 시스템이다. 이 단순한 구조는 돌봄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바꾼다.
첫째, 누구나 기여할 수 있는 자산이 있다는 전제다. 노인과 장애인도 다른 사람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며, 그 가치는 시간으로 기록된다.
둘째,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구분을 허문다. 오늘은 내가 돕지만, 내일은 내가 도움을 받는다.
셋째, 연대와 호혜를 통해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 신뢰와 관계망이 지역사회에 축적된다.
구미 '사랑고리', 22년간 증명된 가능성
2002년 구미요한선교센터의 김요나단 신부는 봉사 현장에서 한 가지 문제를 발견했다. 봉사자와 수혜자가 명확히 나뉠수록 봉사자는 소진되고 수혜자는 무기력과 의존에 빠진다는 것이었다. "한쪽은 베풀고 한쪽은 받는 수직적 구조는 오히려 폭력이 될 수 있다"는 그의 문제의식은 '사랑고리'라는 타임뱅크 실험으로 이어졌다.
사랑고리는 '쓸모없는 사람은 없다'는 정신을 바탕으로 모든 노동에 동일한 가치를 부여했다. 의사든 무직자든 일정량의 봉사를 하면 같은 '고리'를 받았다. 경로당 어르신들이 청소년에게 간식을 나누고, 청소년은 어르신에게 한글을 가르쳤다. '노노케어'라는 말조차 없던 시절, 구미는 노인을 수혜자가 아니라 기여자로 바라보는 실험을 시작한 것이다.
2015년까지 133명의 회원이 2266.5고리를 적립하였고, 코로나19 시기에는 식사 배달로 전환해 돌봄의 끈을 놓지 않았다. 사랑고리는 이후 전국으로 확산돼 타임뱅크코리아 설립과 서울시 사업으로 이어졌다.
통합돌봄과 타임뱅크의 접목, 지금 여기서
서울시 '돌봄SOS' 사업이 보여주듯 제도와 제도 사이에는 여전히 넓은 공백이 있다. "아직 장기요양 등급은 안 나오지만 생활이 힘들다", "병원에서 퇴원했지만 집에 돌아가 혼자 버텨야 한다"는 목소리는 제도 밖에 놓인다. 이 틈새야말로 타임뱅크가 작동할 수 있는 공간이다.
노년유니온에서도 매일 이런 현장을 마주한다. 폐지를 줍는 어르신, 지하철 택배를 하는 어르신, 웰다잉을 공부하는 어르신들이 '내 생애 마지막 기부클럽'을 만들어 소득과 유산의 1%를 기부한다. 이분들은 복지의 수혜자가 아니라 이미 공동체의 기여자다. 타임뱅크는 이 기여를 관계의 안전망으로 전환하는 장치가 될 수 있다.
국가와 주민의 '이중 안전망'
돌봄 논의에서 이제 필요한 것은 선택이 아니라 결합이다. 국가는 기본적인 안전망을 책임져야 한다. 그러나 주민이 만들어가는 서로돌봄이 없다면 제도는 공허하다. 국가의 제도적 안전망 위에, 타임뱅크 같은 주민 주도의 상호부조 체계가 함께 작동할 때 우리는 비로소 이중의 안전망을 갖게 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시설이 아니라, 관계를 설계하는 정책이다. 돌봄을 비용이 아니라 연결로 바라보는 관점의 전환이다.
돌봄의 정의를 다시 묻는다
돌봄은 누구의 시혜가 아니다. 나와 너, 그리고 우리가 함께 살아가기 위해 서로를 지탱하는 행위다. 타임뱅크는 이 새로운 돌봄의 정의를 현실 속에서 작동하게 만드는 장치다.
다가올 초고령 사회에서 돌봄은 위기이자 기회다. 우리는 이 위기를 공동체 회복의 기회로 바꿀 수 있다. 돌봄을 서비스가 아니라 나눔으로, 부담이 아니라 관계로 전환할 때 우리 사회는 다시 연결될 수 있다.
구미 '은빛둥지'에서 40대 여성과 70대 할머니가 서로를 살린 것처럼, 이웃의 시간은 우리 모두의 안전망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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