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3 친위쿠데타가 일어난 지도 이제 꼬박 1년이 됐다. 12월 3일이 끼어 있던 지난주에는 매체마다 1년 전 '내란의 밤'을 회고하는 특집 기사나 논평을 쏟아냈다. 내란 진압에 앞장선 언론일수록 '응원봉 광장'의 기억을 되살리며 '되찾은 민주주의'의 밝은 미래를 그리려고 애를 썼다. 친위쿠데타를 일으킨 대통령은 파면됐고 새 정부가 들어섰으며 내란 주동자들의 재판이 진행 중이니, 이런 낙관이 터무니없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낙관론의 합창에 속편하게 목소리를 보탤 수 없게 만드는 근거나 조짐 또한 적지 않다. 우선 12.3을 계기로 한국 사회에서 정치-사회적 실체로 급부상한 극우파의 위협이 있다. 내란범 수사와 여러 후속 보도를 통해 드러나는 대한민국 국가기구 내부의 반민주적 흐름 역시 위험천만하기는 마찬가지다. 이 두 가지 양상만 놓고 봐도, 현 국면이 2016-17년 촛불시위-정권교체 직후보다 훨씬 복잡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 선명히 드러난다.
그렇기에 지금 우리에게는 문재인 정부 초기의 한국 사회에는 전혀 없었거나 부족했던 노력이 절실히 필요하다. 대한민국 제6공화국에서 거듭되는 정치 위기가 이 정치 질서의 근본적 한계나 종국적 쇠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지 묻는 일이 그것이다.
하지만 8년 전과 마찬가지로 지금도 이런 질문이 사회 전체의 고민거리로 부상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 제대로 '질문'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8년 전보다 더 심각해진 난제들과 서로 얽히며 미래를 더욱 어둡게 만든다.
제6공화국 정치가 도달한 궁지 – 대통령제의 모순 심화와 정당 정치의 붕괴
제6공화국 정치 체제의 핵심은 직접 투표로 선출되는 대통령이다. 따라서 현 정치 체제를 진단하려면, 무엇보다 대통령제에 대한 점검에서 시작해야 한다. 게다가 12.3 친위쿠데타의 주역은 현직 대통령이었다. 어쨌든 윤석열 일당이 국가기구의 심장부에서 그런 일을 꾸밀 수 있었던 것은 대통령제 덕분이며, 더 나아가 그런 일을 저지르도록 부추기는 역할을 한 것이 대통령제 아니었느냐는 물음을 던질 수 있다. 그러나 몇몇 소수의견을 제외하면, 이런 질문을 제기하는 이들이 별로 없다.
사실 이 물음은 이제 대한민국만의 것이 아니다. 유서 깊은 미국 민주주의가 2기 트럼프 정부에 의해 너무도 쉽게 와해되는 광경 앞에서 우리의 의심은 한국형 대통령제만이 아니라 원판 대통령제 자체로 넓어지지 않을 수 없다. 이탈리아 정치철학자 도메니코 로수르도는 이미 1990년대에 미국산 대통령제를 '연성 보나파르트주의'라 비판했다. 1848년 2월 혁명 이후 프랑스에 처음 도입된 남성 보통선거제를 통해 대통령에 당선된 미래의 나폴레옹 3세가 친위쿠데타를 일으켜 황제가 되고 만 사례('보나파르트주의')가 당시 프랑스만의 독특한 현상이 아니라, 미국산 대통령제 자체에 내장된 근본적 위험이라는 것이다. 12.3 이후의 한국인이라면 '친위쿠데타'라는 말만 들어도 이런 진단과 우리가 겪은 사건 사이의 연관성에 등골이 서늘해질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이제 미국인들도 마찬가지다.
'연성 보나파르트주의' 개념을 바탕으로 대통령제(그리고 소선거구제)를 비판하는 로수르도의 저작(<Democracy or Bonapartism>, Verso, 2024)은 반드시 우리말로 소개되어야 할 현대의 고전이지만, 일단 여기에서는 더 깊이 들어가지 말자. 지난 80여 년간 한국인들이 겪은 일들만으로도 대통령제에 대한 깊이 있는 비판을 전개할 재료로는 충분하기 때문이다.
가령 친위쿠데타는 한국에서 오랫동안 대통령제의 '구성적' 요소였다. 제헌국회에서 억지로 대통령제를 관철시킨 이승만은 두 차례의 친위쿠데타(1949년 5-6월에 전개된 국회프락치사건-반민특위 해산-김구 암살의 연쇄, 1952년 5-7월의 부산정치파동)로 독재 권력을 굳혔다. 쿠데타로 제2공화국을 무너뜨린 박정희는 기어이 친위쿠데타(1972년 10월 17일의 위헌적 계엄)까지 일으키고 말았다. 역시 쿠데타로 권력을 차지한 전두환은 6월 항쟁 와중에 계엄군을 동원해 시위를 진압하는 카드를 만지작거렸는데, 이것 역시 정치적으로는 친위쿠데타를 의미했다. 윤석열은 이 유구한 역사의 대열에 합류하고자 했다.
잇단 쿠데타와 친위쿠데타의 근저에 자리한 논리는 국회를 중심으로 전개되도록 헌법에 규정되어 있는 '정치' 자체에 대한 거부였다. 정치에 대한 여러 심오한 정의가 있지만, 민주주의에서 정치란 결국 생각이 다르고 이해관계가 다른 주체, 집단, 세력들 사이의 논쟁이고 협상이며 타협이다. 대한민국의 역대 대통령 중 상당수는 이런 '정치'를 생리적으로 혐오했고, 대통령 자신의 결단과 헌신(?)을 통한 '통치'만이 국가의 미래를 보장한다고 철석같이 믿었다. 그래서 주기적인 쿠데타-친위쿠데타로 '정치'를 최소화하거나 압살하고 대신 '통치'가 일방적으로 관철되는 체제를 다졌다.
박정희 군부 세력이 처음에 고안했던 정치 체제, 즉 제3공화국은 민주주의의 외피를 스스로 벗어버리지 않으면서도 이런 원칙을 효과적으로 구현했다. 이 시기에 한국 사회에는 이후 60년 넘게, 그러니까 지금까지 이어질 새로운 정치적 상식이 뿌리 내렸다. 첫째, '정쟁이나 일삼는' 국회는 불신의 대상이 됐고 '행정을 지휘하는' 대통령이 모든 기대와 지지, 비난과 증오의 집중점이 됐다. 둘째, 국회가 '낭비 기관'으로 인식되면서 정당 역시 민주주의의 핵심 구성 요소라는 위상을 상실했다. 셋째, 모든 자원, 권력, 관심이 중앙정치에 집중됐고, 지역정치는 아예 관심에서 멀어지거나 중앙정치의 손발로 전락했다.
윤석열 일당은 이런 정신세계를 "국회와 지방의회, 정당의 활동과 정치적 결사, 집회, 시위 등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한다"는 비상계엄 포고령 1호 1항을 통해 더없이 깔끔하게 정리해주었다. 이런 메시지가 일단 울려 퍼지자, '정치'의 죽음을 반기고 '통치'의 세상을 희구하는 극우 대중이 삽시간에 결집했다. 대통령 직선제를 '되찾은 민주주의'의 핵심 요소로 내세우는 제6공화국 정치 질서가 실은 '제3공화국'의 반복이듯이('장기 제3공화국 시대'), '제3공화국 이데올로기' 혹은 '박정희주의 이데올로기'가 제6공화국에서도 끈질기게 이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윤석열은 단지 대통령제를 둘러싸고 있던 이 모든 잠재적 위험과 오랜 모순을 돌연 한꺼번에 폭발시켰을 뿐이다.
대통령제에 이런 문제들이 있기에 그 대안으로 의회정부제(내각제) 개헌이 거론되기도 한다. 비록 내란이 진압되기도 전에 국민의힘 등이 책임회피용 담론으로 '내각제'를 꺼내드는 바람에 희화화되고 말았지만, 나는 국회가 정부를 구성하는 시스템으로 전환하자는 주장에 기본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이 정도 수준의 개헌이 당장에 성사될 가능성은 제로이며, 지금 한국 여건에서 내각제를 곧바로 실시할 경우 현행 대통령제보다 더 나은 결과를 낳을 것이라 보기도 힘들다.
왜 그러한가? 제6공화국식 대통령제가 직면한 궁지의 '동전 반대 면'으로서 정당 정치가 붕괴했기 때문이다. 내각제란 곧 정당 중심, 의회 중심 정치를 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제6공화국 40여 년간 대통령 중심 정치가 지속되고 '제3공화국 이데올로기'가 잔존한 결과로(물론 비례위성정당의 등장처럼 이런 문제를 증폭시킨 최근의 요인들도 있었다), 정당 정치가 제 구실을 전혀 못할 정도로 퇴보했다. 국민의힘은 극우화했고, 여당 더불어민주당에 도전할만한 세력들은 (개혁신당을 제외하면) 위성정당화하거나 원외로 밀려났다.
이런 상황에서 혹자는 '의회 독재'를 말하지만, 복수정당제를 전제하는 사회에서 '의회 독재'는 모순어법이다. '의회 독재'란 실은 정당 정치의 붕괴를 '잘못' 표현하는 말일 뿐이다. 그나마 정당 구실을 하는 정당이 사실상 더불어민주당 하나뿐인 현실에 대한 '서툰' 묘사일 따름이다.
이렇게 정당 정치의 기능이 멈춘 상황이 극히 위험한 이유는 단지 대통령제에서 벗어날 출구로서 내각제 개헌을 선택하지 못하게 가로막기 때문만이 아니다. 내각제뿐만 아니라 대통령제에서도 정당은 민주주의의 핵심 구성 요소다. 정당 정치 없이는 민주주의가 작동할 수 없다.
정당 없는 세상이 어떤 모습일지 잘 보여준 것은 12월 3일 밤, 국회 앞에 펼쳐진 광경이다. 정당 정치가 사라진 사회에서는 이때와 같은 국가 폭력과 비무장 시민의 직접적 대치가 일상을 지배하게 된다. 12월 3일 밤에는 어쨌든 이 충돌에서 시민이 승리했지만, 정당 정치의 퇴행을 역전시키지 못한다면 이 승리는 단지 '1회전'의 승리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일단 질문과 토론을 시작이라도 하는 게 중요하다
대통령제를 바꾸기도 쉽지 않고, 정당 정치를 재건하기도 쉽지 않다. 한국 사회 바깥에서 한국 사회 전체를 들어올릴 '아르키메데스의 점' 같은 곳에 서 있지 않고서는 도무지 해결이 불가능할 것만 같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말도 꺼내려 하지 않는다. 부박한 정치인들은 물론이고 언론도, 학계도 '어쩔 수가 없다'는 상투어구를 반복하기만 한다. 현실의 명백한 한계와 모순, 궁지에 대해 질문조차 던지지 않으려 한다.
물론 질문을 던지면 반드시 답을 찾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질문조차 던지지 않는다면, '정해진' 최악의 미래를 조금도 비껴갈 수 없다. 현재의 제6공화국 정치 질서가 어떤 변화도 없이 계속될 경우에 '정해진' 운명은 무엇인가?
이재명 정부가 아무리 전 정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나은 성과를 거둔다 해도 임기 말 정치 위기의 반복은 피하기 힘들다. 복합위기 시대에 광범한 지지층을 장기간 유지할 수 있을 정도로 성과를 내기도 쉽지 않을뿐더러, 대통령 한 사람에게 쏠리는 기대만큼 실망과 증오의 가능성도 크기에(당장 문재인 전 대통령을 떠올려 보라) 막연하게 해피엔드를 꿈꾸기만 할 수는 없다. 게다가 정당 정치가 침체한 현 상황에서는 이전 대통령들 정도의 득표력과 정치 역량을 지닌 '대통령감'이 등장하는 것 자체가 난제다.
이런 상황에서 상당수 유권자가 제6공화국 내내 반복됐던 관성적 진자운동의 논리를 다시 한 번 따른다면, 이들의 표심이 향할 곳은 정해져 있다. 이제는 극우 정치인들이 잔뜩 포진해 있는 국민의힘-개혁신당 진영이다. 지금은 한국 사회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극우화 물결에 휩싸여 있기 때문에 이런 미래로 나아가게 만드는 힘은 생각보다 더 강력할 것이다. 박근혜 다음이 윤석열이었듯이, 윤석열보다 더 끔찍한 정치적 선택의 결과와 마주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즉, 오늘날과 같은 전환기에는 익숙한 일상의 지속(business as usual)이야말로 파국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그래서 일단 질문이라도 던지는 게 참으로 중요하다. 당장에 다수가 합의하는 답을 찾기 어렵더라도, 현 상태에 문제가 있다는 분위기, 이게 결코 자연스러운 게 아니라는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 그러자면 헌법 개정이 됐든 정치제도 개혁이 됐든 공적 토론이 시작되어야 한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내란 진압 과정에서 문제점이 드러난 헌법 조항들을 우선 개정하는 지극히 실질적인 개헌 과정을 열어야 한다. 비록 높은 수준의 개헌을 성사시키지 못하더라도 이렇게 토론의 장을 열고 개헌의 경험을 쌓아가는 게 중요하다.
시간은 정해져 있다. 운명의 시곗바늘은 속절없이 돌아가고 있다. 인공지능 확산이나 기후급변, 인구위기처럼 민주주의의 시험 역시 마감시한이 정해져 있고, 그 안에 해결을 봐야 한다. 정말로, 시간이 얼마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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