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송 시대, 불안정+저소득 '전임' 교원의 폭증
행정안전부 산하에 '이북5도위원회'라는 조직이 있다고 한다. 도지사 5명이 차관급으로 약 1억 5천만 원의 연봉을 받으며, 기사와 관용차까지 제공된다고 한다. 업무추진비 1,500만 원은 별도다. 명예 시장·군수는 월 37만 원, 명예 읍·면·동장은 월 14만 원을 지급받는다. 2026년에도 이미 106억 원이 배정된 상태다. 그러나 북한이탈주민과 관련 단체에 쓰이는 사업예산은 18%에 불과하고, 대부분은 인건비와 운영비로 소진된다고 한다. 북한에 가지도 못하는데 도지사, 시장, 군수, 읍·면·동장이 존재한다니 세금이 참 엉뚱하게 쓰이고 있다.
이처럼 세금이 낭비되는 상황에서, 아무리 '문송(문과라서 죄송)' 시대라 하더라도 인문학에 세금을 쓰는 것이 훨씬 낫지 않을까? 인문사회과학 연구자는 필자가 추산하기에 3만 명이 넘는다. 그러나 이들은 대학이 지급하는 인건비를 제외하면 R&D 예산 3천억 원을 나눠 가져야 하는 열악한 상황에 놓여 있다. 자연과학과 공학도 '의대에 미친 나라'에서는 홀대받는다고 하지만, 이공계는 그래도 연구비 신청 시 선정률이 40% 이상이다. 반면 인문사회계는 10%만 넘어도 다행이다. 2025년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분야 일반공동연구사업의 선정률은 7%대에 불과했다. 그런데도 정부가 발표한 2026년 R&D 예산안은 전년 대비 19.3% 증가해 35.3조 원이 되었지만, 인문사회과학 비율은 1%선이 무너져 전체 R&D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1.2%(2025년)에서 0.93%(2026년)로 오히려 축소되었다.
이처럼 '문송의 시대'는 점점 더 대세가 되고 있다. AI 시대에 인문학이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많지만 그것은 유튜브식 교양으로 한정되는 것일뿐, 현실은 정반대다. 이미 십수 년간 인문사회과학 학과는 지방과 서울을 불문하고 폐과와 통폐합으로 사라져 왔으며, 그만큼 많은 인문사회계 후속 연구자들이 연구재단이 급여를 주는 연구교수, 대학의 저임금 비정년트랙 전임교수, 불안정한 비전임교수(강사)로 살아가고 있다. 이제는 AI 시대를 핑계로 인문사회 학과가 더 사라질 것 같다. 안동의 경국대는 인문학 특성화 계획으로 '글로컬 사업'을 수주하는 성과를 거두었으나, 오히려 인문학과들을 통폐합한다고 한다. 학과가 없어도 '융합'으로 학문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본부의 주장인데, 융합인지 흡수인지 모호하다. 이런 사례를 보면 대학에 돈을 줘도 인문사회과학이나 연구자에게 제대로 흘러들어갈 것 같지 않다. '서울대 10개 만들기'를 해도 그 돈이 인문사회나 기초학문으로 흘러갈지 필자는 회의적이다.
인문사회 연구자들이 이렇게 불안정한 생애 궤적을 걷게 되면 인문사회 학술생태계는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 무엇보다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후속 연구자들이 대학원 진학을 꺼리게 되었다. 해결책을 제시하기도 난감하다. 확실한 것은 인문사회 연구자와 학술생태계를 위해 '대학'에 기대거나 재정을 투자하는 것만이 해답은 아니라는 점이다. 특히 지방이나 사립대학에서 전임교원의 30~40%를 차지하며 주로 교양대학에서 인문사회학을 가르치는 비정년트랙 전임교수 문제는 심각하다. 신규 임용되는 신진 연구자들은 대부분 비정년트랙을 거친다. 최근에는 비정년 교수도 '무기계약직'이 되어 65세 퇴직자가 생기고 있다. '반값 교수'로 정년까지 가는 것이다. 이들은 60세가 넘어도 연구교수 수준의 급여밖에 받지 못한다. 최근에는 전임교원의 절반 가까이가 비정년트랙인 대학도 많다고 한다. 이들은 최저임금과 생활임금 사이의 열악한 급여를 받으며, 과도한 초과강의나 세컨드잡, 써드잡을 하는 경우도 많다. 대학에 돈을 투입해도 건물과 기자재에 주로 쓰이고 사람에게는 잘 쓰이지 않는다는 것은 대학 내부의 공공연한 상식이다. 따라서 현재 대학의 조건에서 제대로 된 인문사회 연구를 기대하기는 정말 어렵다.
대학도 교육부도 할 수 없다면, 연구재단이라도 나서자
따라서 대학 '외부'에서라도 학문을 할 수 있게 해주어야 인문사회 학술생태계를 유지할 수 있다. 필자는 적어도 인문사회 분과학문의 명맥을 유지하는 '최저선'으로, 연구재단이 수년간 다듬어온 '인문사회학술연구교수 A·B 유형' 사업의 확대를 오래 전부터 주장해왔다. 이 사업은 후속세대 연구자들에게 가장 호응이 좋은 사업이다. 개인 단위로 자신이 원하는 연구과제에 따라 지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2025년에는 연 4,000만 원의 A유형과 연 2,000만 원의 B유형을 합쳐 1년에 약 950억 원이 투입되었고, 약 3,000명이 지원을 받았다. B유형은 1년짜리라 여전히 불안정하지만, A유형은 5년 지원으로 '국가박사제'에 근접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이 사업에 대한 추가 구상을 제안하고자 한다. 전제는 이 사업 예산이 단계적으로 증액되어 1만 명 정도가 수혜를 받을 수 있도록, 정부 임기 중 최소 3천억 원을 투입하는 것이다(이미 '서울대 10개 만들기' 사업은 8,000억 원 이상이 한 번에 편성되었다. 모두 대학으로 투입되는 예산이다). 아무리 인문사회과학이 홀대받더라도 전체 R&D의 5% 이상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영국 9%, 미국 7% 이상). 현재 A·B 유형 예산이 유지되거나 그 이상으로 선정자가 늘어난다는 전제하에, '인문사회학술교수 C유형'을 추가로 도입하길 제안한다.
비정년교수 문제를 해결하려면 사립중·고등학교처럼 교원 급여를 국가에서 지급하면 된다. 개별 대학에서 해결하려 하면 정년트랙 교수들의 반발이 발생한다. 그러나 비정년교수는 고등교육법상 '존재하지 않는' 교수직이므로 선결 과제가 너무 많다. 따라서 한국연구재단에서라도 연구비 형태로 이들에게 보정책을 마련하는 것이 어떨까? 적은 예산으로 이들의 저임금을 보정하는 의미도 있지만, 학술생태계 유지에도 생각보다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인문사회학술연구교수 'C유형(연 1,000~1,500만 원 지급)'을 도입해 평균 연봉이 4천만 원 초반대에 불과한 비정년 전임교수가 지원할 수 있는 트랙을 만들자. 이들은 저임금일뿐만 아니라 대부분 대학 교내연구비 지원이 없거나 차별적으로 적게 받고 있기 때문이다. 4년제 대학 전임교원은 총 7만여 명인데, 이 중 약 3만 명이 비정년트랙 전임교원으로 추정된다. 이중 인문사회 교원들은 2만여명 이상일 것이다(교육부의 실태조사가 필요하지만, 교육부는 아직도 조사를 회피하고 있다). 따라서 C유형을 3천 명 정도 선정하더라도 소요예산은 300억 원에 불과하다.
사실 비정년트랙이 전임교원이라도 인문사회학술연구교수A 유형에 지원할 수는 있다. 단, 선정되면 '전임'을 그만두어야 한다. 많은 비정년교수들은 농담조로 60세가 되면 인문사회학술연구교수 A유형에 지원해서 선정되면 비정년교수를 그만두겠다고 말한다. 어차피 5년 뒤 퇴직이 예정되어 있으니, 비슷한 연봉에 과도한 강의를 하며 지내는 것보다 연구비 지원을 받는 편이 낫기 때문이다. 최근 일부 대학(한신대, 경기대 등)에서 비정년트랙을 정년트랙으로 전환하기도 했지만, 현재로서는 이들을 연구 가능한 연구자로 활성화하기 위해 비정년트랙 여부를 확인하는 방법과 소득 상한선(예: 연구교수 연봉인 4,000만 원 이하)을 기준으로 추가 유형을 마련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고 '가성비 있는' 정책이라고 생각된다.
현재도 비정년트랙 교수는 전임교원이므로 연구재단의 신진·중견연구자 사업에는 지원할 수 있다. 그러나 일반 전임교원과 경쟁해야 하므로 선정률이 낮은 것은 물론, 선정되더라도 '전임교원'이라는 이유로 1과제당 월 최대 40만 원만 수당으로 받을 수 있다. 소득 수준이 낮아 인건비가 절실한 이들이, 소득 수준이 높은 정년트랙 교수 기준으로 수당을 받는 셈이다(참고로 비정년트랙과 정년트랙의 평균연봉 차이는 2배 이상이다). 비정년트랙 교수들은 저임금에 12학점의 책임시수, 이로 인한 초과강의 등으로 대학 교수사회 내 차별과 신분 분할의 모순에 처해 있다. 이는 학문 후속세대가 인문사회 대학원 진학을 꺼리는 중요한 이유가 되기도 한다.
따라서 인문사회학술연구교수 예산이 증액된다는 전제 하에 C유형을 신설해 지방·사립대, 교양대학 중심으로 증가하는 비정년트랙 교원들의 연구 역량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 물론 비정년트랙을 '철폐'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지만, 대학은 학령인구 감소 핑계를 대고 있고 교육부는 방치하고 있다. 따라서 어쩔 수 없이 과도기 대안으로 C유형을 도입해 보자는 것이다. 그럴 경우 적은 예산으로 큰 연구결과물을 거둘 수 있을 뿐 아니라, 대학 내 차별적 임금 구조를 일부라도 보정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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