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2026년 신년사는 겉으로 보면 매년 반복되는 연례 연설이다. 한 해의 성과를 정리하고, 인민의 노고를 치하하며, 새해의 안녕을 기원하는 국가 의례의 언어다. 그러나 외교적 시선에서 이 연설을 읽으면, 그것은 단순한 인사말이 아니라 중국이 스스로를 어떤 국가로 규정하고 있으며, 세계가 자신을 어떤 존재로 인식하길 원하는지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정치 텍스트다.
특히 이번 신년사는 '무엇을 하겠다'는 약속보다 '이미 어디에 와 있는가'를 반복적으로 확인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변화와 개혁을 강조하던 과거와 달리, 이번 연설의 핵심 키워드는 안정, 성취, 통합, 정상성이다. 중국은 "우리는 바뀔 것이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우리는 이미 여기까지 왔다"고 선언한다. 이 신년사가 정책 청사진이라기보다, 체제의 자기 인증서처럼 읽히는 이유다.
이 텍스트는 중국 정치 언어를 해석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한국 정부가 앞으로 중국을 어떤 상태의 국가로 상정하고, 어떤 전제 위에서 대중 전략을 설계해야 하는가라는 질문과 직결된다. 방중을 앞둔 이재명 정부라면, 이 신년사는 반드시 정독해야 할 정책 텍스트다.
'전환기 국가'에서 '정상 국가'로의 자기 선언
2026년 신년사는 '14차 5개년 계획의 수관(收官)'이라는 시간 규정에서 출발한다. 즉 2021~2025년 동안 추진해온 국가 전략을 마무리하고, 다음 단계인 15차 5개년 계획으로 넘어가기 직전의 시점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시진핑은 지난 5년을 "극히 평범하지 않았던 여정"으로 규정하면서도, 중국은 모든 도전을 극복했고, 목표를 완수했으며, 중국식 현대화의 새로운 단계에 "안정적으로 진입했다"고 선언한다.
국내총생산 140조 위안 달성이라는 수치는 이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이는 단순한 경제 지표가 아니라, 위기와 불확실성을 하나의 연속된 성공 서사로 봉합하는 정치적 상징이다. 신년사 속에서 위기는 이미 극복된 과거로 정리되고, 현재는 관리 가능한 정상 상태로 재정의된다. 중국은 더 이상 '버텨내는 국가'가 아니라, '위기를 통과한 이후의 국가'로 자신을 제시한다.
이 지점은 한국 외교에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중국은 더 이상 이해와 배려를 요청하는 전환기 행위자가 아니다. 스스로를 동등하거나 경우에 따라 상위의 협상 주체로 규정하며, 타국의 대응을 평가하는 위치에 서 있다. 한국 외교가 여전히 중국을 '불안정한 체제'나 '과도기 국가'로 인식한다면, 그 인식 자체가 이미 중국의 자기 인식과 어긋난다.
역사 기억의 정치화와 대만 문제의 고정화
이번 신년사에서 또 하나 눈에 띄는 대목은 역사 기억의 재배치다. 항일전쟁 및 세계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80주년, 대만 광복 기념일을 국가적 차원에서 강조하는 것은 단순한 과거 회상이 아니다. 이는 주권, 통합, 정통성을 하나의 역사 서사로 묶는 정치적 작업이다.
특히 대만 문제는 외교적 협상의 대상이 아니라, 이미 결론이 난 역사적 필연으로 제시된다. "조국 통일의 역사적 대세는 막을 수 없다"는 표현은 이 사안이 선택지의 영역이 아니라, 닫힌 전제임을 분명히 한다. 한국 외교에 중요한 것은 이 입장에 대한 찬반이 아니다. 중국이 이 문제를 어떤 언어로 고정시키고 있는지를 정확히 인식하는 일이다. 오판은 가치 판단에서가 아니라, 현실 인식의 오류에서 발생한다.
기술·문화·민생을 하나로 묶는 국가 성취 서사
이번 신년사는 성과의 범위 또한 확장한다. 인공지능 대모델, 반도체 자립, 우주 탐사, 항공모함, 로봇과 드론은 '고품질 발전'의 상징으로 제시된다. 그러나 여기서 혁신은 시장의 자율적 결과가 아니라, 국가 목표 달성을 위한 전략 자산이다. 기술은 경쟁력이자 통치 역량의 일부다.
문화와 민생도 마찬가지다. 전통문화, 콘텐츠, 관광, 스포츠는 '중화 문화의 세계적 확산'이라는 국가 서사 안에 배치된다. 육아 보조금, 노인 친화 개조, 신형 고용 집단의 권익 보호 역시 체제의 정당성을 구성하는 요소로 기능한다. 이는 중국이 스스로를 단선적인 성장 국가가 아니라, 삶의 전 영역을 관리할 수 있는 '정상 국가'로 규정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개방을 말하지만, 규범을 제안하는 국가
신년사는 중국이 여전히 세계를 향해 열려 있음을 강조한다. 상하이협력기구, 글로벌 거버넌스 이니셔티브, 기후변화 대응, 인류운명공동체가 반복적으로 언급된다. 그러나 이 개방은 기존 규범을 수용하는 개방이 아니라, 새로운 규범을 제안하고 조정하는 주체로서의 개방이다.
중국은 자신을 국제질서의 수혜자나 도전자가 아니라, 재설계자로 위치시킨다. 이는 한국 외교에 분명한 과제를 던진다. 중국과의 협력은 가치 선언의 문제가 아니라, 중국이 설정한 담론의 범위와 한계를 정확히 인식한 상태에서의 전략적 선택이어야 한다.
'방향'보다 '궤도'를 읽는 외교
2026년 시진핑 신년사는 중국이 스스로를 안정된 통치 역량과 완결된 국가 서사를 가진 행위자로 규정하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국가는 더 이상 위기를 견디는 존재가 아니라, 성과를 예측 가능하게 관리하는 시스템으로 자신을 제시한다.
이러한 중국의 자기 인식은 곧 있을 이재명 대통령의 방중과 한중 정상회담을 바라보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한국 외교의 과제는 중국의 방향을 바꾸려 하거나, 그 서사를 도덕적으로 평가하는 데 있지 않다. 중국이 이미 설정해 놓은 궤도와 언어를 정확히 읽고, 그 안에서 충돌을 관리하며 협상의 여지를 넓히는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방향을 둘러싼 공허한 논쟁이 아니다. 이미 움직이고 있는 궤도를 읽어내는 감각, 그것이야말로 한국 외교가 성숙한 전략 외교로 나아가기 위한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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