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왕립학회 최초 여성회원이 감옥에 갔다…왜?

[김성수의 영국 이야기] 캐슬린 론즈데일, 결정(Crystal)학자이자 평화주의자

1903년 아일랜드의 가난한 마을에서 태어난 캐슬린 론즈데일(Kathleen Lonsdale, 1903-1971)은 열 명의 자녀 중 막내였다. 아버지는 술주정뱅이 우체국장, 어머니는 네 명의 자식을 잃은 뒤 여섯 아이를 이끌고 영국으로 도망쳤다. 20세기 초 여성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결혼, 수녀원, 혹은 가정교사. 이야기는 여기서 끝났어야 정상이다.

하지만 역사는 때때로 비뚤어진 판을 뒤집는 걸 즐긴다.

60년 논쟁을 끝낸 한 장의 사진

1929년, 론즈데일은 엑스선 회절 기법으로 육십 년간 화학자들이 논쟁하던 문제를 해결했다. 벤젠 고리가 평평하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다. 지금 보면 "그래서?"라는 반응이 나올 법하지만, 당시엔 온 유기화학계가 들썩인 대사건이었다.

벤젠은 플라스틱, 약품, 염료의 기초다. 화학의 기본 적목(積木)이다. 집을 지으려면 벽돌이 필요한데, 그 벽돌이 정육면체인지 직육면체인지도 모르고 60년간 논쟁만 하다가, 론즈데일이 "자, 제가 자로 재봤습니다"라고 증명한 셈이다. 노벨상감 발견이었다.

스승 윌리엄 헨리 브래그(William Henry Bragg, 1862-1942)는 아들 로렌스(Lawrence Bragg, 1890-1971)와 함께 1915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부자 수상도 화제였지만, 진짜 화제는 브래그의 연구실이 여성 과학자들의 피난처였다는 사실이다. 1920년대 영국에서 여성이 과학 연구를 한다는 건 남성 전용 화장실을 쓰겠다는 것만큼 파격적이었다.

1927년, 론즈데일은 남편 토머스 론즈데일(Thomas Jackson Lonsdale)에게 "결혼 후에도 연구를 계속하고 싶다"고 말했고, 놀랍게도 남편은 찬성했다. 그 시절엔 "이제 집에서 양말이나 기워라"가 정상 대화였다. 세 아이를 낳은 뒤에도 브래그는 그녀를 위해 특별히 자리를 만들어줬다. 과학사의 위대한 페미니스트 브로맨스라 할까.

감옥에서 감자 껍질을 벗기다

론즈데일의 진짜 비범함은 과학이 아니라 양심에서 드러난다. 1935년 퀘이커교도가 된 그녀는 전쟁에 반대했고,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민방위 등록을 거부했다. 벌금? 안 낸다. 결과는 1943년 한 달간 홀로웨이 교도소 수감.

과학자가 감옥에 간다는 건 농담처럼 들린다. 하지만 론즈데일은 감옥에서도 관찰자였다. 수감 생활을 꼼꼼히 기록했고, 출소 후엔 교도소 개혁 운동에 뛰어들었다. "범죄자는 사람이 아니라 환경이 만든다"는 주장은 지금도 유효하다. 남편은 이 한달이 그녀 인생에서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고 회고했다. 벤젠 고리보다 감옥 창살이 더 많은 걸 가르쳐준 셈이다.

242년 만의 여성

1945년, 론즈데일은 미생물학자 마조리 스티븐슨(Marjory Stephenson, 1885-1948)과 함께 왕립학회(Royal Society) 최초의 여성 회원이 되었다. 242년 만이었다.

잠깐, 242년? 아이작 뉴턴(Isaac Newton, 1642-1727)이 회장을 지낸 그 학회가 1945년까지 여성을 안 받았다고? 맞다. 1902년 허타 에어턴(Hertha Ayrton, 1854-1923)이 "기혼 여성은 법적으로 독립된 인격체가 아니다"라는 이유로 탈락했다. 1943년 공산당 신문 《데일리 워커》가 "여성 과학자 차별"을 까발리자, 학회가 부랴부랴 움직였다. 풍자가 아니라 실화다.

론즈데일은 이후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 최초의 여성 교수, 1966년 국제 결정학 연합 최초의 여성 회장, 1967년 영국 과학진흥협회 최초의 여성 회장이 되었다. "최초의 여성"이란 수식어가 질리도록 많이 붙는다. 바꿔 말하면 그만큼 오래 여성이 배제됐다는 뜻이다.

다이아몬드보다 단단한 이름

론즈데일은 다이아몬드 구조를 연구했고, 1966년 그녀의 이름을 딴 광물 론즈데일라이트(Lonsdaleite)가 발견됐다. 운석에서만 발견되는 육각형 다이아몬드로, 일반 다이아몬드보다 단단하다. 그녀는 이렇게 썼다. "자랑스럽지만 겸손해진다. 극소량으로만 존재하고 대부분 뒤섞여 있다는 점에서 제 이름에 딱 맞는 것 같다."

기지와 겸손, 그리고 자기 비하의 삼박자. 전형적인 영국식 위트다. 하지만 그 뒤엔 씁쓸함이 있다. 여성 과학자는 존재하되, 눈에 띄지 말아야 했던 시대.

평화는 가능한가?

론즈데일은 1957년 《평화는 가능한가?》라는 책을 냈다. 핵무기 위험을 경고하고,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 Jr., 1929-1968)의 비폭력 저항을 지지했다. "과학자의 도덕적 책임"을 평생 강조했다. 학교 방문을 절대 거절하지 않았고, 마지막 공개행사도 여학교 시상식이었다.

1971년 4월 1일, 론즈데일은 68세로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평생 엑스선을 다룬 대가였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녀를 죽인 건 그녀가 사랑한 엑스선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우리가 배워야 할 것

론즈데일의 삶은 완벽한 영웅담이 아니다. 그녀는 가난했고, 차별받았고, 때로는 외로웠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벤젠 고리 증명, 전쟁 반대, 감옥 개혁, 여학생 교육은 모두 당시로선 "미친 짓"이었다. 하지만 바로 그 미친 짓들이 세상을 조금씩 바꿨다.

오늘날 여성 과학자가 존재하는 건 론즈데일 같은 사람들 덕분이다. 물론 아직도 갈 길은 멀다. 하지만 적어도 우린 242년을 기다리진 않아도 된다.

론즈데일은 말했다. "비폭력의 삶이란 본질적으로 다른 사람 안의 선을 향해 영적으로 손을 뻗는 것이며, 설령 반응이 없고 실패한 것처럼 보여도 결국 선이 승리할 것이라는 믿음이다."

감옥 창살 안에서도, 실험실 벤치 앞에서도, 그녀는 그 믿음을 놓지 않았다. 벤젠 고리처럼 평평하고 단단한, 그러나 론즈데일라이트처럼 희귀하고 섞여 있는 그 믿음을.

우리가 기억해야 할 건 그녀의 업적이 아니라, 그 업적 뒤에 숨은 삶이다. 과학이 아니라 양심이, 논문이 아니라 신념이 진짜 유산이다.

▲캐슬린 론즈데일 ⓒ필자 제공

(필자 주: 2025년인 지금도 여성 과학자는 여전히 소수다. 론즈데일이 깬 것은 벤젠 고리만이 아니었다. 그녀는 "여성은 과학을 못한다"는 편견의 결정구조를 산산조각 냈다. 하지만 그 파편은 아직도 우리 주변에 널려 있다. 론즈데일을 기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녀의 이름을 외우는 게 아니라, 그녀가 열어놓은 문을 더 넓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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