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법 위반 소지 큰 미국 공격에도…한국 비롯한 美 동맹국들, 눈치보며 '갈팡질팡'

유엔과 유럽연합 등은 국제법 위반에 우려…中·러·브라질 등은 미국 행위 규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주권 국가인 베네수엘라에 군대를 보내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을 체포하는 국제법적 위반 행위를 저지른 데 대해 국제사회의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한국을 포함한 미국의 동맹국 일부는 이에 대한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4일 외교부는 '베네수엘라 상황 관련 대변인 성명'을 통해 "우리 정부는 최근 베네수엘라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역내 긴장을 완화시키기 위해 모든 당사자들이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일 것을 촉구하며, 베네수엘라 국민들의 의사가 존중되는 가운데 민주주의가 회복되고 대화를 통해 베네수엘라 상황이 조속히 안정되기를 희망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이어 외교부는 "우리 정부는 베네수엘라에 체류 중인 우리 국민의 안전 확보를 위해 만전을 기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앞서 3일 외교부는 현지 상황과 국민에 대한 안전대책을 점검하기 위해 김진아 외교부 제2차관 주재로 본부-공관 합동 상황점검회의를 개최했다고 밝혔다. 현재까지 현지 체류 중인 국민 70여 명의 피해 사례는 접수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군사작전은 유엔 헌장 제2조 4항을 위반한 행위다. 해당 조항은 "모든 회원국은 그 국제관계에 있어서 다른 국가의 영토보전이나 정치적 독립에 대하여 또는 국제연합의 목적과 양립하지 아니하는 어떠한 기타 방식으로도 무력의 위협이나 무력행사를 삼간다" 라고 규정하고 있다.

국제법상 각 국가의 주권이 평등하다는 원칙에도 위배되는 행위다. 이에 따르면 특정 국가는 다른 국가의 내부 문제에 간섭하면 안되는데, 다른 국가의 지도자를 무력을 통해 강제로 축출하는 것은 해당 국가의 주권과 자결권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행위에 해당한다.

이에 안토니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대변인 성명을 통해 국제법이 존중되지 않는 현 상황에 대한 깊은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스테판 두자릭 유엔 대변인은 3일 성명에서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미국의 군사 행동에 깊은 우려를 표하며, 지역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며 "위험한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대변인은 "사무총장은 유엔 헌장을 포함한 국제법을 모든 국가가 온전히 존중해야 한다는 점을 계속해서 강조한다"며 "그는 국제법 규정이 존중되지 않은 것에 대해 깊이 우려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모든 관련 당사자들이 인권과 국제법에 따라 "포괄적인 대화"에 참여할 것을 촉구했다.

아날레나 베어보크 유엔 총회 의장은 이번 위기에 대응해 "지침이 되어야 할 것"은 유엔 헌장이라며 헌장 제2조가 미국을 포함한 모든 회원국이 다른 국가의 영토나 정치적 독립에 대한 "무력의 위협 또는 사용을 삼가야 한다고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모두를 위한 평화롭고 안전하며 정의로운 세상은 힘이 곧 정의가 아닌 법치가 우선시될 때에만 가능하다"라고 지적했다.

베네수엘라는 뉴욕에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긴급 회의 소집을 공식 요청했으며 이달 유엔 안보리 의장국인 소말리아 유엔 대표부는 3일 미국의 군사 행동과 관련해 오는 5일 오전 10시(미 동부시간 기준) 긴급 회의를 개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카야 칼라스 유럽연합(EU) 외교정책 고위대표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X'의 본인 계정에서 미국이 "국제법과 유엔 헌장의 원칙을 존중해야 한다"고 촉구했다고 영국 공영방송 BBC가 보도했다.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국제법과 유엔 헌장의 원칙은 존중되어야 한다. 우리는 자제를 촉구한다"며 EU는 "베네수엘라 상황을 면밀히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칼라스 대표는 "EU는 마두로 대통령의 정당성이 결여되어 있다고 여러 차례 지적했으며, 평화로운 정권 이양을 지지해 왔다"면서 지난해 7월 치러진 베네수엘라 대선 결과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일(현지시간) 플로리다주 마러라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UPI=연합뉴스

유엔 등 주요 국제 기구들과 달리 미국의 개별 동맹국들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명백한 입장을 내는 것을 다소 꺼리는 모양새다. 스타머 영국 총리는 본인의 'X' 계정에 "영국은 마두로를 불법적인 대통령으로 간주하며 그의 정권 종식에 대해 슬퍼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게재했다.

스타머 총리는 "영국 정부는 앞으로 미국 측과 상황 전개에 대해 논의할 것이며, 베네수엘라 국민의 뜻을 반영하는 합법적인 정부로의 안전하고 평화로운 정권 이양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스타머 총리는 미국이 국제법을 위반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그는 "저는 평생 국제법과 국제법 준수의 중요성을 옹호해 왔다"면서도 "현재로서는 전체적인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다. 상황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모든 정보를 종합해야 한다"며 답을 피했다고 BBC가 보도했다.

스타머 총리는 "이번 작전에 영국은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는 점을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 동맹국들과도 이야기해야 하지만 저는 이 문제를 회피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본인의 'X' 계정에서 "베네수엘라 국민은 마두로 독재 정권에서 해방됐다"면서 "다가오는 정권 이양은 평화롭고 민주적이며 베네수엘라 국민의 뜻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며 환영의 뜻을 밝혔다.

그런데 장 노엘 바로 프랑스 외무장관은 'X'의 본인 계정에서 마두로 정권을 비판하면서도 "마두로를 체포하기 위한 군사 작전은 국제법의 근간을 이루는 무력 사용 금지 원칙에 위배된다"며 "프랑스는 외부에서 강요된 정치적 해결책은 있을 수 없으며, 주권 국가인 국민만이 스스로의 미래를 결정해야 한다는 점을 재차 강조한다"고 밝혀 국제법 위반 여부에 대한 입장을 명백히 하기도 했다.

일본은 4일 오후 외무성 대변인 성명을 통해 "베네수엘라 사태를 면밀히 주시하고 있으며, 일본인들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하고 있다"며 "일본 정부는 베네수엘라의 민주주의 회복을 조속히 추진해야 한다는 점을 오랫동안 강조해 왔다"고 밝혔다.

일본 정부는 국제법 위반 문제와 관련해 "일본은 전통적으로 자유와 민주주의와 같은 근본 가치를 존중해 왔다"며 "또한 국제 사회에서 국제법 원칙 존중을 일관되게 강조해 왔다"고 밝혀 미국의 행동이 국제법 위반 소지가 있다는 점을 우회적으로 지적하기도 했다.

러시아와 중국, 브라질 등은 미국의 행동을 규탄하고 나섰다. 러시아는 외무부 성명을 통해 "베네수엘라에 대한 무력 침략 행위를 저질렀다"며 "이는 매우 우려스럽고 규탄받아 마땅한 행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러시아 외무부는 "현재 상황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더 이상의 사태 악화를 막고 대화를 통해 해결책을 찾는 데 집중하는 것"이라며 "우리는 모든 파트너들이 대화를 통해 문제 해결을 모색해야 한다고 믿는다. 우리는 이를 위해 그들을 지원할 준비가 되어 있다"라고 말했다.

러시아 외무부는 "라틴 아메리카는 2014년에 선언했던 평화 지대로 남아 있어야 한다. 베네수엘라는 파괴적인, 특히 군사적인 외부 개입 없이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할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러시아가 언급한 2014년의 선언은 그해 1월 29일 쿠바 아바나에서 열린 라틴 아메리카·카리브 국가공동체(CELAC) 제2차 정상회의에서 33개 회원국 만장일치로 채택된 '라틴 아메리카와 카리브해 평화 지대 선언'(Proclamation of Latin America and the Caribbean as a Zone of Peace)'으로, 라틴 아메리카 지역에서의 무력 사용 금지와 다른 국가에 대한 불개입, 주권 존중, 비핵 지대 등을 규정하고 있다.

러시아 외무부는 "우리는 베네수엘라 당국과 중남미 국가 지도자들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긴급 소집을 촉구한 성명을 지지한다"며 "주카라카스 러시아 대사관은 현 상황에도 불구하고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베네수엘라 당국 및 베네수엘라에 거주하는 러시아 시민들과 지속적으로 연락을 취하고 있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위해 양측과 활발히 협상을 이어가는 가운데, 베네수엘라에 대한 침공 역시 지난해 12월 29일 이뤄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통화에서 미리 알려준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이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3일 플로리다주 마러라고(Mar-a-Lago)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푸틴 대통령에게 "마두로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푸틴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는 너무 많은 사람을 죽이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중국 <신화통신>은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기자의 질문에 대해 "중국은 주권 국가에 대한 미국의 노골적인 무력 사용과 대통령에 대한 조치를 강력히 규탄하며, 깊은 충격을 받았다"라며 "미국의 이러한 패권적 행위는 국제법을 심각하게 위반하고 베네수엘라의 주권을 침해하며, 중남미와 카리브해 지역의 평화와 안보를 위협한다. 중국은 이를 강력히 반대한다"고 답했다고 전했다.

브라질의 룰라 다 실바 대통령 역시 베네수엘라 지도자에 대한 폭력적인 체포가 "국제 사회 전체에 또 다른 매우 위험한 선례를 남겼다"며 우려했다고 BBC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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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남북관계 및 국제적 사안들을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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