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사실상 중국 손 들어줬다…日 다카이치에 대만 발언 자제 요청해

WSJ "트럼프, 대만 때문에 시진핑과 체결한 합의 위태로워지는 것 원치 않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일본 총리와 전화통화에서 대만에 대한 발언을 자제하라고 촉구했다는 미 언론의 보도가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이 시진핑(习近平) 중국 국가 주석과 무역 합의를 지키기 위해 중국의 손을 들어주고 있는 형국이다.

26일(이하 현지시간) 미 일간지 <월스트리트저널>은 미일 양 정상 통화와 관련해 보고를 받은 미국 측 관계자를 인용해 이같이 보도했다. 신문에 따르면 이 관계자는 통화가 이뤄진 25일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다카이치 총리에게 "대만에 대한 발언 어조를 완화할 것"을 제안했다고 전했다.

신문은 일본 관리들과 해당 통화를 전해 들은 미국 관리들을 인용 "트럼프 대통령은 다카이치 총리와 전화통화를 주선하고 대만 주권 문제로 베이징을 자극하지 말라고 조언했다"고 보도했다. 다만 신문은 트럼프 대통령의 조언은 미묘했고, 다카이치 총리에게 발언 철회를 압박하지는 않았다고 관계자들이 말했다고 전했다.

미측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이 해당 통화에서 다카이치 총리의 국내 정치적인 제약에 대해 보고 받았으며, 이에 따라 중국을 자극한 발언을 완전히 철회하기는 어렵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 사안에 대해 보고를 받은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이 다카이치 총리에게 전화를 건 배경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이) 시진핑 주석과 통화를 가진 이후 중국이 공식 발표에서 대만에 대한 관심이 컸다는 점을 반영한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이 다카이치 총리의 대만 관련 발언을 신경 쓰고 있다는 점에 착안해 트럼프 대통령이 다카이치 총리와 통화를 했다는 설명이다.

실제 통화가 이뤄졌던 24일 중국 관영매체 <신화통신>은 "시진핑 주석은 대만 문제에 대한 중국의 원칙적인 입장을 명확히 밝히며, 대만의 중국으로의 귀환이 전후 국제 질서의 중요한 부분임을 강조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일본 관리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이같은 메시지에 대해 "우려스럽다"는 평가를 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일본 총리실은 해당 대화 내용과 관련한 신문의 질의에 응답을 거부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러한 입장은 지난 10일 미국 방송 폭스뉴스와 인터뷰에서 어느 정도 예고되기도 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다카이치 총리의 발언에 대해 중국의 당국자가 참수를 언급하며 논란이 되고 있다는 질문에 "우리의 많은 동맹국들도 우리의 친구가 아니다. 우리 동맹국들은 중국보다 무역에서 우리를 더 많이 이용했다"는 반응을 보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처럼 일본보다 중국에 좀 더 기울어져 있는 모습을 보이는 것을 두고 신문은 "(트럼프) 대통령은 대만을 둘러싼 마찰로 지난달 시 주석과 체결된 합의가 위태로워지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당시 정상회담에서 중국은 미국 농가로부터 농산물을 더 많이 구매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신문은 "이번 일은 미중 관계의 새로운 현실을 보여준다. 대통령과 시 주석이 내년 여러 차례 정상회담을 준비함에 따라 중국과의 무역 휴전과 대만 문제는 불가분의 관계에 놓였다"고 분석했다.

신문은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통화 순서가 중국이 먼저고 그 다음이 일본이었다는 점은 미국이 중국과 무역 관계를 고려해, 핵심 지정학적 사안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동맹국의 입장을 억제하려는 트럼프의 의지를 반영한 것일 수 있다"라고 해석했다고 전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 25일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를 가졌다면서 "현재 국제 정세와 트럼프 대통령의 최근 일본 방문을 고려할 때, 미일 양국의 긴밀한 협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저에게 매우 가까운 친구라며 언제든 전화 통화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라고 밝힌 바 있다.

그는 전화 통화의 구체적 내용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외교적인 교류이므로 자세한 내용은 밝히지 않겠다"라고 답했는데, 미국으로부터 자제 요청을 들었다는 점이 사실일 경우 현 일본 내각의 대중, 대미 외교 정책에 일정 부분 방향 수정이 불가피해 보인다.

앞서 7일 다카이치 총리는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대만의 비상사태가 '존립위기상태'에 해당한다고 밝혔는데, 이는 지난 2015년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 재임 당시 일본 의회가 제정한 안보 관련법에 명시된 개념으로, 일본이 공격을 받지 않은 상황에서도 일본과 밀접한 다른 국가가 공격을 받아 일본의 영토가 국민 생명에 위협이 되는 경우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여 자위대를 출동시킬 수 있다는 내용이다. 이에 다카이치 총리의 발언은 대만 유사시에 자위대를 출동시킬 수 있는 것으로 해석됐다.

그러자 다음날인 8일 쉐젠(薛劍) 주오사카 중국 총영사는 다키이치 총리의 발언을 보도한 <아사히신문> 기사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X'에 게재하며 "멋대로 들어오는 그 더러운 목은 한 순간의 망설임 없이 베어버릴 수밖에 없다. 각오가 되어 있나"라는 격한 반응을 보였고 이후 중국이 일본산 수산물 수입을 금지하는 등 양국 갈등이 급격히 높아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10월 30일 부산 공군 제5공중기동비행단 내 나래마루에서 미중 정상회담을 마친 뒤 회담장을 나서며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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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남북관계 및 국제적 사안들을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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