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문제, 거리로, 광장으로 나가는 수밖에 없다

[민교협의 새로운 시선]

교육개혁을 목표로 최근 출범하여 활동을 준비하고 있는 시민단체 교육대개혁국민운동본부의 단톡방(25년 11월 30일 771명 참여)에서 한 분이 지난 11월 14일 수능 이틀 후 이러한 속마음을 토로했다.

"아이가 수능을 보게 되어 시험장에 데려다 주고 출근했다. 수능을 보는 부모의 마음을 헤아려서인지 많은 응원이 온다. 사실 수능에 이렇게 많은 응원이 있다는 것은, 한 인생의 결정적 진로가 하루의 시험으로 결정되기 때문이다. (…) 고3 학부모가 되면서 내 아이와 주변 친구들을 보며 많은 것을 느낀다. 등급으로 아이들이 소고기처럼 분류되는 현 제도에서, 아이들은 일찍부터 자신의 한계를 규정짓는 모습을 보이곤 한다. 즉, 가능성의 싹을 대학에 들어가기 전에 미리 잘라내는 듯한 현실이 안타깝다."

자신의 아이를 수능 시험장에 보내는 날에 이곳의 평범한 일반인(보통 사람)인 한 학부모의 바람은, 현재의 경쟁 교육 입시 시스템을 모든 아이들에게 기회를 주고 아이들 각자의 진정한 역능을 판별할 수 있는 교육 시스템으로 전환시키는 데에 있을 것이다. 초중등 교육을 정상화시켜 아이들이 과도한 입시 준비 노동으로부터 해방되고, 사교육을 받지 않아도 되며, 필요한 만큼의 여가 생활을 즐기면서 친구들과 우정을 나눌 시간과 여유를 확보하고, 각자 자신에게 맞는 경향과 소질을 알아갈 수 있기를 바라는 '상식적인' 바람일 것이다.

그러한 바람은 지금까지 정부들로부터 거의 존중되지 않았고, 현재 이재명 정부에서도 크게 존중 받지 못하고 있다. 현 정부도 마치 이곳에서 교육문제, 즉 학벌-입시 문제를 크게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나아가 마치 없는 것처럼 다루고 있다는 의심을 거둘 수 없게 한다. 정부가 AI 산업과 같은 국가 자본과 민간 자본의 확보 및 축적을 위한 과제에는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반면 정작 이곳이 가장 중요하고 심각한 민생 문제들 중 하나인 교육 문제에는 뒷짐 지고 물러나 있다는, 나아가 계속 그럴 것이라는 예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가령 현 정부가 야당이었던 시절부터 채택해왔던 대표적인 교육 정책인 서울대10개만들기에 대해 생각해보자. 서울대10개만들기는 교육 문제와 관련해서 정부와 일반인들 사이의 거리가 너무나 멀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이 먼 거리는 이번에 서울대10개만들기에 할당된 정부 예산 8,733억 원과, 그것의 약 45배에 달하는 한 해 사교육비 국민 총 지출액, 즉 분단국가의 한 해 군사비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39조 2,000억원(2024년, 초등학교 입학 전과 재수 사교육비 포함, 통계청 자료) 사이의 거리이다. 또한 그것은, 요즈음 티브이에 출연해서 이재명 정부의 교육정책에 대해 선전하는 민주당 진영의 교육 관계자들이 보여주는 예의 바르고 단정한 몸가짐과 화사한 표정, 그리고 성적으로 인해 자살을 결심한 아이들이 내보이는 얼어붙은 몸의 떨림과 좌절·절망·모멸감·억울함과 무엇보다 외로움이 잠식한 표정 사이의 거리일 것이다. 그러한 아이들이 이태원 참사 사망자수 159명을 넘어서는 한 해 청소년(15세~19세) 자살자수 약 200~300명의 대다수를 이룬다.

'서울대10개만들기'(김종영 교수가 주장한 것이 아니라, 김 교수의 주장을 거의 반영하지 않은 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것)는 '특목고(특수목적고등학교)', '자사고(자율형사립고등학교)'와, 특히 '수능(대학수학능력시험)'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캄푸라치(허울 좋은 위장)에 지나지 않는다. 특목고가 실상은 대입에서의 성공이라는 너무나 일반적인 목적에 종속된 고등학교이며, 자사고가 '입결'의 높은 점수라는 지상 과제에 지극히 타율적인 고등학교이고, 수능이 단순히 대학 수학 능력을 테스트하는 시험이 아니라 아이들을 1점 차까지 따져가며 줄 세우는 시험인 것(그러한 의미에서 전 국민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는 '수능'이라는 단어 하나는 이곳의 학벌-입시 체제 자체 또는 전체가 집단적 거짓말 위에 서서 작동한다는 사실을 정확히 증명한다)과 마찬가지로 서울대10개만들기는—지옥 같은 입시 경쟁을 완화시키는 효과를 거의 기대할 수 없는—또 하나의 지방대학 육성책에 불과하다. 한마디로 '특목고', '자사고'와 마찬가지로 '서울대10개만들기'라는 캄푸라치 표현은 학벌-입시 문제와 관련해 정부가 취하는 스탠스와 실제로 일반인들이 겪는 현실 사이의 엄청난 거리를 가리킨다.

이곳의 교육문제(학벌-입시 문제)와 관련해서 일반인들은 정부뿐만 아니라 소위 '지식인'들('지식인'이라는 표현 자체가 '지식의 권위'라는 차별적 권위나 진부한 권위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보여 꺼려지지만, 편의상 이 표현을 쓰고자 한다)과도 너무 먼 거리에 놓여 있다.

단적인 예를 하나 들어보면, 내가 밖에서 간접적으로 관여하고 있는 교육 문제 관련 시민단체 대학무상화평준화국민운동본부(대무평)에서는 매주 광화문과 국회 앞에서 피켓 시위를 하는 회원분들이 있다. 이렇게 교육 개혁을 하면서 직접 거리로 나가 고생하시는 분들(그 분들 중엔 고령자도 있다)에 대한 일반인들의 반응은 "감사합니다. 저도 아침에 아들 녀석 수능장으로 보내며 맘이 착잡했는데 이렇게 힘 써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감사하고 위로 받습니다"(서울평학2025 텔레그램방, 11월 13일)와 같은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스스로를 '지식인'이라고 자임하는 한 분(최근 출범한 교육대개혁국민운동본부에서 가장 열심히 활동하고 단톡방에 가장 많은 정책들과 의견들을 내는 분으로 알고 있다)은 같은 시위를 보고 이렇게 반응했다.

"구체적 내용 제시도 없는 단순 구호의 반복으로는 교육을 눈곱만큼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같은 문장(어구)을 반복해서 지겹도록 봐야 하는 건 지식인들에게는 대단한 인내심을 발동해야 하는 고역입니다."

물론 교육대개혁국민운동본부에 위의 분과 같은 '지식인'들만 있는 것은 전혀 아니고, 내가 약간 관여하고 있다고 해서 대무평을 옹호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대무평에서 매주 거리 시위에 참여하고 있는 분들이 내세우고 있는 "입시경쟁교육폐지, 대학무상교육, 대학평준화실현!"이라는 구호들에는 일반인들의 바람과 희망을 대변하는 점이 분명히 있고, 그렇기에 그분들은 일반인들을 어느 정도 대변하고 있다. 그분들의 구호들이 거리에서 사람들의 무관심에 묻히고, 국회에서 국회의원들의 냉소에 무시된다면, 이는 또한 교육 문제와 관련된 민중의 무력함과 절망을 대변하고 공표하고 시위하는 것 아닌가?

위의 '지식인'분은 아마 교육 문제와 관련해 지식인들이 구체적 개혁 정책들을 제시하고, 그것들을 정부에 제시해야 한다고 여기는 것 같아 보인다. 그러나 만약 그가 대무평의 시위자들이 '무효'한 행동을 반복하고 있다고 보았다면, 그가 제시하는 교육 관련 정책 제안들은 얼마나 '유효'할 수 있는가? '지식인'이 지식인일 수 있으려면 지배계층과 민중 사이에서 민중의 편에 서야 한다는 일반적 당위나 원칙만이 문제되는 것이 아니다. 현재 교육 문제와 관련해서 많은 지식인들이 몰두해서 매달리고 있는 정책 구상들이—설사 불가피하고 필요하다 할지라도—충분히, 크게 '유효'하지 않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관건은 정책들 이전에 권력이기 때문이다. 현재 이곳의 학벌-입시 문제는 단순히 교육문제도, 예외적인 하나의 사회 문제도 아니며, 전형적인 정치적 문제이다. 즉 너무 오랜 기간 동안 국가 차원에서 지속되고 심화되고 격화되어온 억압-피억압의 문제, 즉 집단적인 지배-피지배의, 전면적인 차별-피차별과 서열화의 문제, 즉 권력의 문제이다. 너무 긴 시간 동안 이 나라의 근간을 침식해 들어오던 이 문제가 이 나라를 중병에 들게 만든 것이다.

교육 문제, 학벌-입시 문제는 지식인들이 끊임없이 고민하고 제안하는 '교육제도 공학적' 차원에서의 정책들로 결코 해결되지 않는다. 학벌-입시 문제는 이상적이거나 현실적인 정책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또는 제도적·의식적 문제가 아니라 전형적인 무의식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머리를 굴려서' 정책들을 고안하고 제출해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너무 오랜 기간—일제 강점기 1924년 현재의 대학로에 경성제대예과가 설립 된 후 100년 넘는 기간—동안 우리 각자의 내면에 있는 '채찍을 든 노예 감독관'(김누리 교수의 표현)이 강요하는, 일류대학을 가서 잘 살기 위해 '너 자신을 죽도록 착취해'라는 무의식적 억압과 명령의 문제, 한마디로 이데올로기의 문제이다. 의식이 아니라 몸에 새겨져서 체화되는 무의식의 억압과 명령은 제대로 된 확실히 '유효'한 어떤 정책을 수립하는 것을 방해할 뿐만 아니라, 학벌-입시의 가중으로부터 유래하는 수많은 폐해들을 은폐시켜 끊임없이 감내하게 하고, 플라톤의 동굴('목숨을 건' 경쟁이 지배하는 '헬조선')을 현실로 보게 만든다. 한마디로, 그 무의식적인 것들이 일반인들·지식인들과 대통령을 포함한 정부 인사들을, 결국 우리 모두를 학벌-입시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시도조차 못하도록 완전히 가로막고 있다.

학벌-입시 문제, 이데올로기 문제, 결국 정치적 문제. 이 문제의 근본적 해결은 집단의 정치적인 것의 장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지식인들과 학자들이 정책들을 제시하고, 방송에 나가 개혁을 주장하거나 글을 쓰는 것도 물론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불충분하고 개혁의 필요성과 필연성을 일반인들이 납득하고 거기에 동참할 수 있도록 집단적 움직임이 가시화되어야 한다. 그러한 운동의 기운이 현재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지난 10월 25일 시민단체 대학무상화평준화국민운동본부는 서울 시내 도심에서 교육혁명행진 운동을 진행했다. 이광국 전교조 참교육연구소 정책국장은 여러 미시적인 움직임들 가령 "수업 혁신 및 교육과정 재구성 노력 등을 병행하면서도 거시적으로 사회 전반에 관한 변혁적 상상력에 이르지 못한다면 안타깝게도 답이 없다"라고 밝혔다(<교육희망>, 2025.11.08.). 이어서 그는 서구의 교육혁명이었던 68혁명을 거론하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우리도 불가능하지 않다. 두 명의 부정한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그러했듯, 결국은 교직원, 학생, 학부모, 시민 등 사회 구성원 간의 연대를 통한 '목소리 내기'가 얼마만큼 확산되느냐가 대전환의 성패를 좌우할 것이다. (…) 시민사회의 함성이 필요하다면, 그것을 이끌어낼 최초의 자극이 전교조였으면 좋겠다. 교육과 사회가 어두웠던 시대에 언제나 앞서나갔던 그 모습처럼 말이다"(같은 곳).

이제 하나의 의제(나로서는 당장 현실화 불가능하더라도, 또한 정부에 대해 '경매가'를 높이는 것이 필요하기도 하기에 '경쟁 입시 수능 철폐, 대입 자격고사 도입'이 가장 적절하다고 본다)를 두고 거리로, 광장으로 나가는 수밖에 없다. 정부는 이론가들도, 지식인들도, 그들이 내놓는 정책들이나 이론들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거기에는 권력이 없기 때문이다. 정부는 단지 우리 일반인들의 결집된 움직임만을 두려워할 뿐이다. 만약 우리가 두 번의 대통령 탄핵에서처럼 물러섬 없는 강한 결속력으로 현재의 학벌-입시 제도와 체제의 개혁을 요구한다면, 분명 정부는 움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시민들의 강력하고 거대한 움직임은 국가 권력의 근간과 정당성을 뒤흔들게 마련이고, 표가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프랑스에서는 얼마 전 시민들이 정부가 정부예산 동결하고 공휴일 이틀 줄인다는 이유로 대규모 시위에 들어갔었다. 만약 프랑스에서 한국의 학벌-입시 문제 같은 걸로 몇 십 년 동안 아이들과 학부모들을 고문하고 학대했다면, 프랑스는 진즉에 지도에서 사라졌을 것이다.

이 텍스트는 지난 12월 3일 전국국공립대학교교수노동조합 경상국립대학교 지회 주최로 열린 2025년 하반기 정책 포럼에서 제시했던 발표문 「교육 문제, 정부와 지식인들과 일반인들 사이에서」를 상당 부분 수정하고 보완한 것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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