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주의 택한 미국과 동북아 집중하려는 중국…한국에는 기회

[기고] 한중 정상회담, 한중관계 복원의 중대한 전환점

이재명 대통령의 중국 국빈 방문은 한국 대통령으로는 약 8년 만에 재개됐다. 지난해 시진핑 주석의 방한 이후 다시 이어지는 정상회담이라는 점에서 이번 방문은 한중관계 복원의 중대한 전환점이다.

방중을 앞두고 이 대통령은 중국 관영 CCTV와의 인터뷰에서 한중 수교 당시 합의된 '하나의 중국' 원칙을 재확인하며, 대만 문제에 대해 기존 입장에 변함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이는 중국의 핵심 관심사에 대한 존중을 명확히 함으로써, 불필요한 오해를 차단하고 관계 복원의 제도적 출발선을 다시 그은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이 대통령은 "중국과의 대립이나 충돌은 한국의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하여, 한미동맹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미중 경쟁 구도에서 한국이 전략적 자율성을 추구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번 이재명 대통령의 국빈 방중은 한국 외교가 변화하는 미중경쟁과 동북아 정세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출발점이다. 한중관계 복원은 경제 회복의 지렛대이자, 한반도 평화의 외교적 토대이며, 무엇보다 한국이 국제질서의 구조적 전환기에서 전략 좌표를 다시 설정하는 선택이다. 한국 외교의 자율성 확대는 다음 10년을 규정할 외교의 방향타를 다시 세우는 중요한 일이 될 것이다.

지난해 12월, 미국 트럼프 행정부 2기의 국가안보전략(NSS)이 공개됐다. 이번 문서는 미국의 세계전략이 구조적으로 전환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중국을 '체제 전환의 대상'이나 '이념적 위협'으로 규정하지 않았고, 이념 대결 구도 역시 언급하지 않았다.

대만해협은 여전히 "중요한 전략적 사안"으로 명시됐지만, 미국의 직접 개입을 전면에 내세우기보다는 동맹국들의 협력과 역할 분담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서술됐다. 동시에 NSS는 기술·산업·공급망을 핵심 안보 영역으로 명시하며, 미중 경쟁의 무게중심이 군사에서 기술·경제 영역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분명히 했다.

한국이 특히 주목해야 할 변화는 북핵 문제에 대한 언급이 빠졌다는 점이다. 한반도 사안의 전략적 우선순위가 상대적으로 재조정됐음을 시사한다. 이는 미국의 세계 관리 방식이 구조적으로 바뀌고 있다는 신호이며, 동시에 한국의 외교·안보 전략에도 변화가 필요함을 암시한다.

이번 NSS 내용은 미국의 전략적 여력과 세계 관리 방식이 조정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징후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미국은 전 세계 GDP의 약 50%를 차지하며 단독으로 세계 질서를 설계하고 관리할 수 있었다. 그러나 현재 미국의 세계 GDP 비중은 약 25% 내외로 줄었고, 반면 40여 년 전 세계 경제에서 미미한 비중을 차지했던 중국은 약 18% 수준까지 올라왔다.

중국의 고속 성장은 과거만큼 가파르지는 않다. 그러나 '중속 성장' 국면으로 전환된 중국은 여전히 안정적인 성장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동시에 중국은 첨단기술 분야에서 미국과의 격차를 좁히기 위해 국가 차원의 총력전을 전개하고 있다.

로봇, 드론, 방산, 위성·우주 기술 분야에서는 이미 빠른 추격 단계에 진입했고, 반도체 자립을 위한 이른바 '반도체 굴기' 역시 국가 전략 차원에서 핵심 과제로 추진 중이다. '딥시크(DeepSeek)' 와 같은 AI 생태계 확장은 중국이 차세대 디지털 기술표준 경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중국은 '중국 기술표준 2035'와 같은 중장기 로드맵을 통해, 글로벌 기술 규칙의 수동적 수용자가 아니라 '규칙 설계자'로 자리매김하려는 분명한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

이와 동시에 중국은 동북아에서 미국의 전략 조정이 만들어내는 공간을 적극적으로 채우려 한다. 최근 중국은 미국의 시선을 의식하며 주변 전략을 조율하는 단계에 머물지 않고, 동북아 질서 재편에 주도적으로 개입하려는 양상을 보인다.

특히 전승절 행사에서 시진핑 주석의 양옆에 김정은 위원장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함께 선 것은 북·중·러 간 전략적 연대의 메시지를 국제사회에 명확히 각인시키는 장면이었다.

최근 북·중 관계가 빠르게 밀착되고, 중국이 일대일로 전략의 연장선에서 동북 3성 재활성화와 동부 지역 개발에 다시 힘을 싣고 있다는 점은, 중국의 전략적 시선이 동북아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다.

지난해 8월 말 중국 톈진에서 개최된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도 단순한 정례 회의를 넘어 중국의 전략적 의도를 보여준 사례였다. 이 회의는 역대 정상회의 가운데 가장 큰 규모로 진행되었으며 다자 협력 플랫폼으로서의 위상을 부각했다.

정상회의에서는 향후 2035년까지의 SCO 발전전략과 함께 '톈진 선언'이 채택되며, 안보를 넘어 경제·과학기술·디지털 경제·인프라 등 협력 영역을 대폭 확장하는 장기 비전이 공식화됐다. 이러한 움직임은 중국이 동북아와 유라시아에서 제도적·경제적으로 영향력을 증대하려는 전략적 목표를 드러낸다.

NSS에서 미국이 중국을 체제 경쟁의 대상으로 규정하지 않은 것은 전략적 현실을 반영한 선택이다. 미국은 과거처럼 모든 지역의 질서를 직접 관리하기 어려워졌고, 미중 경쟁도 군사적· 안보적 충돌보다 기술·경제 중심의 장기전으로 재편되고 있다. 대만해협 문제에서 동맹국의 역할을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미국이 단독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부담을 동맹 네트워크로 분산시키려는 전략적 조정이다.

미국의 전략 변화는 단기적으로 대만해협의 군사적 위기를 오히려 완화하는 방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중국의 해군력과 국방력은 빠르게 성장했지만, 아직 미국과 대등한 전면전 능력에는 도달하지 못했고, 미국 역시 대규모 군사 충돌을 감당할 정치적·재정적 여력이 줄어들고 있다. 이러한 조건 속에서 미중 경쟁은 '전쟁'이 아니라 '기술·경제 중심의 구조적 경쟁'으로 전환되고 있다.

일련의 전략 환경 변화는 한국에 중대한 함의를 던진다. 먼저 분명히 해야 할 점은, 한미동맹은 여전히 한국 안보의 핵심축이라는 사실이다. 한미동맹의 전략적 가치는 여전히 유지돼야 하며, 이는 흔들려서는 안 되는 기본 전제다.

그러나 동맹의 중요성이 한국의 외교·안보적 자율성을 축소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지금과 같은 구조적 전환기에는 동맹을 '종속의 틀'이 아니라 '전략적 지렛대'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안보적 측면에서 미중 경쟁이 격화될수록 한국의 자율성은 좁아지는 경향이 있었다. 미국의 요구가 강해질수록 한국의 선택지는 줄어든다. 그러나 지금의 구도는 다르다.

미국은 고립주의 성향을 강화하며 동맹국의 부담 분담을 요구하고 있고, 중국은 동북아에 전략적 역량을 집중하면서 동시에 외교적 협력 프레임을 병행하고 있다. 이 사이에서 한국은 지정학적 요소를 적극적으로 고려하여 전략적 선택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구조적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

특히 NSS에서 북핵 문제가 언급되지 않은 점은 미국의 대외전략에서 한반도 문제에 대한 우선순위가 재조정되었음을 의미한다. 이는 위험이자 동시에 기회다. 한국이 좀 더 주도적으로 한반도 문제를 관리할 수 있는 외교·안보적 자율 공간이 넓어졌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제 한국은 동맹의 틀 안에서 능동적인 전략 행위자로 변모해야 한다.

지금 한국이 해야 할 일은 지정학적 위치와 경제·기술 역량을 종합적으로 활용해 전략적 자율성을 확대하는 것이다. 미국과의 동맹을 유지하되, 동맹 내부에서 한국의 독자적 이익과 선택지를 제도적으로 확보해야 한다. 중국과는 갈등을 관리하면서도 동북아 질서 변화 속에서 한국의 역할과 위상을 확대해야 한다.

'미국의 고립주의'와 '중국의 동북아 집중'은 한국이 수동적 행위자에서 능동적 전략 행위자로 이동할 수 있는 구조적 창이 열리고 있음을 의미한다. 지금은 한국의 전략적 자율성이 다시 확장될 수 있는 전환점이다. 이 기회를 살리는 것이 지금 한국 외교의 가장 중요한 과제다.

▲ 지난해 10월 30일 김해공항에서 만나 정상회담을 가진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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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덕

최재덕교수는 성균관대학교 중문과를 졸업하고 중국 베이징대학에서 박사학위(한중관계)를 받았고 모스크바국립대학 국제관계 박사후과정을 거쳤습니다. 이후 연세대 통일연구원 전문연구원을 거쳐 대통령직속 북방경제협력위원회 전문위원 등을 역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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