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중국 정부가 동북지역 개발과 두만강 유역의 중국, 러시아, 북한 접경지역 개발을 일대일로 사업과 연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며, 두만강 유역이 다시 동북아 협력 담론의 중심으로 부상하고 있다.
1990년대 초 유엔개발계획(UNDP)이 주도해 출범한 그레이터 투먼 이니셔티브(Greater Tumen Initiative, 이하 GTI)는 한때 '동북아의 실험실'로 불렸다. 그러나 2009년 북한의 탈퇴와 지정학적 긴장, 러시아 제재 등으로 협력은 답보 상태에 머물러 있다. 최근 중국이 일대일로(BRI)의 북방루트와 GTI를 접목하려는 구상을 본격화하면서, GTI가 다시 활성화될 기회를 맞았다.
중국은 서쪽에서는 중앙아시아와의 에너지·물류 협력, 남쪽에서는 메콩강 유역 국가들과의 협력을 통해 일대일로의 성과를 축적해왔으며 성공적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이제 그 방향이 동북 3성과 두만강 유역으로 향하고 있다.
최근 중국 언론과 정부 문건에서는 "지역협력을 통한 해양 진출(seeking maritime access through regional cooperation)"이라는 표현이 반복되고 있으며, 길림성 정부는 공식 문서에서 "두만강 지역협력 발전을 촉진하고, 러시아·북한과의 국경협력을 강화한다(推进图们江区域合作发展,加强与俄朝的边境合作)"고 명시했다. 이는 단순한 경제 협력을 넘어 동북아 접경지역에 물류·출해(出海) 회랑을 구축하려는 의지를 분명히 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흐름은 한국에도 기회이자 도전이다. 기회는 한국이 GTI 틀 안에서 조정자(Coordinator) 및 혁신 파트너(Innovation Partner)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점이다.
북한의 탈퇴와 러시아 제재 등 지정학적 제약이 있는 상태에서 한국은 GTI 내에서 신뢰받는 협력 파트너로 자리할 수 있다. 특히 디지털·그린 인프라, 스마트 물류, 생태 보전 등 지속 가능한 분야에서 한국의 참여 여지는 크다. 향후 GTI 2.0 모델이 설계된다면, 그 중심에는 지속 가능성·스마트화·인적교류가 중심이 되어야 하며, 한국이 그 모델의 설계자이자 실행자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위기도 분명하다. GTI 논의는 풍부한 담론에 비해 아직 실증적 사업 모델이 부족하다. 남북철도 연결, 동해 물류망 구축, 두만강 관광·환경 협력 등은 논의되었지만, 외교·안보적 안전망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실행하기 어렵다. 국제 제재와 대북 정책의 불확실성 속에서 투자금 회수나 프로젝트의 지속성도 담보되기 힘들다.
핵심 변수는 북한의 부재다. 북한은 GTI의 창립 멤버였지만, 2009년 탈퇴 이후 사실상 사업에서 이탈하면서 GTI는 중국의 동북개발 계획으로 편입된 측면이 있다. 중국사회과학원(CASS)과 연변대 연구진이 최근 발표한 논문에서 "조건이 충족될 경우 북한 참여를 통한 GTI 확대가 가능하다"고 표현한 것은 GTI 활성화에 북한 참여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그러나 최근 변화의 조짐이 있다. 실제로 북중 관계는 회복세에 있다. 지난 10월 중국 전승절 행사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시진핑 주석의 왼쪽에 선 것은 대외정책 방향의 상징적 메시지로 해석된다. 또한, 신압록강 대교 연결, 북한 측 세관 정비 소식 등은 북중 경제 협력의 재개를 시사한다. 이런 정황은 북한이 GTI에 복귀할 수 있는 전제조건이 충족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GTI에 대한 한국의 전략적 기여 가능성은 GTI 참여를 넘어서 남북경제협력의 교두보가 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더욱 분명하다. 한국이 GTI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동인은 GTI라는 다자협력체에서 북한과 경제 협력 기회를 마련하여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동북아 평화경제 네트워크를 구축한다는 기대와 희망일 것이다.
현재 남북관계는 경색 상태이지만, GTI 같은 다자협력체 내에서의 협력은 정치적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은 것이 사실이다. 북한이 GTI에 다시 복귀한다면 남북철도 연결, 에너지·전력망 연계, 두만강 유역 생태·관광 공동관리 등을 통해 남북경제협력의 새로운 장을 열 수 있다.
GTI는 평화경제 플랫폼으로 발전할 가능성을 충분히 내포하고 있다. 중국은 동북 3성 개발을 목적으로 더욱 속도를 낼 것이다. 그러나 아직 북한은 잠재적 변수로 언급될 뿐 협력의 주체로 등장하진 않았다.
한국은 중국과 러시아가 추진하는 북방 프로젝트에 편입되는 형태가 아닌 남북경협 복원의 플랫폼으로서 GTI 참여를 고려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국의 적극적인 참여 시점은 북한이 GTI에 복귀하거나 남북 간 교류 채널이 일정 부분 복원되는 시점이 적절할 것이다. 남·북·중·러의 균형적인 협력 구조가 새로 형성될 때 한국이 협상력 있는 주체로 참여하는 것이 리스크를 줄이고 기회를 확대하는 시점이 될 것이다.
두만강은 북·중·러 삼국의 국경선 이상의 의미이다. 그곳은 동북아 협력의 새로운 좌표이자, 한반도 평화경제의 시험대가 될 수 있다. GTI의 본래 정신은 단순한 경제개발이 아니라 폐쇄된 국경을 협력의 공간으로 바꾸는 것이었다. 북한의 GTI 복귀는 그 신호탄이 될 것이다.
한국은 GTI 회원국으로서 동북 3성의 개발과 동북아 경제 협력의 흐름을 면밀히 살피면서, 한국이 향후 GTI 내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어떤 위치를 점해야 할지 깊이 고민해야 한다. 지금은 남북경제협력의 길이 막혀 있다 하더라도, GTI라는 다자협력의 틀 속에서는 새로운 협력의 문이 열리고 있다.
한국이 협력의 시기에 실질적 제안과 실행 로드맵을 내놓는다면, 두만강은 한반도와 동북아를 잇는 '협력의 해협'이 될 수 있다. 한국의 적극적인 참여는 속도의 문제가 아니라 시점의 문제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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