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영의 세상읽기] 폭로는 언제 ‘정의’가 되고 언제 ‘범죄’가 되는가

요즘 우리는 너무 쉽게 ‘폭로자’가 된다. SNS에는 “제보 받습니다”라는 말이 일상이 되었고, 한 번 올라온 글은 순식간에 퍼진다. 이름, 사진, 학교, 직장, 과거의 행동까지 몇 시간 안에 공개된다. 사람들은 말한다. “이건 정의다.” 숨겨진 진실을 드러내는 용기라는 것이다. 그러나 법정에서 그 행동은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같은 글이 어떤 사건에서는 ‘공익 제보’가 되고, 다른 사건에서는 ‘범죄’가 된다.

많은 사람들은 “사실이면 괜찮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법은 그렇게 보지 않는다. 명예훼손죄는 단순히 사실이냐 아니냐만 따지지 않는다. 대법원은 허위사실 명예훼손 사건에서, 일부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고 해서 곧바로 범죄가 된다고 보지 않는다. 글 전체의 취지에서 중요한 부분이 대체로 사실과 부합한다면, 표현이 다소 과장되었거나 세부적으로 다소 부정확하더라도 무조건 허위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취지다. 나아가 일부 내용이 사실과 다르더라도, 그로 인해 상대방의 사회적 평가가 실질적으로 저하되지 않는 경우에는 처벌이 제한된다는 판단도 제시한 바 있다.

문제는 일반 시민이 이 미묘한 경계를 미리 알기 어렵다는 데 있다. 특히 실명, 얼굴 사진, 구체적인 직장이나 거주지까지 공개하는 방식은, 내용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법적으로 매우 위험한 지점으로 들어서기 쉽다. “정의 실현”이라고 생각하며 올린 글이, 법정에서는 ‘사회적 평가를 침해한 행위’로 해석되는 이유다.

더 위험한 것은 집단적 확산의 구조다. 한 사람이 올린 폭로 글이 수천, 수만 번 공유되면서 여론이 형성된다. 그 순간 당사자는 이미 회복하기 어려운 타격을 입는다. 법적 책임은 글을 처음 쓴 사람에게만 있지 않다. 무심코 공유한 사람, 동조성 댓글을 단 사람도 책임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나는 그냥 퍼 나른 것뿐”이라는 말은 법정에서도 거의 통하지 않는다. 공유 버튼은 때로는 단순한 클릭이 아니라 ‘책임의 시작’이 된다.

법은 폭로를 막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침묵을 강요하려는 것도 아니다. 다만 표현의 자유와 개인의 권리 사이에서 최소한의 균형을 지키려 할 뿐이다. 문제는 우리가 그 균형을 너무 쉽게 무너뜨린다는 점이다. 분노가 앞서고, 확인보다 공유가 먼저 이루어진다.

폭로는 언제 정의가 되고 언제 범죄가 되는가. 그 답은 단순하지 않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정의는 속도에서 나오지 않는다. 절차와 책임, 그리고 멈춰 생각하는 시간 속에서 비로소 만들어진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 3,000원
  • 5,000원
  • 10,000원
  • 30,000원
  • 50,000원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 :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