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이 왜 필요한가는 최근의 지정학적 위기와 다단한 국제적 사변들이 설명해주고 있다."
조선(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1월 4일 극초음속 미사일 발사훈련을 참관하면서 한 말이다. 여기서 "그것"은 핵억제력 고도화를 의미한다. 공교롭게도 조선의 미사일 발사훈련은 미국이 불법적인 무력행사를 통해 베네수엘라의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 부부를 납치한 지 하루 만에 실시됐다. 김 위원장이 말한 "지정학적 위기"와 "국제적 사변"이 이를 염두에 둔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이다. 같은 날 조선 외무성 대변인이 대미 규탄 발언을 내놓은 것도 이러한 분석을 뒷받침해준다.
이러한 일련의 흐름을 보면서 착잡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한미 양국은 공식적으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원칙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는데, 정작 핵무력을 "국체"로 삼은 김정은 정권은 '우리의 선택이 옳았다'는 확신을 더더욱 강하게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미국의 베네수엘라에 대한 무력침공은 핵무기와 전쟁의 관계를 새삼 고민하게 만든다. 1945년 핵무기의 등장 이후 핵보유국이 타국의 침공을 받은 사례는 없다. 이에 반해 비핵국가가 타국의 공격을 받은 사례는 많았다. 21세기 들어서도 그렇다.
9·11 테러의 배후였다는 아프가니스탄, 대량파괴무기를 개발하고 있다는 거짓 정보로 침공을 당한 이라크, 대량파괴무기 개발을 포기했지만 제거된 리비아의 카다피 정권, 수천개의 핵무기를 포기한 우크라이나, 이스라엘과 미국의 협공을 당한 팔레스타인과 이란, 그리고 최근 베네수엘라에 이르기까지 이들 나라의 공통점은 '비핵국가'라는 것이다.
미어샤이머의 조언
이러한 현실을 보면 미국의 저명한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자인 존 미어샤이머 시카고대 석좌교수가 일전에 한 말이 새삼 떠오른다. 그는 윤석열 정부의 통일부가 주최한 ‘2023 한반도 국제포럼’ 기조 강연에서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했을 때 한반도의 전쟁 발발 확률이 낮아지고, (그래서) 북한의 핵 보유가 비핵화보다 낫다"고 말해 참석자들을 화들짝 놀라게 한 적이 있다. 조선의 핵무장이 한국의 압도적인 재래식 군사력 우위 및 미국의 확장억제와 균형을 이뤄 "광범위한 관점에서 한반도의 안정을 가져온다"는 주장이었다.
이에 앞서 댄 고츠는 트럼프 행정부 1기 국가정보국장 재직 중이었던 2017년 여름에 "북한이 리비아와 우크라이나의 핵 포기에서 얻은 교훈은 불행하게도 '만약 핵이 있으면 절대 포기하면 안 되고 핵무기가 없다면 그걸 가져야 한다'라는 것"이라며 "김정은의 행동은 정권 및 국가의 생존을 위한 합리적 사고에 기반한 것"이라고 말했다.
'비핵화 프레임'이 여전히 강한 우리의 현실에선 쉽게 동의하기 힘든 진단일 수 있다. 그러나 약육강식의 풍토가 더욱 강해지고 있는 오늘날의 국제정세에서 마냥 내치기도 힘든 진단이다. 위에서 소개한 두 사람을 비롯해 '전쟁 억제력으로써의 조선의 핵무장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취지의 주장을 펼쳐온 여러 전문가들이 '종북주의자'일 리가 없기에 더욱 그러하다.
한중정상회담에서 '비핵화'가 빠진 이유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 '불편한 대세'를 직시할 필요가 있다. 조선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미중 전략 경쟁 등 지정학적 대변동을 틈타 핵보유국의 지위를 굳히고 있다. 러시아로부터는 사실상 인정을 받았고 중국으로부터는 묵인을 받았다.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는 공식적으로는 "북한의 비핵화"가 목표라고 하지만, 정작 트럼프 대통령 본인은 이러한 표현을 사용하지 않으면서 "핵보유국(nuclear power)"라는 말을 반복해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재명 정부가 비핵화를 자주 언급하는 것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정부도 잘 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이 작년 12월 2일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출범회의에서 비핵화 대신에 "핵 없는 한반도"라고 표현한 것도 이러한 고심이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대통령은 1월 5일 한중정상회담 모두 발언에서도 '비핵화'나 '북핵 문제'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다. 대신 "한반도 평화를 위해 실현 가능한 대안을 (중국과) 함께 모색하겠다"고 강조했는데, 이는 4월로 예정된 트럼프 대통령의 방중 즈음에 북미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해 중국의 운신의 폭을 넓혀주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중정상회담에서 비핵화가 공개적으로 거론되면 중국의 대북 설득력도 약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정부의 이러한 행보가 '실용 외교'의 관점에서 페이스 조절을 잘하고 있는 것이라고 본다. 비핵화를 무음 처리할수록 굳게 닫힌 대화의 문이 열릴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북핵 동결을 우선적인 과제로 삼으면서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의 논의 물꼬도 틀 수 있기를 소망해본다. 북핵 동결과 평화협정 체결은 "한반도 평화를 위해 실현 가능한 대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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