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호의 우리말 바로 알기] ‘힘숨찐’과 언어의 품격

필자는 성장할 때 네 형제가 한 방에서 자랐다. 물론 부모님도 같은 방에서 자야 하는 형편이었다. 그러다 보니 생존경쟁(?)이 엄청 심했다. 큰형은 맏이라 그런대로 위치가 확고했고, 막내는 귀염둥이라 나름대로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었다. 중간치는 어디 가나 찬밥 신세였다. 여기저기 눈치를 보아야 했고, 알아서 챙겨 먹어야 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입이 거칠어질 수밖에 없었다. 항상 입에 욕을 달고 다녔다. “이 썅놈아!” 정도는 존칭(?)이라고나 할까?

어쩌다 보니 사범대학에 들어갔고, 순위고사를 보고 합격하여 서울에서 교편을 잡았다. 입이 거칠다 보니 수업 시간에 에피소드도 많았다. “지랄, 지랄, 지랄!”하는 것은 전매특허인 양 아이들이 따라하기도 했다. 우리 고향이나 충청도에서는 ‘지랄’이 예사말인데, 서울에 오니 욕으로 받아들였다. 고희를 바라보는 나이에도 아직 그 말버릇을 고치지 못하고 아직도 강의 시간에 ‘지랄’이라는 용어를 많이 써서 오해를 받기도 한다.

며칠 전에 아내가 소설을 읽다가 질문을 한다. “여보, ‘힘숨찐’이 뭐야?”라고 묻길래, “아이들의 말이야 뻔하지, ‘힘을 숨긴 진짜 주인공’이라는 말이 아닐까?” 했더니, 아내가 박장대소 하면서 “맞아, 맞아! 그러면 딱 얘기가 앞뒤가 맞네.” 하면서 웃는다. 사실은 필자도 그 말은 처음 들어 본 단어다. 다만 아이들과 자주 어울리다 보니 이제는 제법 젊은이들이 만든 신조어의 의미를 맞출 수 있는 고수(?) 단계에 이르렀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젊은 시절 아내(교직에 오래 근무했다)의 별명이 ‘진지맨(수업 시간에 바른 말 고운 말만 한다고)’이었는데, 요즘 소설을 읽으면서 젊은이들과 닮아가려는지 필자보다 더 입이 거칠어지고 있다. 오호, 애재라! 요즘 나오는 소설은 대부분이 이 시대에 유행하는 어휘를 많이 활용하게 되어 있다. 특히 축약어(글자의 수를 줄여 간략하게 나타낸 말)를 많이 쓴다. 그러다 보니 소설을 읽으면서 시도 때도 없이 질문이 쏟아진다. 필자는 강의가 없는 날이면 대부분이 앉아서 집필하는 데 시간을 보낸다. 글을 쓰고 있는데 질문을 받으면 속으로는 짜증이 나지만 겉으로는 친절하게 대답해 준다.

“테무인간이 뭐야?”

“밥플릭스가 뭐야?”

“헬시플레저는 또 무슨 말이야?”

등등 쉼표도 없이 묻는다. 아마도 요즘은 이런 말들이 유행하는 모양이다. AI깐부는 기사 제목으로 나왔던 것이다. 이런 단어들은 설명을 해야 한다. 대놓고 말하기가 참 어려운 신조어다.

“응, 테무인간은 ‘테무 + 인간’이야. 일은 열심히 하지만 수준이 떨어지는 인간”

“밥플릭스는 ‘밥 + 넷플릭스’야. 밥먹으면서 보는 영화.”

“헬시플레저는 ‘healthy + pleasure’지 즐기면서 건강관리한다는 말 아니겠어?”

그런데, 요 며칠 전에 ‘AI깐부 러브샷’이라는 신문 기사 제목이 나왔다. 아내는 짜증을 낸다. “이게 도대체 뭔 소리야? 한국 신문에 한국어라고는 한 마디도 없어.”라고 해서 보니 실제로 그렇게 나와 있었다. 아이고, “AI깐부는 말하기도 어렵네. ‘ARTIFICIAL INTELLIGENCE + 깐부’겠지.” 그러면 또 ‘깐부’에 대해 설명해야 한다. 우리 어린 시절에는 많이 썼는데, 사라졌다가 다시 ‘오징어게임’이라는 드라마를 통해 부활(?)한 단어다. 그러니 ‘AI깐부’라는 말을 뭐라 설명할지 참 어렵다. 요즘 잘나가는 AI 관련 재벌 회장들이 만나는 자리를 표현할 때 신문 기사 제목으로 ‘AI깐부 러브샷’이라고 썼다. 우리말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예전에는 한자어를 많이 쓰면 유식해 보인다고 했는데, 요즘은 영어를 섞어 써야 유식해 보이는 모양이다. 아무리 그래도 신문 기사 제목으로 이런 표현을 하는 것은 우리말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사람들은 신문에 문자화된 것은 무조건 믿는 경향이 있다. “이거 봐, 신문에 났잖아.”라고 하면 신뢰할 수 있다는 말을 대신했었다. 이제는 외국인들이 한국어를 배우고자 노력하는 시대가 되었다. 세계 7대 언어를 넘어 6대 언어에 접어들었다. 한류를 이끌어 가는 것이 우리말이다. 한국어는 우리 민족을 대표하는 것이니, 제발 언론인들이 아름다운 우리말을 살려서 표기해 주기를 간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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