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아이가 해외입양 된다면?" '해외입양 찬성론자'들에게 묻고 싶다

[기고] '해외입양 중단 반대'에 답한다

지난 12월 30일, 전국입양가족연대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해외입양을 옹호하는 입장을 밝혔다. 보건복지부가 최근 해외입양을 단계적으로 중단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에 대한 반대 입장을 표명한 것이다. 나는 이들의 해외입양 찬성에 깊은 우려를 표하며, 해외입양에 반대하는 분명한 이유들을 밝히고자 한다.

국가의 책임 방기와 아동권리의 후퇴

해외입양은 근본적으로 국가가 자국의 아동을 보호할 책임을 포기하는 행위다. UN 아동권리협약은 아동이 가능한 한 부모에 의해 양육받을 권리가 있으며, 이것이 불가능할 경우 자국 내에서 대안 양육을 받을 권리를 명시하고 있다. 해외입양은 이러한 원칙의 가장 마지막 단계, 최후의 수단이어야 한다.

아이들이 태어난 나라에서 자랄 권리, 자신의 뿌리와 문화 속에서 정체성을 형성할 권리는 기본적인 인권이다. 이는 단순히 감상적인 문제가 아니다. 정체성의 혼란은 한 개인의 평생에 걸쳐 영향을 미치는 심각한 문제다. 선진국들이 국내입양과 가정위탁을 최우선으로 하고, 해외입양을 엄격히 제한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한국은 이미 OECD 국가이자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매년 수백 명의 아이들이 해외로 입양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가 아동을 보호할 시스템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는 것을 방증한다.

해외입양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해외입양인들의 증언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말해준다. 언어의 단절, 문화적 정체성의 혼란, 인종차별의 경험, 생부모를 찾을 권리의 제한. 이는 단순히 '좋은 환경'으로 가는 것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이다.

많은 해외입양인들이 성인이 된 후 한국을 찾아온다. 그들은 자신의 뿌리를 찾고,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싶어 한다. 하지만 불완전한 입양 기록, 파기된 문서들로 인해 생부모를 찾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일부 입양인들은 입양 과정에서 신원이 조작되거나 불법적인 절차가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기도 한다.

또한 입양된 나라에서 겪는 인종차별과 정체성의 혼란은 결코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 겉으로는 아시아인이지만 내면은 서구 문화로 자란 이들의 정체성 고민, 때로는 입양 가정 내에서도 완전한 가족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경험들. 이런 문제들은 '사랑'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아동최선의 이익이라는 원칙은 물질적 환경뿐 아니라 정체성과 뿌리를 유지할 권리, 차별받지 않을 권리도 포함한다. 우리는 입양인들의 이러한 경험과 증언에 진지하게 귀 기울여야 한다.

구조적 문제의 은폐와 임시방편

해외입양을 계속 허용하는 것은 근본적인 사회 문제를 덮어두는 것과 같다. 왜 한국에서는 미혼모들이 아이를 키우기 어려운가? 왜 국내입양률은 이렇게 낮은가? 왜 취약계층 가정에 대한 지원은 이렇게 부족한가?

미혼모에 대한 사회적 낙인은 여전히 강고하다. 많은 미혼모들이 사회적 시선과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아이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린다. 하지만 정작 이들을 지원하는 시스템은 턱없이 부족하다. 주거 지원, 양육비 지원, 직업 훈련과 취업 지원 등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국내입양률이 낮은 것도 사회적 인식 문제가 크다. 혈연 중심주의, 입양에 대한 편견, 입양 가정에 대한 지원 부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지 않고 해외입양으로 '해결'하는 것은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더 나아가, 보호가 필요한 아이들을 시설이 아닌 가정에서 키울 수 있는 가정위탁 시스템도 충분히 활성화되지 않았다. 선진국들은 시설 보호를 최소화하고 가정 기반 보호를 우선하지만, 한국은 여전히 많은 아이들이 시설에서 자라고 있다.

과거의 상처를 반복하지 말아야

한국은 6.25전쟁 이후 수십 년간 세계 최대의 아동 수출국이라는 오명을 안고 살았다. 1953년부터 현재까지 20만 명이 넘는 아이들이 해외로 입양됐다. 이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규모다.

1960~70년대 전쟁의 혼란기와 극심한 빈곤 속에서 시작된 해외입양은, 경제가 성장한 후에도 계속됐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전후로 국제사회의 비판이 쏟아졌지만, 근본적인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입양 기관들은 하나의 산업처럼 운영되었고, 해외입양은 지속됐다.

이제는 경제적으로 성장한 우리 사회가 그 아이들을 우리 품 안에서 키울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할 때다. 과거의 부끄러운 역사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더 이상 아이들을 해외로 보내야 할 만큼 가난한 나라가 아니다.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

해외입양을 반대한다고 해서 입양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다음과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첫째, 원가정 보호를 최우선으로 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미혼모와 취약계층 가정이 아이를 키울 수 있도록 실질적인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주거, 경제, 양육, 심리 상담 등 통합적인 지원 시스템이 구축되어야 한다.

둘째, 국내입양을 적극 활성화해야 한다. 입양가정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고, 경제적·심리적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 입양 절차의 투명성을 높이고, 입양 후 사후관리도 강화해야 한다.

셋째, 가정위탁 제도의 내실화가 필요하다. 일시적으로 가정을 떠나야 하는 아이들도 시설이 아닌 가정에서 자랄 수 있어야 한다. 위탁가정에 대한 지원과 교육을 강화하고, 장기 위탁도 활성화해야 한다.

넷째, 해외입양은 정말 최후의 수단이 되어야 한다. 국내의 모든 가능성을 다한 후, 그리고 엄격한 심사를 거쳐서만 이루어져야 한다. 입양 과정의 투명성을 보장하고, 입양인의 신원 정보를 철저히 보존해야 한다.

우리 아이들은 우리가 키워야 한다

전국입양가족연대는 '아이들에게 가정을 제공한다'는 명분을 내세운다. 그 취지 자체는 이해한다. 하지만 우리가 물어야 할 근본적인 질문은 이것이다. 그 가정이 왜 대한민국이 아니어야 하는가? 우리는 왜 우리 아이들을 우리 사회에서 키울 수 없는가?

해외입양은 아동의 문제가 아니라 어른들의, 사회의, 국가의 문제다. 아이들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을 보호하지 못하는 우리 사회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 사회가 변해야 한다. 모든 아이가 자신이 태어난 곳에서, 자신의 언어와 문화 속에서, 자신의 뿌리를 간직하며 자랄 수 있는 사회. 어떤 아이도 '수출'되지 않는 사회. 그것이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미래다.

해외입양 찬성론자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의 아이가 외국으로 입양 가는 것을 상상해본 적이 있는가? 당신의 손주가 다른 나라에서, 다른 언어로, 다른 문화 속에서 자라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 우리는 다른 사람의 아이들에게도 같은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

우리 아이들은 우리가 키워야 한다. 그것이 국가의 책임이고, 사회의 의무다. 더 이상 아이들을 해외로 보내는 것으로 우리의 책임을 회피해서는 안 된다.

▲전국입양가족연대 관계자 등이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 후 현수막을 들고 사진을 찍고 있다. ⓒ전국입양가족연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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