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가 언제까지예요? 3년씩이나 됐는데 업무 파악을 제대로 못하고 계신 것 같네요. 저보다도 아는 게 없는 게 아녜요? 써져 있는 거 말고는 아는 게 하나도 없다. 시간이 너무 지났다. 쓸데없이."
이재명 대통령이 이학재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을 향해 언성을 높였다. 외화 불법 반출 현황에 대한 질문에 정확한 답변을 못하자 강하게 질책하면서다. 이 사장은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3선 출신 의원으로 윤석열 정부 시절인 2023년 6월 인천공항공사 사장으로 임명됐다.
이 대통령은 12일 세종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국토교통부 등에 대한 업무보고에서 이 사장에게 "1만 달러 이상 못 가지고 나가게 돼 있는데 이걸 수만 달러 갖고 나간다. 책갈피에 끼워서 나가면 안 걸린다는 주장이 있던데 실제로 그런가"라며 외화 불법 반출 상황을 물었다.
이 사장은 "저희가 보안검색을 하는 건 유해 물질을 주로 검색한다. 인천공항에서 주로 하는 업무는 아니다"라고 답하자, 이 대통령은 "안 한다는 얘기냐"고 재차 물었다. 이에 이 사장은 "하긴 한다. 하긴 하는데 이번에도 저희가 적발해 세관에 넘겼다"고 답했다.
그러자 이 대통령은 "자꾸 옆으로 새지 말고 제가 물어본 것을 얘기하라. 외화 불법 반출을 제대로 검색하냐"고 다시 물었고, 이 사장은 "세관하고 같이 한다. 주로 하는 일은…"이라고 설명하려 하자 이 대통령은 말을 끊고 "100달러짜리 한 묶음을 책갈피로 끼워 돈을 갖고 나가는 것이 가능하냐는 질문"이라고 채근했다.
옆에 있던 김민석 국무총리도 나서 "1만 달러가 넘는 현금에 대한 체크가 가능한지만 얘기하면 된다"고 거들자 이 사장은 "그건 실무적인 것이라 정확히 모르겠다"고 답했다.
이 대통령은 "불법 반출한 달러가 보통 도박이나 범죄 행위에 사용된다던데. (책갈피에 책 처럼 끼워가면) 당연히 안 걸린다고 알고 있더라"며 "어떻게 하고 있는지, 앞으로 어떻게 할 건지 별도로 보고하시라"고 지시했다. 이에 이 사장의 답변이 좀 늦어지자, 이 대통령은 "지금 딴 데 가서 노시냐", "업무파악을 제대로 못하고 계신다"고 강하게 질책하며 사장 임기를 따지듯 물었다.
이 사장이 "공항 업무와 세관 업무가 차이가 있어서 그렇다"고 해명하자, 이 대통령은 "그게 아니라 질문에 정확히 답을 하라는 것"이라고 말한 뒤 후속 사업에 대한 질문을 이어가려다 한숨을 쉬고는 "됐습니다"하고 인천국제공항공사에 대한 업무보고를 마쳤다.
이 대통령은 2023년 2월 윤석열 정부에서 임명된 함진규 한국도로공사 사장을 향해서도 "도로 청소 관리를 잘하고 있냐. 전국에 도로 청소를 다 했냐", "도로 청소 예산이 방치돼있던 이유는 뭐냐"고 물었다. 이에 함 사장은 "이번에 APEC 경주 등 지적사항 없이 완벽하게 했다"며 "경기지사 하실 때 지적한 것을 살펴보았다"고 답했다.
전세사기 피해자에게 "'선 구제 후 구상권 청구' 지원해야"...코레일·SR 통합 속도전 지시도
이날 업무보고에서는 10.15 부동산 정책 등 부동산 규제·공급 현안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국토부는 주택시장 안정을 위해 주택 공급에 속도를 내겠다고 밝혔다. 김윤덕 국토부 장관은 업무보고에서 "국민이 원하는 곳에 빠르고 충분하게 양질의 주택을 공급하겠다"며 "수도권 공공택지는 내년에 2만9000호 분양, 5만호 이상 착공에 들어가고 3기 신도시 입주도 본격화 하겠다"고 말했다.
다만 이 대통령은 또 전세사기 피해자의 전세 보증금을 '선(先) 구제 후(後) 구상권 청구' 방식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일단 피해자들을 먼저 보상해주고 정부가 이후에 책임지고 구상하는 방안을 입법화하려다 당시 대통령(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거부당한 일이 있었다"며 "예산도 필요하고 고려사항이 많을 테니 별도로 준비해 보고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어 "진척이 왜 안 되냐는 지적이 있다"며 "각 사정이 다르겠지만, 정부가 일정 부분 비용을 감수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하며 지원 필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또한 예방책으로 임차인이 전입신고를 한 뒤 근저당 우선순위가 없다는 점이 확인되면 보증금을 지급하는 방식 등을 제안하며 사전 확인 절차 마련을 지시하기도 했다.
김윤덕 국토부 장관은 "피해자 보상 수준의 편차가 매우 크다"며 "최소한 30% 정도라도 보상받을 수 있도록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기본적인 최소 보상이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 대통령은 임대주택과 관련해서는 "공공임대 택을 지을 때 역세권 등 좋은 지역에 짓도록 하라"며 "LH 입장도 이해는 하지만 이렇게 짓다 보니 사람들이 공공임대에 대해 '싸구려'로 인식하게 된다", "역세권에 공공임대 주택을 짓고, 적정한 평수로 지으면 임대 보증금도 더 높게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임대주택 매입사업과 관련해 고액 매입 의혹을 직접 제기하며 "LH를 소위 말해 '호구' 삼는다는 얘기가 있다. 대규모 조사를 해보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억원짜리 집을 지어 LH에 임대주택용으로 1억2000만원에 판다는 소문이 있다. 저도 얘기를 들을 정도니까 꽤 유명한 사례"라고 덧붙였다. 또한 택지 개발 과정을 민간에 위탁하기보다는 LH 등 공공기관에서 자체 개발을 해야 한다고도 당부했다.
또 이 대통령은 화물차주에 대한 적정한 운임을 보장해 과로·과속·과적 운행을 방지하자는 취지에서 도입된 안전운임제에 대해 "한시 제도로 하지 말고, 영구제로 하라. 불필요하면 폐지하면 된다"고 지시했다. 안전운임제는 2022년부터 2022년까지 3년간 한시적으로 운영되고 윤석열 정부에서 일몰된 바 있다.
이어 "(안전운임제를) 한시 제도로 하니 연말만 되면 연장할까 말까 싸우지 않냐. 싸우다가 결국은 해괴한 일까지 벌어졌다. 그렇게 안 되게 하라"며 "(운임을) 확대할 수 있을지는 논의를 계속 잘 해보라"라고 했다. 국토부는 3년 동안 시행하면서 지속가능할지 여부를 보고 영구화 할지 판단하기로 했다"고 답했다.
또한 이 대통령은 코레일과 SR의 신속한 통합을 강조하며 "이거 왜 분리해놨는지 아시잖아요. 매각하려고 그랬던 거 아니냐. 알토란 같은 사업 떼서 민간에 팔아먹으려고 그랬던 것", "통합을 빨리 해야한다. 예전에 공약했던 것인데 너무 오래 형식적인 절차를 거치느라고 시간을 끌고 가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쿠팡 겨냥해 "잘못하면 회사 망한다는 생각 들게 해야... 집단 소송 도입도 필요"
이 대통령은 이날 앞선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개인정보보호위원회 업무보고에서는 쿠팡의 대규모 정보 유출사태와 관련해 "잘못하면 회사가 망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제재가 필요하다"며 정보유출 과징금 강화를 거듭 지시했다. 기존 형벌이 기업의 행태를 바꾸지 못한다는 지적을 연이틀 이어서 한 것.
그는 "(기업들이) 경제 제재가 너무 약해서 위반을 밥 먹듯이 한다"며 "위반하면 난리가 나야 하는데, 지금은 위반해도 태도를 보면 '그래서 뭐 어쩔 건데?' 이런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3개년 매출 중 최대 매출"을 기준으로 삼아 과징금을 부과하라는 기준을 직접 주문하기도 했다.
관련해 집단소송제 도입의 필요성도 언급했다. 집단소송은 대표 당사자가 전체 피해자를 대표해 소송을 수행하면 모든 피해자에게 자동으로 판결 효력이 미치도록 하는 제도다. 이 대통령은 "전 국민 3400만명이 피해자인데 그 사람들이 일일이 소송 안 하면 안 주는 것 아니냐"며 "집단소송도 꼭 도입해야 할 것 같다. 입법에 속도를 내 달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업무보고 모두발언을 통해 "과학기술을 존중하는 사회여야 성장과 발전의 기회가 열린다"며 과학기술 중심의 국가 운영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어 윤석열 정부의 R&D 삭감을 에둘러 겨냥하며 "우리가 대한민국의 성장, 발전의 토대가 연구개발 투자에 있다는 사실을 잠깐 망각했을 때가 있었다"며 "상당히 큰 타격이 있었지만, 빠르게 복구했고, 많이 복구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대통령은 르완다 사례를 언급하며 민주주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우리가 기억하는 르완다는 총알과 포탄 속에서 아이가 울던 나라였지만 최근에는 놀랄 만큼 변화했다”며 “민주주의가 발전한 나라들이 실제로 흥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민주주의의 본질에 대해서는 “구성원들이 존중받고, 대등하며, 투명하게 공정한 기회를 보장받는 것”이라며 “이는 경제적 효율성과도 맞닿아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이 대통령은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 업무보고 중 종합편성채널의 정치 편향성을 지적하며 "종편, 그게 방송인지, 편파 유튜브인지 의심이 드는 경우가 꽤 있다"며 "중립성을 어기고, 특정 정당의 개인 사적 유튜브처럼 활동한 것에 대해 방미통위는 전혀 관여할 수 없다는 것이냐"고 묻기도 했다.
류신환 방미통위원장 직무대행은 "재승인 때 그런 부분을 판단하기 때문에 개별 보도, 논평에 대해서는 방심위에서 심의하도록 구조가 돼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대통령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업무보고 자료가 빠진 것을 두고서도 지휘 기관인 방미통위를 질책하며 "나중에 위원장이 임명되면 별도로 보고를 받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